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gli는 죽었어도 노래는 살아있다' 라고 이태리 로마에서 테너 김진원의 노래를 듣고
Beniamino Gigli와 함께 연주를 하였던 지휘자 Maestro Moreli의 말이었다. 또 Gigli와 함께
그가 지휘한 오페라 "Cavallelia Rusticana'를 들려주면서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1908년대 초 주한 이태리 대사로 있었던 Costa대사는 그의 노래를 듣고 이태리의 국경일이
되면 매년 대사관에 그를 초청하여 축가를 부르게 하였다. 그리고 테너 김진원을 소개하면서
'이 사람은 동양사람처럼 생겼지만 이태리사람이며 이태리에서도 나포리 사람이다'라고 하면
서 웃곤 하였다. Costa대사는 그를 나포리 주지사에게 추천하여 주지사에게 직접 노래를 듣게
하였다. 주지사 일행은 즉시 이태리로 가자고 제의하면서 높은 연봉을 제의하였다. 그러나 그
는 이태리로 가지 않았다. 테너 김진원은 그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나는 한국사람이며 앞으
로도 한국사람일 뿐이다. 따라서 이 곳 나의 조국에서 우리 민요와 더불어 살리라'고 하였다.
그는 이미 나와 함께 뜻을 같이하여 우리 민요를 Bel Canto창법과 접목시켜 서양기법으로 세계
화하는 연구를 하며 발표해 왔던 터였다. 우리 민속음악의 농현은 세계에서도 독특한 기법이
며 연주가에따라 서로 달리 표현할 수도 있다. 때로는 미분음을 구사하는데 약간 낮게도 부
르며 반대로 높게도 노래할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절대음을 추구하는 서양음악에서는 금기사항이지만 우리 민요는 그런점에서 자유롭다. 그는
그러한 농현을 잘 알고 그의 독특한 창법으로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유일한 성악가이가.
테너 김진원의 노래 중 특히 정선아리랑, 이별가, 挽歌(상여소리)등을 들어보면 가슴이 뭉클
해진다. 외국의 어느 성악가가 우리민요를 이토록 애절하게 노래할 수 있을까... 수 십년 전부
터 우리 민요를 나와 함께 우리민요 보급에 뜻을 같이한 것도 그의 집념과 남다른 예술세계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고 생각하면서 이제 이 노래들이 한국은 물론 서양에서
도 징검다리가 되어 세계적으로 불려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작곡가 최영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