가을방학이 지난 2010년 10월 발표한 1집 앨범 이후 약 2년 반 만에 정규 2집 앨범으로 돌아왔다.
언니네 이발관을 시작으로 줄리아 하트, 바비빌 등의 밴드에서 왕성히 활동해온 송라이터 정바비와 브로콜리 너마저의 노래로 많은 사랑을 받은 계피의 만남은 시작부터 많은 화제를 모았다.
지금까지 2만 장에 가까운 판매고를 올리며 스테디셀러로 등극한 1집 앨범에서 <취미는 사랑>, <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 <속아도 꿈결> 등의 노래가 연거푸 큰 사랑을 받으면서 각종 페스티벌과 음악 방송의 단골손님이 된 그들이지만, 동시에 가을방학이란 팀이 서로 다른 경력을 가진 두 사람의 단발성 프로젝트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도 많았다. 실제로도 매체 인터뷰 때 가장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가 '가을방학은 프로젝트 그룹인가요'였을 정도다.
처음에는 사실 부담 없이 두 사람이 작업한 곡들을 들려주는 자리 정도로 생각했던 정바비와 계피는 2집을 기점으로 가을방학이라는 팀을 각자 전업 뮤지션으로서의 음악인생에서 상수의 위치에 놓기로 함께 뜻을 모았다. 그래서 두 사람 모두에게 이번 2집 앨범은 단순히 신보의 의미를 넘어 앞으로도 부침 없이 꾸준히 좋은 노래를 많이 들려줄 수 있는 팀으로 자리매김 시켜줄 일종의 플랫폼이어야 했다.
프리 프로덕션 과정에서 데모 곡들을 쭉 체크하던 계피는 곡마다 스타일은 서로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1집보다 뚜렷해진 감정선을 담고 있다는데 착안하여 '선명'이라는 워킹 타이틀을 붙였다. 보다 선명한 가을방학의 색을 담는다는 큰 틀 아래 두 사람은 가을방학이 잘 할 수 있는 익숙한 영역, 그리고 아직 가보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이 흥미를 느끼는 새로운 세계 사이의 균형을 모색했다. 이 과정에서 1집부터 쭉 그들의 든든한 지지자이자 조력자가 되어온 소속사 루오바 팩토리(루오바는 핀란드어로 '창조적'이란 뜻이다)와 음악감독 김홍집이 각기 디렉터와 프로듀서로 큰 힘을 보탰다.
물론 계피는 여전히 계피고 정바비도 변함없이 정바비다. 무심결에 흘려들으면 이전 음반과 크게 다른 점을 못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날 별안간 삼십대로 접어든 당혹감을 낙천적인 인생관 속에 녹여낸 첫 곡 <좋은 아침이야, 점심을 먹자>부터 9월에 태어난 본인들의 라이프 사이클이 1월이나 봄이 아닌 가을로 시작하는 1년이라고 털어놓는 마지막 곡 <가을 겨울 봄 여름>까지, 12곡 내내 이들은 1집보다 훨씬 더 자신을 오롯이 드러내고 있다. 적어도 처연한 브레이크업 앤섬 <잘 있지 말아요>와 사뭇 격정적이기까지 한 <더운 피>를 들으면서 무심하다고 말하긴 힘들 것이다. 계피가 직접 컨셉을 잡아 진행한 자켓 이미지 역시 이런 맥락을 시각적으로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1집 커버가 모호한 동작의 찰나를 멀찍이서 포착했다면, 이번 음반의 자켓은 단순명료한 감정의 순간을 아주 가까이서 그려내고 있다. 그 감정에 어떤 이름을 붙일지는 여전히 듣는 이의 몫이겠지만, 가을방학은 그것이 이전에 비해 보다 선명하기를 바란다.
1. 좋은 아침이야, 점심을 먹자
2. 헛것
3. 편애
4. 3월의 마른 모래
5. 언젠가 너로 인해
6. 잘 있지 말아요
7. 더운 피
8. 소금기둥
9. 근황 (album version)
10. 진주
11. 삼아일산 三兒一傘
12. 가을 겨울 봄 여름 (album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