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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바나와 함께 90년대 거대한 얼터너티브 록 무브먼트를 일으켰던 시애틀 사운드의 거물 밴드 펄 잼이 통산 일곱번째 스튜디오 앨범을 발표한다.
프론트 맨 에디 베더의 정제된 보컬, 스톤 고사드의 묵직한 배킹 등 시류에 흔들림 없이 스스로의 길을 걸어가는 ‘거장’의 자세가 엿보이는 이번 앨범에는 빌보드 모던 록 차트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는 첫 싱글 I Am Mine을 위시, 총 15곡이 수록되어 있다.
첫 번째 트랙 'Can't Keep'은 펄 잼 특유의 긴장된 리듬을 배면에 까는 드럼 인트로로 시작되는데 그렇게 긴장을 최고조로 올려놓은 뒤 나오는 강한 멜로디 훅은 이들의 특성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스톤 고사드의 기타는 두 번째 트랙 'Save You'에서 다소 거칠어지고, 에디 베더도 그에 맞춰 자신의 바이브레이션을 한껏 살리고 있다. 펑크적인 질감에 중첩된 기타와 굴곡이 많지 않은 보컬 라인은 업템포인데도 곡의 분위기를 한층 어둡게 만들고 있다. 이 곡은 「Binaural」의 연장선상에 있다. 60년대 비틀즈의 기타 사운드를 연상케 하는 'Love Boat Captain'은 하몬드 오르간과 함께 열창하는 에디 베더의 보컬 라인이 드라마틱하면서도 웅장한 곡이다. 혼신의 힘을 다한 보컬과 다양한 톤으로 울부짖는 기타, 이 모두를 뒤덮고 있는 오르간이 상당히 파워풀한 곡.
4분의 7박자를 구사하는 'Cropduster'는 리듬의 불안함을 멜로디 라인이 절묘하게 안정화하면서 상당히 빈티지한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마치 「Binaural」의 'Evacuation'('배설'이라는 뜻)을 배설 전 상태로 돌려놓은 듯한 모습이랄까. 같은 선상에서 'Thumbling My Way'는 전작의 'Thin Air'를 좀더 목가적으로 꾸며놓은 듯한 곡이다. 초기 앨범에 비해 근래 앨범들이 '사운드가 나약해졌다'는 평을 많이 듣긴 했지만 펄 잼의 고향은 궁극적으로 이런 포크 사운드에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시애틀 4인방' 중 누구는 펑크에 누구는 메틀에 기반을 둔 반면 이들은 블루스 쪽이라는 주장도 분명 맞는 것이지만 동시에 확인되는 포크적인 기반도 계속 확인된다)
'You Are'는 테크노 사운드처럼 분절된 기타 처리와 다양한 신서사이저의 음향 등을 포함하는 등 꽤 실험적인 사운드를 담고 있어서 펄 잼의 다음 앨범을 예고하는 듯 하다. '옳은 것을 선택하고 싶은' 상황에서의 갈등을 4분의 6박자라는 불안정한 리듬에 실은 'Get Right'는 절박한 심정을 상당히 묘사적으로 그리고 있는 펄 잼 초기 스타일의 곡.
빠른 기타 아르페지오와 많은 단어를 내뱉는 가사, 펄 잼 특유의 독특한 멜로디 라인이 돋보이는 'Greendisease'는, 역시나 드라이브 기타가 아니라 빈티지 기타 사운드이지만 추천하고픈 트랙 중 하나. 이 곡에 바로 이어져 나오는 'Help, Help'와 'Arc'는 한옥타브 화음 및 합창단의 화음이 코러스 라인을 이루고 있는데 주술적이고도 몽환적인 사운드는 이들의 전체 앨범에서 종종 확인되는 바이며, 아마도 인디언의 정체성을 음악적으로 표현하는 시도로 보여진다.
'Bushleager'는 서사적이고 극적인 내레이션의 효과를 잘 살린 곡으로서 에디 베더의 타고난 목소리를 다른 면에서 감상할 수 있는 곡. 앨범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트랙인 '1/2 Full'은 이들의 또 하나의 고향인 블루스에 기반을 둔 곡으로서 스톤 고사드가 작정을 하고 화려하게 꾸민 플레이를 확인할 수 있다. 대미를 장식하고 있는 'All Or None'은 여섯 번째 트랙이자 첫 싱글인 'I Am Mine과 마찬가지의 '왈츠풍' 곡으로 슬로우 템포의 처연함을 그대로 선보이고 있다.
아마도 앨범을 듣고 있는 팬들은 전체적으로 밴드가 느꼈던 '혼돈'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느낄 것이며 어떤 이에게는 그것이 '맥빠짐'으로, 어떤 이들에겐 '겸허함'으로, 어떤 이들에겐 '타협'으로, 어떤 이들에겐 '지혜'로 평가될 것이다. 그러나 펄 잼 특유의 독특한 멜로디 작법, 에디 베더의 매력적인 목소리는 여전하며 다른 무엇보다도 이들의 오랜 진지함에서 풍겨나오는, '정치적 올바름'을 고집하는 펄 잼의 냄새는 그 무엇으로도 지울 수 없다는 것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