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하고 쉽게 손에 잡히지 않는,
누구라도 일어나게 할 그루브를 놓치지 않는,
그리고 한국 힙합에 ‘가능성’이라는 표현을 가능하게 하는TFO [ㅂㅂ]
도입부터 압도적이다. Andy Stott이 떠오르는 불온한 앰비언트 사운드로 시작해 급하강. 이후 이어지는 저역대가 꽉 찬 비트와 피치다운된 랩은 앞으로 TFO가 펼칠 세계관의 불친절한 안내서다. “가, 어가, 들어가, 려들어가, 빨려 들어가” 보니 도착한 곳은 ‘원뿔’. ‘원뿔’이라는 도형을 매개로 들리는 사운드와 랩은 프로듀서 Sylarbomb과 MC B.A.C로 구성된 TFO라는 팀의 은유처럼 들린다. 사운드는 테두리 원의 질감처럼 미끄럽고 랩은 뿔처럼 뾰족하다. 위험하고 쉽게 손에 잡히지 않는다.
뜸 들일 필요 없다는 듯 간주 없이 바로 ppul의 랩으로 시작하는 ‘ㄱ이종ㄴ’은 시시포스의 신화 같다. 끊임없이 산 정상으로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하는 벌을 받는 시시포스처럼 거리를 두고 공간을 만든 후 그 안에서 보상받을 수 없는 행위를 반복하는 건 TFO 음악의 핵심이다. TFO는 ‘국힙’이라 부르는 한국의 메인스트림 힙합으로부터 조롱과 분노 때론 시기와 질투로 거리를 만든다. 스스로를 이종이라 부르며 “두 선이 대립하듯 삼각형이면서도 뿔”, “빨간색 방”, “갈라파고스”와 같은 공간을 만들고 “ㄱ 사이 갖혀서 ㄴ으로 전개하지 못하고” “반의 반의 반의 반을 반 복 반 복 반 복 반 복”하는 음악을 들려준다.
잦은 은유가 불친절하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빠짐’을 들어 보자. “따봉 백개 먹고 아직 죽지 않았어 생각하겠지”, “쇼미더머니 18 때쯤 나와서 거의 마흔 된 도끼한테 마지막 기회라며 눈물 보일 수도 있지”, “한국에선 ovo사운드 만들어야 돈을 만질 수 있을 것 같대”. 전작
B.A.C가 어질러 놓은 공간을 정리하는 건 Sylarbomb의 몫이다. <ㅂㅂ>의 비트는 굳이 분류하자면 ‘실험적’인 쪽에 가까울 것이다. 그럼에도 누구라도 자리에 일어나 춤 추게 할만한 꽤 좋은 ‘그루브’를 놓치지 않는다. 그루브에 익숙해 질 때쯤 “Cut!”과 함께 전환되는 신은 Sylarbomb의 고유의 연출법이다. 3D로 봐야 실체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원뿔’처럼 Sylarbomb의 프로듀싱은 입체적이다. 그는 좋은 비트 메이커이자 감독이다. 순간을 장면으로 만들고 이를 나열하고 편집해 이야기로 만든다. 감독이라는 단어가 나온 김에 그의 프로듀싱을 영화감독을 예로 표현해보자. 깨어날 수 없는 숙취와 같은 무드는 David Lynch의 영화 같다. 서늘한 운명과 같은 전개는 Cohen 형제를 떠올리게 한다.
TFO의 음악을 들으며 떠올리는 단어는 ‘세계관’이다. 인스타그램 피드처럼 모든 게 의미 없이 빠르게 변하는 21세기에 이는 언뜻 촌스런 단어일지도 모른다. 그와 상관없이 여전히 이들은 ’싱글’이 아닌 ‘앨범’으로, 일관된 메시지와 구성 그리고 확장하는 사운드로 자신의 ‘세계관’을 구축하고 있다. 쉽게 무너지거나 훼손될 수 없다는 의미다. Kool Herc의 손에서 힙합이 탄생하던 순간을 상상하길 좋아한다. 그가 두 개의 레코드를 연주해 룹을 만들고 스크래치를 하던 순간, 전에 없던 사운드의 가능성이 열렸다. 그가 연 힙합이라는 이름의 가능성은 바다 건너 한국에서 ‘국힙’이 되고 ‘쇼미더머니’가 됐다. 그리고 그 너머에서 ’TFO’가 됐다. 아직도 한국에서 힙합을 이야기하며 ‘가능성’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어 다행이다.
글/ 하박국(영기획YOUNG,GIFTED&WACK) 대표
[CREDIT]
Executive Producer : Grack Thany
Album Producer : TFO
Mastering Engineer : LOBOTOME
Photographer : 9034
Artwork Director : NA HANA, BROSU
M/V Director : ML
01.원뿔
02.ㄱ이종ㄴ (Feat. PPUL)
03.반복
04.Gold
05.빠짐
06.백백교 (Feat. MOLDY, VANDA)
07.덡
08.Theoria Interlude
09.ㅂㅂ (Feat. Wonjae Wonjae, KCDP, Mika L)
10.빌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