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어냄을 덜어내어 다시 한번 깊어진
생각의 여름 3집 [다시 숲 속으로]
잠깐의 귀국에서 예정된 출국까지 주어진 시간은 대략 4개월. 박종현이 음반을, 그것도 정규를 내고 싶다고 했을 때 솔직히 제 시간에 만들어낼 수 있을 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더욱이 기타와 목소리만의 단출한 편성으로 진행했던 예전과 달리 이번에는 좀 더 다양한 악기를 써서 다채롭게 만들어보고 싶다는 의도가 있었다. 그렇다면 연주를 할 이도 필요할 것이고, 녹음도 예전처럼 간단하게 진행되지는 않을 거라는 부분도 마음에 걸렸던 것이 사실이다.
다만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것은 2집 발매 이후 3년이 지나는 동안 그에게도 변화가 있었다는 점이다.
‘다 덜어내고 남은 노래’라는 1집 [생각의 여름]의 홍보 문구가 상징하듯 생각의 여름을 특징하는 요소는 간결함이었다. 같은 말을 쓸데 없이 중복하는 것을 일종의 죄악처럼 여겼기 때문에 ‘1절-후렴-2절-후렴’으로 반복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일반적인 대중음악의 형식을 벗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그러한 경향이 극단적으로 치달았던 게 2집 [곶]은 12곡이 수록되었음에도 전체 재생 시간이 17분에 불과하여 듣는 이를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물론 그대로라도 나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한번 덜어냄을 반복하는 것은 어찌 보면 박종현이 피하고자 하는 중복일 수도 있고, 자칫하면 강박으로 치닫게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그가 지내온 시간들과 공간들 안에서의 경험들은 그에게 새로운 계기를 마련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덜어낸다는 것 자체를 덜어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것이 지난 4개월의 작업 끝에 완성되어 드디어 2016년 6월 선보일 수 있게 된 생각의 여름 3집 [다시 숲 속으로]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이다.
덜어내야 한다는 강박을 덜어냄으로써 달라진 점 중 하나는 다른 음악인들의 참여다. 1집의 윤덕원(브로콜리 너마저)나 2집의 깜악귀(눈뜨고코베인)과 같은 음악인들이 프로듀서로 참여했음에도 도리어 거의 박종현 혼자서 만들어냈던 예전과 달리, 좀 더 다양한 것을 더하겠다는 생각은 이번 음반의 공동 프로듀서이자 다섯 곡의 기타 독주에 세션으로 참여한 CR태규를 필두로 진혜린(하모니카), 양현모(드럼), 장수현(바이올린) 등의 음악인들의 참여를 끌어냈다.
그 결과 3집은 박종현이 혼자였다면 구현할 수 없었을 다채로움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 다채로움은, ‘언어’에 무게중심에 두고 창작을 해왔던 박종현의 노래들을 좀 더 ‘음악’적인 면을 더함으로써 생각의 여름을 좀 더 흥미롭게 만들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생각의 여름이 구사하고 있는 언어의 치열함과 그 가치, 그리고 그 밑바탕에 있는 간결함이 퇴색된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그가 가지고 있던 다른 면모들, 요컨대 사람을 잡아 끄는 매력을 가지고 있는 음색의 목소리와 매끈한 선율을 뽑아내는 특유의 감각이 더 빛을 발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음반의 타이틀곡이자 첫머리를 여는 곡인 ‘두 나무’에서는 예전 생각의 여름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극적인 뭉클함이 느껴진다. 이어지는 ‘봄으로 달려나가는 다니야르’에서도 CR태규의 기타가 더해짐으로써 그 서정이 좀 더 입체적인 것이 되었다. 박종현이 “접힌 적 없는 새처럼 날아주었다”고 얘기하는 ‘새’에서 진혜린의 하모니카 연주도, “심장과 관절들, 그리고 바람 등등이 내는 소리들”이라는 ‘양궁’에서 양현모의 연주도 그러하고, 예전에 이미 발표한 바 있던 ‘안녕’이 이전과 다른 정서를 지니게 된 것도 장수현의 바이올린 연주 덕분이라 할 수 있다.
그 덕분에 컨트리 음악의 느낌을 끌어와 자기 고향을 제목으로 자전적인 얘기를 풀어낸 ‘대전’의 유례없는 여유로움도, 그 반대편에서 미움의 정서를 예전과 같은 날카로움으로 담아낸 ‘비둘기호’의 서늘함도 더욱 빛을 발하게 된다. 이렇게 7곡, 거기다 12년 전에 만들고 불렀던 노래를 지금의 목소리로 다시 부른 ‘습기’와 제주의 모슬포에서 보았던 상황을 담아낸 ‘포구를 떠날 때’, 그리고 ‘침묵에서’를 더 해 모두 10곡이 모여 [다시 숲 속으로]가 되었다.
예전보다 확실히 다양한 질감을 가진 노래들이 담겨 있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것은 음반 전체를 하나로 묶는 정서가 있다. 말하고 노래하는 것에 엄두가 안 났던 시절 고속도로를 지나다가 시야에 들어온 풍경들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해줬다는 ‘침묵에서’의 사연을 통해 짐작을 할 수 있는 그 정서는 움직임이다. 다만 그것은 말로 구구절절 설명해서는 의미가 없고, 노랫말을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파악할 수 없다. 오로지 음반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고 나서야 비로소 느낄 수 있는 것일 테다.
박종현과 함께 음악을 만들어 온 것이 10년, 그가 생각의 여름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한 후 함께 해 온 것도 7년이 넘었다. 사실 2집을 내고 나서는 그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음악 활동을 계속 이어갈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사이 그는 도무지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상황을 극복하며 꾸준하게 음악을 만들어왔다. 그리고 이제 생각의 여름의 3집을 마주하면서 어쩔 수 없이 마음 한 켠이 뭉클해진다. 이러한 마음이 드는 것은 아무래도 그의 삶을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는 까닭이 크겠지만, 그래도 나름의 확신이 있다. 전혀 그를 모르는 타인이라도 그가 생각의 여름을 통해 이번 3집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바에 나 못지 않게 공감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그만큼 좋은 음반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보람을 느낀다.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이라는 붕가붕가레코드의 모토는 바로 이런 경우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10여년이 흐르는 동안 박종현은 생각의 여름을 통해 점점 더 깊어졌고, 그렇게 보낸 시간만큼의 결과물이 바로 이번의 3집, [다시 숲 속으로]이다.
글 / 곰사장 (붕가붕가레코드)
1.두 나무
2.봄으로 달려나가는 다니야르
3.새
4.양궁
5.대전
6.안녕
7.침묵에서
8.습기
9.비둘기호
10.포구를 떠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