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하게 흐른다. 가끔 소용돌이치기도 한다. 드물게 폭포가 되어 낙차를 드러낸다. 고요 속의 변칙이다. 음들은 조금씩 쌓여 층을 형성하고, 이윽고 몽환적인 무드로 리스너를 빨아들인다. 그 과정에서 세기와 속도를 조절하는 능력도 보통 이상이다. 스위머스의 음악이다. 이들이 연주하는 음악은 두텁게 깔린 기타 노이즈와 대기를 떠도는 듯 속삭이는 보컬을 주된 텍스트로 삼는다. 문법에 충실하고, 잘 정제된 음악이다. 한껏 과장하거나 꾸미지 않아도 마음을 파고드는 음악. 밴드가 Swiimers를 통해 펼쳐내는 그런 음악이다.
이들의 팬이 아니라면 낯선 이름일지도 모른다. 스위머스는 밴드 극초단파의 바뀐 브랜드다. UHF-극초단파-스위머스로 이어지는 계보다. 리더 조민경(기타/보컬)을 축으로, 이평강(기타), 장선웅(드럼)이 뒤를 받친다. 미니멀한 편성의 3인조다. 밴드는 2015년 하반기의 두 싱글 와 을 통해 음반의 성격을 미리 알려준 바 있다. 두 곡이 다 담긴 EP Swiimers는 스위머스의 공식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인 셈이다.
가장 눈에 띄는 곡은 밴드의 시그니처 송이라 할 수 있는 일 것이다. 보너스트랙(공중도덕의 편곡 버전과 실리카겔 멤버 김한주의 편곡 버전)을 포함해 총 세 가지 버전을 담았다는 건, 곡에 대한 밴드의 애착을 증명한다. 급할 것 없다는 듯 노래는 서서히 자신만의 분위기를 일군다. 어둡게, 처연하게, 모호하게. 끝없는 추락을 예고하는 도입부-습기 잔뜩 머금은 보컬이 돌출되는 절정부-초반부와 액자를 이루며 곡의 테마를 확인시키는 후반부. 곡은 하나의 서사로 완결된다. 하지만 각기 모양새는 다르다. 멜로디를 살짝살짝 비틀고 매만진 편곡은 세 버전을 확실하게 구별지어주는 요소로 작동한다. 가령 공중도덕의 편곡과 김한주의 편곡은 너의 친구와 나의 친구처럼 얼마나 다른가.
을 전후한 곡들도 큰 변화를 꾀하는 것 같진 않다. 이들이 선택한 전략은 철저한 ‘장점의 극대화’다. 가 좋은 예시가 된다. 조민경의 보컬과 멤버들의 연주는 찰나의 과시욕을 소환하지 않고, 그저 단단히 문단속하며 곡의 주제를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데 주력한다. 뭔가를 부풀려 터뜨리겠다는 태도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런 종류의 음악에서 흔히 발생하는 ‘에픽 사운드’에 대한 집착은 고집스런 패착으로 종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듯하다. 기어를 살포시 올리는 <망상(Shalla)> 역시 큰 그림을 벗어나지 않고, 팝적인 선율을 쏟아내는 와 <싸움>도 무리수를 던지지 않는다. 그 결과, 힘의 균형이 생겼다. 에너지의 분할이 아주 적절한 선에서 이뤄졌다. 곡들은 귀에 잘 감긴다. 장르 배경이 없더라도 편하게 감상할 수 있는 음반이 완성된 것이다.
먹먹하게, 마치 안개 속 풍경을 보는 듯 흐른다. 앨범의 포문을 여는 짧은 연주곡 부터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그 뿌연 느낌은 지속된다. ‘치유’보다는 ‘공감’인 것 같고, ‘공감’이라기엔 ‘위안’하는 구석도 있는 것 같다. 물론 이 ‘출구 보이지 않는 사회’에서, 이들의 음악이 어떤 위안이 되어줄지 아직은 단정할 수 없다. 허나, “시간의 흐름도 모두 멈춰버려서/해와 달이 맞닿아 있는 곳/가질 수 없는 눈에 맺혀진 눈물들/버릴 수 없는 곳에 쓰여진 기억들”(‘Polaris’ 中)이라 되뇌는 저 스산함에 잠깐 머뭇거리게 된다. 음악을 들으며, 노랫말을 훑으며, 잠시 멈춰갈 수 있다는 건 리스너에게 작은 행복이다. 트랙 구분 따위엔 신경 쓰지 말고, 음과 음이 흘러가는 방향 그대로 몸을 맡겨볼 것을 추천한다. 그렇게 들었다. 그 흐름에, 소용돌이에, 폭포에. 나도 모르게 빨려든다.
이경준(음악웹진 ‘이명’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