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 Standing on the Edge
위태롭지만 아름다운 벼랑 끝으로의 여정
여기 벼랑 끝에 한 사람이 서 있다. 두 장의 싱글 앨범 [Myohan]과 [Mario]로 밀도 높은 한국형 트립합을 보여 준 밴드 ‘내 이름은 빨강’이 한층 깊어진 EP를 들고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트립합은 흔히 안개에 비유되곤 한다. 키보드와 베이스가 주를 이루던 기존 싱글의 라인업이 멜로디 위주의 아득하고 여린 안개 속을 그려냈다면, 묵직하게 내달리는 드럼과 기타의 퍼포밍이 더해진 이번 EP [Standing on the Edge]는 더욱 단단하고 밀도 있는 안개 속을 헤맨 여정을 고스란히 기록하고 있다.
총 5곡으로 구성된 이번 앨범에서 이들은 시종일관 안개 속을 걷고(Before The Dawn) 뛰어다니며 무언가를 찾아 헤맨다. 서로의 내면을 들여다보고(I Hate), 공허한 희망 앞에서 절규하다가(Empty Hope) 끝내 주저앉아 울고 만다(To Little Her).
플레이의 비정형성은 이제 트립합을 대변하는 어떠한 기조처럼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이들의 음악은 안개 속에 플레이를 감추기보다 오히려 정직하고 또렷하다. 특히 별다른 효과 없이 때론 명랑하기까지 한 건반과 베이스의 멜로디 라인은 그 자체만으로도 그들만의 독특한 안개를 만들어 낸다. 1번 트랙부터 이어지던 서정성 짙은 안개는 3번 트랙 ‘Empty Hope’에 이르러 마침내 화려한 공작새의 날개처럼 멜로디를 흩뿌리며 심연으로 질주한다.
“미안하다고 다 끝난 것은 아니다.” 앨범의 타이틀곡이자 유일한 한국어 트랙인 ‘To Little Her’의 가사처럼 우리는 이 앨범을 통해 위태롭지만 아름다운 안개 속에 서 있는 누군가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들이 마침내 마주한 세상의 끝. 아무 말이 없지만 모든 것을 말하는 그의 표정이 궁금하다.
-송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