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팝의 내비게이터 스위트박스의 새 앨범 [Addicted]주변에 있는 음반 회사 관계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제 뮤지션의 네임 밸류로 앨범 팔기는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고 한다. 물론 빅 메이저 아티스트들의 경우는 좀 다를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계약에 골인한다 해도 그것이 곧 성공에의 직항로를 개설해주는 것은 아니다. 불과 10년도 안된 1990년대 후반만 하더라도 뮤지션이나 밴드가 대중적으로 좀 알려져 있으면 아무런 걱정할 것이 없었는데, 음반사들의 입장에선 참으로 통탄할만한 현태(現態)라 아니할 수 없다.
여기서 문제는 원론으로 돌아간다. 과거의 탑 세일러들도 시장에서 승전고를 울리지 못하고 있는 이 판국에 어떻게 해야 수익을 조금이라도 올릴 수 있느냐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전개된 것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해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음악이 편하고 좋으면 된다.’ 음반 소비자들이 더 이상 음악을 컬렉션의 개념으로 대하지 않는다는 것(한 아티스트의 전 디스코그라피 소장하기!)을 깨닫게 된 음반사들은 뮤지션의 이름값과는 관계없이 순수하게 좋은 음악들만을 소개하는데 주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마스터플랜을 근간으로 초고속 성장을 거듭한 팝 그룹이 바로 스위트박스(Sweetbox)이다. 바흐(J.S. Bach)의 ‘G선상의 아리아’를 채용한 ‘Everything’s Gonna Be Alright’, 그리그(E.H. Grieg)의 ‘솔베이지의 노래’를 샘플링한 ‘Trying To Be Me’, 파헬벨(J. Pachelbel)의 ‘캐논’을 인용한 스매시 히트 ‘Life Is Cool’ 등을 필두로 이어진 스위트박스의 인기 퍼레이드는 클래식이라는 유산이 얼마나 일반 팬들의 무의식 속에 어머니의 품처럼 편안한 이미지로 자리잡고 있는지를 잘 말해주는 증좌였다. 물론 ‘음악적으로 별 새로울 것이 없다.’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지만 샘플링이라는 테크닉을 영리하게 활용해 대중적 환호를 쾌척해낸 점은 근래에 보기 드문 성취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스위트박스는 독일 출신의 프로듀서 지오(Geo)가 이끄는 프로젝트 밴드로 음악 인생의 시작점을 찍었다. 에이스 오브 베이스(Ace Of Base)와 바나나라마(Bananarama) 등의 레코드를 프로듀스하고 컬처 비트(Culture Beat), 팔코(Falco) 등의 음악을 믹스하면서 높은 평판을 일궈낸 지오는 1995년 스위트박스를 출범해 데뷔 싱글 ‘Booyah-Here We Go’를 발표하였다. 이탈리아와 싱가포르에서 에어플레이 1위를 차지한 곡은 스위트박스라는 그룹이 앞으로 더욱 발전할 여지가 많다는 것을 입증해준 소중한 순간으로 평가 받았다.
이후 스위트박스는 동양권, 그 중에서도 한국에서 특히 선풍적 인기를 모으며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이 아는 유일한 팝 밴드’로써 명성을 떨쳤다. 실제로 가요에 경도되어있는 주변 학생들에게 “좋아하는 팝송이 있느냐”라고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스위트박스의 히트 넘버들을 댈 정도였다. 이렇듯 현 음악 시장의 주도적 세대인 틴에이저들로부터 몰표를 획득했다는 점 덕에 스위트박스는 전통 시장인 CD 뿐 아니라 신흥 마켓인 온라인에서도 강점을 발휘할 수 있었다.
온, 오프라인을 통틀어 통합적 히트의 물꼬를 터뜨렸으니 대중적 안착이 예약되어있는 건 너무도 당연했다. 제이드(Jade Vaillalon)가 보컬리스트로서 제자리를 틀어 잡은 뒤 나온 작품들, 예를 들면 [Jade](2002), [Adagio](2004) 등이 승승장구하면서 스위트박스는 적어도 국내에서만큼은 넘버원 인기 팝 공동체로 박수갈채를 독점할 수 있었다.
2005년의 베스트 컬렉션 [Best Of Sweetbox 1995~2005], 그리고 같은 해의 [After The Lights] 이후 스위트박스는 내한 공연과 방송 출연 등을 통해 국내 팬들에게 더욱 가까운 존재로 인식되었다. 동시에 정규작인 후자에서는 주특기인 클래식 샘플링을 아예 시도하지 않아 놀라움을전해주기도 했다. 그것은 바로 새로운 어프로치를 통해 자신들만의 창조적 영토가 엄존하고 있음을 알리려는 음악적 의도였다.
클래식 샘플링으로의 컴백, 음악적 본령으로의 회귀
이번에 발표되는 신보 [Addicted](2006)에서 스위트박스는 클래식 샘플링으로의 회귀를 다시 한번 천명하고 있다. 장중한 오케스트레이션으로 포문을 여는 ‘Graceland’에 이어 등장하는 두 트랙들이 그에 대한 증거물들이다. 타이틀인 ‘Addicted’에서 스위트박스는 그 유명한 비발디(Vivaldi)의 [사계] 중 ‘겨울’의 테마를 가져와 곡의 멜로디적 풍성함을 배가하였다. ‘너무도 익숙한 곡으로 듣는 이들의 청감에 근착한다.’는 음악적 공략은 이번에도 효과가 있을 듯 보인다. 비발디의 [사계]는 어디에서나 히트의 보증 수표임이 다시금 증명되는 순간인 것이다. 중간 중간 ‘우후~우후~’하는 재미있는 구성으로 듣는 재미를 높인 점 역시 키 포인트로 작용하고 있다.
또 다른 피(被)클래식 샘플의 주인공은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 Prelude No.1’이다. 비틀스(The Beatles)의 것과 동명이곡인 ‘Here Comes The Sun’에서 흘러나오는 첼로 선율은 오히려 앞선 ‘겨울’보다 더욱 친밀한 뉘앙스를 뽐내며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두 곡 중 어떤 것이 첫 싱글로 간택 받을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막상막하적 대중적 접근성을 뽐내고 있으니, 별다른 이변이 없는 한 히트의 심장부에 안착할 것으로 예상된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적당한 수준의 록 비트, 감각적인 일렉트로닉 이펙트, 여기에 더해지는 제이드의 팝적 소구력 높은 보컬은 스위트박스 음악 세계의 골간을 형성한다. 신보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여서 상기한 세 곡을 포함한 나머지 트랙들을 통해 스위트박스가 얼마나 대중과의 끊임없는 소통에 민감한 공동체인지를 바로 파악할 수 있다. 마이너풍의 피아노 발라드 ‘Pride’, 일렉트로닉 펑키 넘버 ‘Bold & Delicious’, 현악 연주와 제이드의 가창이 수렴되어 앙상블을 이루는 ‘Every Step’ 등이 말해준다.
이 외에 ‘Break Down’은 전형적인 미드 템포의 팝 발라드이고 ‘Ladies Night’는 나레이션을 삽입해 유쾌한 전개를 예측케 하는 곡이다. 후반부에서 단연 빛을 발하는 파워 발라드 ‘Beautiful Girl’나 일렉트로닉 소품 ‘Over & Over’ 등도 ‘팝적 연성화(軟性化)’라는 스위트박스 음악의 본질에 충실하다.
의외의 어쿠스틱 기타 송 ‘Million Miles’로 커튼 다운되는 스위트박스의 이번 신보는 예전부터 그래왔듯, 음악적으로 크게 새로울 것은 없는 음반이다. 대신 그들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최대다수 최대행복’이라는 명제를 실천한다.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나 라디오헤드(Radiohead)를 들으며 고뇌하는 것도 멋진 일이지만, 때로는 이렇듯 부담 없는 음악을 통해 릴랙스하는 것도 필요한 것이다. 스위트박스가 커다란 히트의 세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별다른 지각변동이 없는 한, 이번 뉴 레코드를 통해서도 스위트박스는 ‘학생들이 가장 듣고 싶어하는 몇 안 되는 팝 밴드’로써 음악적 생명력을 연장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100% 창작과 클래식 샘플의 비율을 앞으로도 현명하게 조율한다면 적어도 동양권에서의 인기 기류는 꽤 오랜 기간 안정권일 것이 확실하다. 그렇듯 영민한 음악적 배합 속에서 스위트박스는 팬들과 길항하려는 단꿈을 신보를 통해 여과 없이 표출하고 있다. ‘클래식 팝의 내비게이터’로서 스위트박스의 입지는 여전히 유효하며 또한 공고하다.
[글: 배순탁(greattak@iz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