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주소년’ 유상봉의 솔로 프로젝트,
sabo의 첫번째 앨범, [FROM SUMMER]!
초등학교 6학년 때 사촌 형의 영향으로 처음 통기타를 사고, 중고등학교를 지나면서 막연하게 뮤지션의 꿈을 키웠다. 그리고 스무살에 재주소년의 멤버로 데뷔해 지금까지 음악가로서 길을 걸어왔다. 그러면서 늘 답답하고 풀리지 않던 것이 있었다. 내가 원했던 것은 그저 시간을 들여 곡을 쓰고 기타를 덧입혀가며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당연시되는, 관객을 만나 라이브로 음악을 전달하는 것을 비롯한 각종 활동을 최소화하고 음악을 만드는 그 단순하고 재미있는 행위에 초점을 맞춰 sabo라는 이름으로 솔로 데뷔 앨범을 발표하려 한다. (sabo는 내 이름에서 받침을 뺀 닉네임이다)
sabo 1집의 작업기는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부터 만들어 놓은 음악들 중 재주소년을 통해 발표되지 않은 노래들, 그리고 말 그대로 재미 삼아 만든 수많은 노래들 중 우수한 것들을 경환이와 함께 머리를 맞대며 추려 나갔다. 긴 시간 추려왔기 때문에 그 과정에 어려움은 없었지만 오래된 폴더 속에서 새롭게 발견되는 노래들이 있었다. 이를테면 “부산”이라는 곡은 어느 날 작업 폴더를 뒤지던 경환이가 '이 노래 대박'이라며 메일로 보내준 곡이다. 만들어 놓고 한참이나 잊고 있었고 들어봐도 가물가물했다. 마치 장독 속에서 꺼낸 그런 느낌이었다. 그렇게 장독 속에서 꺼낸 묵은 노래들과 딴에는 우수한 곡들로 정규앨범 분량만큼 추려졌다. 그 다음은 레코딩인데, 그 시절에 녹음된 소스가 좋은 것들은 그대로 살리고 재녹음 할 것들을 체크했다. 대부분 오래 전에 만든 곡들이라 그 시절의 느낌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재현해 내기가 쉽지 않았다. 일련의 작업들을 거쳐가다 보니 요즘 누가 이런 식으로 앨범을 만들까 싶을 만큼 '구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구식이든 최신식이든 이 방식이 sabo 1집의 작전이며 내러티브였다. 출발점에서 10년도 훌쩍 지나 발표될 이 앨범은 많은 것을 떨쳐내는 작업이었다.
1. Night running
2002년에 2박 3일 동안 자전거로 제주도를 한 바퀴 돈 적이 있다. 해변가에서 하룻밤을 자보기도 하고 폭염으로 화상을 입을 정도로 몸이 익어가는데 자전거는 고장이 나고... 힘들었지만 추억을 남겼던 여행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직후 많은 곡들을 썼는데 “Night running”도 그 중 한 곡이다. 나일론 기타 연주곡인데, 떠나는 느낌과 잘 어울려 1번 트랙에 배치했다.
2. 부산
내가 쓴 곡이지만 오랫동안 있는지도 없는지도 몰랐던 곡이다 (경환이가 외장하드를 뒤지던 중 나와서 뒤늦게 합류하게 되었다). 부산 사하구에서 살던 어린 시절도 정말 있었는지 점점 어렴풋해진다.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내 삶의 터전을 자꾸만 남쪽으로 조금씩 옮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 봤자 겨우 충남까지 왔지만. 올해로 자취생활 9년 차가 되어가니 (노래를 만들 당시 4년 차) 끼니 챙겨 먹는게 가장 큰일 아니겠는가? 귀찮아서 끼니를 거르다 보면 배가 견딜 수 없이 고파져 필연적으로 엄마가 생각난다.
3. 그 바다까지 60분
어린 시절부터 만화를 즐겨 보며 그 영향으로 제법 많은 곡들을 써왔다. 이 곡은 일본의 만화 작가 '야자와 아이'의 단편을 읽고 만들었다. 사는 곳, 멀지 않은 곳에 바다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로망이 항상 있었다. 바닷가 마을의 여름 냄새를 맡으며...
4. 달려와줘요 Feat.폴린딜드(Fallin` Dild)
앨범 작업이 끝나기 직전까지 들어갈지 말지 고민했던 곡. 어느 날 경환이와 에프터눈 레코드 식구인 폴린딜드의 음악을 함께 듣다가 문득 이 곡의 보컬을 부탁하면 어떨까 생각한 것을 계기로 이렇게 세상에까지 나오게 되었다. 조금은 달달하며 버라이어티한 미디엄 템포의 팝 넘버라 직접 소화해내기가 힘들었다.
5. 여름의 봉인
군 시절에 검문소 생활을 하면서 만든 곡이다. 기타를 녹음할 수 없었기 때문에 틈이 날 때마다 미디 작업을 몰래 했는데 그러다 보니 이런 곡이 나왔다.
6. 놀라지 말아요
여름의 봉인과 이어지는 연주곡이다. 내 상상 속에서 큰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어느 신세계에 도착한다. 그때 옆에는 연인이 있다. 그리고 얘기한다. 놀라지 말고 이 광경을 바라보라고.. 이 곡 역시 군 시절 개인정비 시간에 전투화 닦는 곳에서 만들었다.
7. 작은 불빛 반짝이는
우쿨렐레 3부작의 인트로. 2010년쯤, 우쿨렐레를 구입해서 배우기 시작했는데 이 곡이 우쿨렐레로 작곡한 첫 연주곡이다.
8. 넌 천사
우쿨렐레 한대로 연주할 수 있는 고백송을 생각하며 만들었다. 고백의 타이밍은 축제가 열리고 있는 어느 밤.
9. 계곡물에상추씻어먹을수있나여?
이십 대 후반의 남자 다섯이서 계곡으로 놀러 갔다. 취사가 가능한 강원도 어느 계곡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려고 한 친구에게 상추 어디서 씻냐고 물었더니, 계곡물에 씻어먹으면 된다고 대답했다. 그 일로 그 친구를 고집이 심하게 세다며 나머지 친구들이 놀려대기 시작했는데...또 하나의 사건. 그 고집 센 친구가 어느 날 그렇게 친해 보이지 않는 고등학교 여자 동창의 결혼식에 다녀왔는데, 축의금 얼마 냈냐고 물었더니 머뭇거리며 30만 원이라고 했다. 그 일로 나머지 친구들은 또 한참을 놀려댔다.
10. 여름으로부터
“여름으로부터”라는 제목의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이 곡을 만들었다. (소설은 물론 한줄도 쓰지 못했지만) 수록곡 중에 여름에 만들어낸 노래가 많은 걸로 봐서는 나도 모르게 여름에 더 기타를 잡게 되나 싶다. 이 노래들이 올 여름이 다 가기 전에 세상 속에 나가준다는 것만으로도 속이 후련할 것 같다 (특히나 이 곡이). 그리고 한 발짝 내딛고 새 술을 새 부대에 담기 위해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다.
11. Shiver
앨범의 후반부를 다시 시작하는 느낌. 스물한 살쯤 만들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 브릿팝을 매일같이 듣고 다녔고 그 영향이 이 곡에 많이 담겨 있는 것 같다. 기타 재녹음을 위해 데모를 들으며 스물한 살 때 연주한 것을 카피하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12. Asian jungle
새로운 장비를 구입하면 테스트로 간단한 곡들을 써서 녹음을 해본다. 그렇게 많은 테스트 곡들이 쌓여있는데, 어찌 보면 그 테스트 곡들을 대표하여 실리게 되었다. 이 곡을 모니터 한 경환이의 지인이 정글 숲을 헤쳐가는 느낌이 난다는 말에 영감을 받아 “Asian jungle”이라는 제목을 붙여 보았다.
13. Rain tango
비가 내리면 작곡 의지가 확실히 높아지는데, 훈련소 시절 불침번 근무를 하던 중에 엄마가 보낸 편지를 읽으면서 이 곡을 처음 구상했다. 6월에 입대해서 당시에는 장마가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14. Boxer
경환이와 앨범에 대한 회의를 하면서 디스토션 (잡음의 일종으로 취급되었지만 일렉트릭 기타에서 발생하는 일그러진 소리는 록 음악을 중심으로 표현 방식의 일부로 이용되기도 한다) 사운드가 부족하다 싶어 싣게 되었다. 여러 소스들이 조립되듯이 만들어진 이 곡의 제목을 붙이기는 어렵지 않았다. 들으면서 바로 복싱 영화들이 떠올랐다.
15. 항로
머릿속에 망망대해를 그리며 이 곡을 썼다. 끝없이 항해하는 배와 파도치는 바다. 앨범을 서서히 마무리해가는 연주곡이다.
16. 언젠가는
재주소년 5집 앨범에 수록된 “기억병”의 모티브 버전이랄까? 짧은 곡이지만 앨범 전체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듯하여 수록하게 되었다.
17. 시버 (Reprise)
9번 트랙 “Shiver”의 리프라이즈 버전이다. ‘시버’는 스무살때 아파트 복도에서 득템한 어쿠스틱 기타의 이름이다. 주로 작곡용으로 많이 쓰고 있다.
1.Night running (Title)
2.부산
3.그 바다까지 60분
4.달려와줘요 [Feat.폴린딜드(Fallin’ Dild)]
5.여름의 봉인
6.놀라지 말아요
7.작은 불빛 반짝이는
8.넌 천사
9.계곡물에상추씻어먹을수있나여?
10.여름으로부터
11.Shiver
12.Asian jungle
13.Rain tango
14.Boxer
15.항로
16.언젠가는
17.시버 (Repri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