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렉트릭 베이스의 영원한 히어로, 자코 패스토리우스의 데뷔작!!
가장 센세이션한 데뷔 앨범을 고르라면 록음악에서는 지미 핸드릭스 익스피어리언스의 [Are You Experienced?](67)와 레드 제플린의 1집 [Led Zeppelin](69) 정도를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재즈는 다른 장르에 비해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야 하는 음악이기 때문에 연륜이 짧은 신인의 데뷔작이 큰 성공을 거두는 경우는 드물다. 웨더 리포트나 마하비니쉬 오케스트라, 그리고 포플레이 같이 이미 이름을 널리 알린 연주자들이 의기투합하여 밴드를 결성하여 데뷔하는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데뷔 앨범이 명반 대열에 오르는 것은 매우 어렵다. 지미 핸드릭스, 레드 제플린, 킹 크림슨, 핑크 플로이드 같이 데뷔 앨범이 인정을 받으려면 몇 가지 조건이 있다. 동시대의 음악인보다 앞선 음악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대중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를 타고 나야하고, 후배 연주자에게 모범답안이자 극복의 대상이 되는 연주력을 지니고 있어야 하며, 가슴 속의 뜨거운 열정이 식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들이 데뷔 전에 완벽하게 몸에 배어 있어야 데뷔작이 명반이 되는 것이다. 말 그대로 천재가 아니고서는 어려운 일인데 재즈에서는 70년대 이후 이 조건을 갖춘 연주자는 장담하건데 자코 패스토리우스 외에는 아무도 없다. 음을 구분하는 플랫이 없는 플랫리스 베이스로 몽환적인 톤을 만들어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플레이를 선보여 평생을 두고도 올라가기 힘든 꼭지점에 데뷔와 함께 단번에 올라선 것이다. 간혹 환상적인 하모닉스와 현란한 속주를 동반한 테크니션으로만 한정을 짓는 경향이 있기도 하지만 그의 뛰어난 스윙감과 작곡 솜씨는 분명 에너지 그 자체이고, 천재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평론가들이 비밥의 파이어니어 찰리 파커 이후 재즈사를 다시 쓰게 한 인물로 자코 패스토리우스를 꼽고 있다.
찰리 파커 이후 재즈를 나누는 새로운 꼭지점
존 프란시스 패스토리우스 3세(John Francis Pastorius Ⅲ, 1951. 12. 1~1987. 9. 21)라는 긴 이름을 갖고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 노리스 타운에서 태어난 자코는 드러머였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영향으로 드럼을 첫 악기로 음악의 길로 접어든다. 이후 어린 시절에 플로리다 마이애미로 이주하게 되는데 여기서 자신의 첫 그룹인 더 소닉스(The Sonics)를 결성하게 된다. 오리지널보다는 유명한 곡을 카피하여 활동하던 때로 지금은 들어볼 수는 없지만 그의 드럼 연주도 굉장했으리라 본다. 그런데 운동경기 도중 손목을 다치는 불상사로 드럼을 더 이상 연주할 수 없게 되어 환상적인 리듬과 솔로 주자로서의 탁월함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는 일렉트릭 베이스로 전향하게 된다. 기존 일렉트릭 베이스에서 들을 수 없었던 플랫리스 베이스에 의한 독특한 톤과 경이적인 속주가 합쳐지면서 10대 때부터 플로리다 일대를 시작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그의 동생 로이 패스토리우스는 형이 17세에 이미 미국 전체에서 최고가는 베이시스트라고 말한 바 있고, 자코는 18세 때에 로이에게 “나는 이 지구에서 제일가는 베이시스트야!”라고 화답^^ 할 정도로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재즈 마니아들에게 간혹 회자되는 이런 과도한 자만은 10대에 이미 최고라는 자신감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자코는 20세가 가까워지면서 여러 소울 밴드에서 연주를 하는데 72년에는 자코의 천재적인 감성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C. C. Rider와 투어를 하게 된다. 10개월간 이어진 강행군 이후 자코는 더 이상 쌓을 것이 없는 베이시스트가 된다. C. C. Rider는 혼 섹션이 첨가된 14인조 편성으로 후에 그의 빅밴드가 되는 워드 어브 마우스(Word Of Mouth)에 큰 영향을 미친다. 다음해인 73년에 다시 플로리다로 돌아와 아트 블레이키 재즈 메신저스 출신의 색소포니스트 아이라 설리번 퀄텟에서 연주를 시작하고, 마이애미 음대에 출강도 하게 된다. 그리고 당시 뉴욕에서 진보적인 피아니스트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폴 블레이와만나게 된다. 폴 블레이는 뉴욕의 매서운 바람을 피해 플로리다에 휴가차 온 것인데 그의 공연에 자코가 참석하게 되고, 이 만남은 팻 메스니와의 역사적인 조우로 이어진다. 74년에는 뉴욕으로 가 폴 블레이 앨범에 팻 메스니와 함께 참여를 하고, 팻 메스니는 게리 버튼 퀄텟에 합류하게 한다. 당시 뉴욕에서 팻 메스니와 자코는 드러머 밥 모세스와도 연주를 하게 되는데 이 트리오로 팻 메스니는 75년에 자신의 데뷔작 [Bright Size Life]를 녹음하게 된다. 이런 레코딩 과정을 거치면서 자코는 자신의 리더 작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게 된다. 천재는 운도 좋아야 한다는 것을 증명하듯 76년 자코 앞에 두 가지 행운이 날아온다. 바로 데뷔 앨범 발표와 재즈의 새로운 아이콘인 웨더 리포트에 가입하는 두 가지 꿈을 한꺼번에 실현한 것이다.
영혼을 팔아버리고 재즈를 선택한 자코 패스토리우스
웨더 리포트의 두 리더인 조 자비눌과 웨인 쇼터는 스튜디오에서 자코에게 캐논볼 애덜리의 음악을 연주할 기회를 주었는데, 그 자리에서 휭키와 스윙을 조화롭게 연주해 내는 모습에 놀라게 된다. 76년을 기점으로 전 세계 재즈 마니아와 베이시스트 지망생들에게 자코는 신이 되었고 그 파급 효과는 엄청났다. 웨더 리포트는 자코가 가입한 덕에 재즈 팬의 폭을 넓일 수 있었으며 대중들에게 한 발짝 다가서게 된다. 웨더 리포트에 알폰소 존슨 후임으로 들어가 마무리 짓는 [Black Market](76)과, ‘Birdland’ ‘Teen Town’ ‘Havona’ 등이 실린 퓨전 재즈의 명반 [Heavy Weather](77)가 그의 활약을 증명하고 있다. 이후 자코는 허비 행콕의 일렉트릭 펑크 프로젝트, 트롬본의 특수 주법을 개척한 독일 태생의 알베르트 망겔스도르프 트리오의 멤버, 자니 미첼의 밍거스 트리뷰트 밴드에서 다양한 활동을 보여 준다. 이렇게 가장 완벽한 데뷔를 하면서 바로 전성기를 맞이한 자코이지만 두 차례의 이혼과 약물, 알코올 중독이 심해지면서 그의 삶은 점점 파탄으로 빠져들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천재성과 인간성이 빛나는 81년 작 [Word Of Mouse]를 발표하여 자신이 꿈꾸던 빅밴드를 연출한다. 이후 워너에서의 두 번째 작품 [Holiday For Pans]을 진행시키는데 웨더 리포트의 [Heavy Weather] 같은 음악을 원하던 음반사와의 불화가 깊어지고 데뷔와 함께 찾아온 인기를 유지하기 위한 중압감이 그를 괴롭히게 된다.
자코는 [Holiday For Pans]에 굉장한 자신감을 가지고 작업했지만 결국 워너는 등을 돌리고 그와 결별하게 된다. 거기에 마스터 테이프까지 도난당하게 되는데 이 음원은 이후 일본 레이블로 팔려 제때 빛을 보지 못하게 된다. 이후 하이럼 블럭, 마이크 스턴과 함께 부트랙 앨범인 ‘뉴욕 라이브’ 시리즈를 남겨 마지막 불꽃을 피우게 된다. 80년대 중반 이후 자코는 마약과 알코올 중독에 의해 몸과 정신이 만신창이가 되어 구걸하는 모습을 보일 정도로 기행을 저지르게 된다. 그러던 중 친구들의 도움으로 플로리다로 돌아 올수 있었는데 그때 기타리스트 랜디 벤슨이 그에게 용기를 주며 제 2의 음악 생활을 할 수 있게 많은 도움을 준다. 그러나 그의 운명은 이미 결정된 것인지 1987년 9월 11일에 카를로스 산타나의 공연을 관람한 후 포트 로드데일의 나이트클럽을 들어가다 입장 문제로 클럽 매니저와 다투던 중 두개골이 함몰되고, 안구가 파열되는 심한 린치를 당한 후 병원으로 후송된다. 그로부터 10일 후 세계 최고의 베이시스트이자 퓨전 재즈의 이단아는 결국 깨어나지 못한 채 쓸쓸히 병실에서 세상을 떠난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가는 베이시스트야!”
앞에서 얘기한 두 가지 행운 중 하나인 자코의 데뷔 앨범 [Jaco Pastorius]는 놀라움으로 가득하다. 탁월한 선곡이 아닐 수 없는 ‘Donna Lee’는 플랫리스 베이스의 매력을 맘껏 발산하고, 보컬 코러스가 들어간 블루스 휭키 풍의 ‘Come On, Come Over’가 이어진다. 데이빗 샌본과 브렉커 형제등6명이 뿜어내는 혼 섹션의 열기와 허비 행콕의 건반은 그루브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Continuum’은 자코를 대표하는 곡으로 어쿠스틱 재즈만이 보여줄 수 있는 정제미를 보여주고 있으며, 허비 행콕의 68년 작품인 ‘Speak Like A Child’를 접속시킨 ‘Kuru/ Speak Like A Child’에서는 어쿠스틱 피아노와 스트링 섹션이 더해져 자코의 폭 넓은 음악성을 느낄 수 있다. 2분여의 짧은 시간이지만 다양한 포지션에서 환상적인 하모닉스를 연출하는 ‘Portrait Of Tracy’는 베이스 한 대로 연주하는 솔로곡이다. ‘Opus Pocus’에서는 나중에 워드 어브 마우스에서도 즐겨 사용하는 스틸 드럼과 웨인 쇼터의 소프라노 색소폰이 등장하고, 끝임 없이 반복되는 베이스 라인 위로 재즈와는 어울리지 않는 청명한톤의 프랜치 혼이 연주되는 ‘Okonkole Y Trompa’가 이어진다. 필자는 ‘Okonkole Y Trompa’를 들을 때마다 자코가 생각하는 재즈 앨범의 정의는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자코의 솔로와 휴버트 로우의 플루트가 불을 뿜는 ‘(Used to Be A) Cha Cha’에 이어 스트링 연주가 다시 한 번 잔잔하게 연주되는 ‘Forgotten Love’로 마무리를 짓는다. 그리고 지난 2000년에 리이슈되면서 추가된 ‘(Used to Be A) Cha Cha’의 얼터 트랙과 ‘6/4 Jam’은 보너스 트랙이지만 극적인 긴장감은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2000년 [Jaco Pastorius]가 리이슈될 때 앨범의 라이너 노트를 팻 메스니가 썼는데 그의 마지막 말로 끝내고자 한다.
“이 사나이에 관해 당신이 알고 싶은 것은 바로 여기, 레코드의 소리골 사이에 있다.... 지난 사 반세기 동안에 나온 가장 신성한 데뷔 앨범이라는 사실에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 -팻 메스니-
[김광현: 재즈 칼럼니스트 2006. 3]
1. Donna Lee
2. Come On, Come Over
3. Continuum
4. Kuru/Speak Like A Child
5. Portrait Of Tracy
6. Opus Pocus
7. Okonkole Y Trompa
8. (Used To Be A) Cha-Cha
9. Forgotten Love
10. (Used To Be A) Cha-Cha (Previously Unreleased)
11. 6/4 Jam (Previously Unrelea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