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씬의 최고의 히트메이커 JA RULE의 2004년 신보이자 컴백작 [R.U.L.E]
귀여운 외모와는 달리 대부분 강하고 거친 면을 보이(고 싶어하)는 Ja Rule을 두고 ‘참 부지런하고 건실한 힙합 청년’이라고 하면 대뜸 욕설을 퍼부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음악적인 작업물들을 볼 때는 그리 틀린 말도 아니다. 1999년 데뷔 앨범 [Venni, Vetti, Vecci]를 발매한 이후, 지난해의 5집 [Blood In My Eye]까지 매년 규칙적으로 정규 앨범을 선보인 그이니 말이다. (심지어 1집을 제외하고는 모두 10, 11월에 발매되었다) 그 건실한 작업 패턴은 ”Between Me And You”로 만방에 Ja Rule의 이름을 알리던 2000년에도, “Pain Is Love”로 전세계적으로 5백만장 이상의 경이로운 판매고를 올렸던 2002년에도, 그리고 Eminem 진영과 DMX가 떼로 그를 디스하던 2003년에도 마찬가지였다. 작년 가을, 이 랩 수퍼 스타들의 한판 승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대공격에 대처하는 Ja Rule의 태도와 방식이었다. 선제 공격을 당한 그였던 만큼 할말이 참 많을 법 했지만 Ja Rule 진영은 예상외로 조용했다. 심지어 앨범 발매를 앞두고도 떠들썩한 홍보 액션도 취하지 않았고, 그의 이야기는 첫 싱글 “The Crown”을 통해 담담히 들려졌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지난 앨범이 전작들에 비해 비교적 ‘하드’한 뉴욕 스타일로 돌아간 걸 감안하면 그 역시 심기가 매우 불편했던 것 같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Clap Back” 같은 트랙은 분명 매력적이었고 Ja Rule이 큰 인기를 얻게 된 것이 얄팍한 상술이나 우연한 행운만은 아님을 증명하기도 했다. 물론 대중들이 그에게 바란 것은 그런 변화가 아니라 늘 그다운 스타일로 대변되는 “Between Me & You”, “Always On Time”, “I’m Real” 같은 음악이었던지라 앨범 판매량은 전작들의 인기에 크게 못 미쳤다. 그러나 분명 그에게는 의미 있었을 시간, Ja Rule은 그렇게 지난 한 해를 보냈다.
2004년 하반기, 예상대로 Ja Rule의 새 앨범 발매 소식이 들려왔다. 팬들 중 반은 R&B 보컬들과의 조우로 참 듣기 좋은 트랙 몇 곡을 기대했을 것이고, 또 나머지 반은 지난 앨범에서 두드러졌던 그의 하드한 면을 더 기대했을 것이다. 앨범 발매에 즈음 Murder INC.의 사장이자 프로듀서, 또 Ja Rule의 절친한 동료인 Irv Gotti는 한 인터뷰를 통해 ‘이번 앨범은 Ja Rule의 베스트 앨범과 마찬가지다’라는 중대한 정보를 흘렸다. 그렇다면 앞서 예상한 두 가지 스타일 모두가 믹스되어 있는 앨범 정도로 유추할 수 있을까? 11월 9일, 앨범 발매를 앞두고 공개된 “Wonderful”과 “New York”을 들어보면 Irv Gotti가 의도한 ‘베스트 앨범’의 의미를 대강 짐작할 만하다. Ja Rule은 첫 싱글 “Wonderful”에 R&B 세계의 ‘The Best’라는 R.Kelly와 같은 레이블에 소속된 ‘R&B 공주님’ Ashanti를 함께 등장시켰다. 대강 이 두 사람의 이름만 봐도 예쁘고 달콤한 멜로디 라인과 거칠고 부드러운 면이 공존하는 Ja Rule의 랩핑이 함께했을 거란 믿음이 생기는 것도 괜한 ‘김치국’은 아니다. 메인 멜로디를 담당한 R.Kelly와 멋스런 코러스를 선사한 Ashanti,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그루브한 랩핑을 들려주는 Ja Rule. 라디오나 클럽을 통해 꽤 오랫동안 플레이될 것이 뻔한 ‘Ja Rule표’ 힙합 트랙이다. 이미 R.Kelly의 [Chocolate Factory] 앨범에 수록된 “Been Around The World”를 통해 함께 작업한 전적이 있기에 더욱 만족스런 타이틀 곡이 나오지 않았나 싶다. 그에 반해 Cool & Dre가 비트를 선사한 ”New York”은 말 그대로의 스트릿 앤썸. 매우 중독적인 ‘I Got A Hundred Guns, A Hundred Clips, I’m From New York, NewYork~’이란 훅 부분이 심상치 않다. 올해 2집 [Kiss Of Death]를 발매한 러프 라이더스의 Jadakiss 와 얼마 전 테러 스쿼드의 이름으로 발매한 [True Story]를 통해 “Lean Back”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던 Fat Joe가 피처링하고 있다. 세 MC의 타이트한 랩핑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Ja Rule의 새 앨범이 각별하게 느껴질 정도로 괜찮은 트랙이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세 MC가 모두 따로따로 녹음을 했다고 하는데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도 비트가 가진 느낌을 똑같이 공유한 셋 모두가 놀라울 뿐이다.
Irv Gotti의 표현을 빌자면 ‘어린 Usher’라는 Murder INC.의 새로운 보컬리스트 Llyod가 피처링한 두 트랙도 주목할만하다. 미드 템포의 세련된 트랙 “Caught Up”과 다운 템포로 보컬의 진한 매력과 Ja Rule의 낮은 목소리가 매력적인 “Where I’m From”이 그 주인공들인데 다소 가녀리면서도 중성적인, 아직은 소년 같은 Llyod의 예쁜 보컬이 Ja Rule과 제법 잘 어울린다. 아무래도 Ja Rule에게는 Bobby Brown ‘형’처럼 강한 보컬보다는 이렇게 말랑달콤한 보컬 색이 제대로 어울리는 듯. 두 곡 모두 팬들에게 좋은 반응을 기대할 만하다. 같은 맥락에서 멋진 기타 연주로 진행되는 7번 트랙 “The Manual”도 추천한다. 코러스는 코러스일뿐 Ja Rule만의 랩핑으로 채워진 이 트랙을 통해 그의 엄청난 인기는 바로 그 자신의 능력과 매력 때문임을 느낄 수 있을 텐데 필자 개인적으로 수록곡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트랙 중 하나. 여성 보컬 부분이 매력적인 “Get It Started” 역시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 듯 하고, 노래 같은 랩핑과 랩핑 같은 노래를 들려주는 “R.U.L.E.”도 괜찮다. Trick Daddy와 Chink Santana가 피처링한 14번 트랙 “Life Goes On”의 진지한 이야기도 후반부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반면에 자 룰의 거친 목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초반부의 “Last Of The Mohicans”와 “Gun Talk”, 그리고 “Bout My Business”처럼 강한 트랙을 추천한다. 지난 해 디스와 관련된 소용돌이 속에서 Ja Rule을 위한 지원 사격을 아끼지 않았던 든든한 백업들인 Black Child와 Caddillac Tha 등의 피처링으로 한결 파워를 더해 열혈 힙합퍼들의 피를 끓어오르게 할 하드코어한 트랙이다. 이 곡들을 좋아한다면 한층 다운되고 절제된 라임을 감상할 수 있는 “Never Thought”도 기꺼이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이 몇 트랙을 통해 “Wonderful” 같은 말랑함으로 Ja Rule을 단정짓는 것이 매우 성급했음을 반성해야 할 듯 하다.
앨범을 접하기 얼마 전에 Ja Rule이 ‘이번 앨범을 위해 추린 트랙들이 30곡 가까이 된다. 정말 버릴 곡이 없어 더블 앨범으로 발매할 생각을 하고 있다’는 말을 하기에 내심 ‘도리어 함량도와 집중도가 떨어지는 앨범이 되지 않을까’하는 걱정을 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1CD에 압축된 앨범의 뚜껑을 열어보니 Murder INC.의 오바도 다 근거가 있었구나 싶다. 그만큼 [R.U.L.E.]이 괜찮은 앨범이라는 뜻이다. 지난 앨범들에서 프로듀싱의 많은 부분을 담당했던 Irv Gotti 대신 종종 크레딧에 나타나던 Jimi Kendrix가 반 이상의 프로듀싱을 담당한 것도 새로운 에너지의 원천이었겠지만, 이로써 6장의 정규 앨범을 발매한 베테랑 랩퍼 Ja Rule의 연륜도 인정해야 마땅하다. 제법 귀여운 외모에 남자다운 목소리, 그만큼 부드러움과 강함을 제대로 조화시킨 앨범, [R.U.L.E.]. 당분간 그의 새로운 라임이 차트를 ‘지배(Rule)’하는 결과를 목격할 수 있을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