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케니 지의 신작은 타이틀에서도 연상할 수 있듯이 케니 지가 뽑은 고전 재즈 스탠더드 넘버들과 팝 명곡들을 연주곡으로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또한 기존의 작품들과는 달리 케니 지의 재즈 연주 실력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물론 케니 지만의 팝적인 크로스오버 감각으로 고전 재즈 넘버들을 연주했지만 그저 단순한 팝 연주자로 치부해 버리는 일부의 시각이 있기에 이번 작품에서 케니 지의 재즈 필의 연주 시도는 케니 지를 다시 보게끔 하는 단면이기도 하다. 따라서 케니 지를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재즈 마니아들의 케니 지에 대한 인식을 조금이나마 전환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 이제부터 '드림 프로젝트'라 할 수 있는 신작의 수록곡들에 대해 알아보자.
먼저 '드림 프로젝트'에 걸맞게 최고의 세션들이 참여해 주고 있는데, 먼저 프로듀서로는 케니 지의 파트너인 월터 아파나시에프(Walter Afanasieff)와 데이빗 포스터(David Foster) 등 명장들이 뒤를 받쳐주고 있다. 또한 키보드에 그렉 필링게인스(Greg Phillinganes), 베이스에 퓨전 재즈 그룹 포플레이(Fourplay)의 멤버이기도 한 나산 이스트(Nathan East), 피아노에 랜디 월드만(Randy Waldman), 드럼에 솔로 앨범을 발표하기도 한 리키 로슨(Ricky Lawson), 퍼커션에 케니 지의 오랜 동반자인 폴리뇨 다코스타(Paulinho DaCosta), 어쿠스틱 기타에 딘 파크스(Dean Parks), 오케스트레이션 연주와 지휘에 베테랑 뮤지션인 제레미 러복(Jeremy Lubbock)과 윌리엄 로스(William Ross) 등 휘황찬란한 멤버들이 함께 해주고 있다.
오프닝을 열고 있는 트랙부터 친숙하다. 한석규, 전도연 주연의 <접속>에 삽입되어 인기를 얻었던 영국 출신의 여성 가수 고(故) 더스티 스프링필드(Dusty Springfield)의 곡으로 '67년 빌보드 팝 싱글 차트 22위까지 올랐던 The look of love가 잔잔하게 울려퍼진다. 비교적 기교를 부리지 않고 원곡에 충실하게 조용하게 연주해 주고 있다. 이어서 흘러나오는 Summertime은 유명한 조지 거쉰(George Gershwin)의 작품으로 좀 더 재지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모던한 피아노 연주와 함께 보컬리스트 겸 연주자인 조지 벤슨(George Benson)의 일렉트릭 기타 연주가 잘 조화되어 있다.
6분 43초의 다소 긴 러닝 타임의 Summertime이 끝나면 또 하나의 명곡이 등장한다. 브라질 출신의 보사노바의 거장인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의 작품으로 1964년 그래미 어워즈에서 '올해의 앨범' 부문 수상작으로 필라델피아 출신의 이미 고인이 된 명 테너 색소포니스트 스탄 게츠(Stan Getz)와 브라질 출신의 기타리스트겸 송라이터 호아오 질베르토(Joao Gilberto)가 협연한 앨범 GETZ/GILBERTO에 수록된 곡 The girl from Ipanema이다. 이 노래는 당시 팝 싱글 차트 4위, 어덜트 컨템퍼러리(AC) 차트 1위를 기록했던 명곡으로 호아오의 부인인 아스트러드 질베르토(Astrud Gilberto)가 보컬을 맡았던 곡이다. 케니 지의 버전에는 원래 질베트로 부부의 딸인 베벨(Bebel Giberto)이 보컬로 참여할 예정이었지만 아쉽게도 연주곡으로만 수록되어 아쉬움을 주고 있다. 4번째 트랙을 지나 5번째에 이르면 역시 조빔의 작품이자 스탄 게츠가 '62년에 발표한 JAZZ SAMBA에 기타리스트 찰리 버드(Charlie Byrd)와의 협연곡으로 처음 수록해 당시 팝 싱글 차트 15위, AC차트 1위를 기록했던 Desafinado가 흐른다. 스탄 게츠의 이 2곡은 너무나도 유명한 곡이라 케니 지가 어떻게 새롭게 연주했는지 재즈 팬들이라면 누구나 궁금하실 것이다.
본작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아무래도 첫 싱글일텐데, 그것은 바로 위에서 스쳐지나갔던 4번째 트랙에 숨어 있다. 아마 최고의 환상적인 프로젝트가 될 이 곡은 바로 What a wonderful world이다. 국내에도 CF의 단골 메뉴로 이미 잘 알려진 이 곡은 재즈계의 전설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이 '67년에 불러 당시에는 AC 차트에서만 12위까지 올랐다가 '88년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Good Morning, Vietnam>에 삽입되면서 팝 싱글 차트 32위까지 다시 올랐던 노래이다. 특히, 이 곡이 화제를 모으고 있는 것은 명장 데이빗 포스터가 프로듀스하고 있는 가운데 루이 암스트롱의 오리지널 보컬과 케니 지의 감미로운 색소폰 연주가 합성됐다는 점인데, 이미 '91년 여성 가수 나탈리 콜(Natalie Cole)과 고인이 된 그녀의 아버지 냇 킹 콜(Nat "King" Cole)의 히트곡 Unforgettable에서 시도된 기법이다. 당시 이 곡의 프로듀서였던 데이빗 포스터의 두 번째 프로젝트이기도 하며, 이는 시공을 초월해 케니 지의 연주에 맞춰 루이 암스트롱이 같은 자리에서 함께 부르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마치 붉게 물든 저녁 노을을 바라보는 것 같은 아름다운 장면이다.
그 밖에 재즈 피아니스트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의 작품으로 제목 마냥 센티멘털한 감정을 주는 In a sentimental mood, 영국 출신으로 클라리넷 연주가이자 작곡가인 미스터 애커 빌크(Mr. Acker Bilk)의 '62년도 팝 싱글 차트와 AC 차트 1위곡으로 본작중 가장 팝적인 색채를 띠고 있으며, 가장 케니 지다운, 기존의 케니 지 팬들에게 가장 사랑받을 만한, 그리고 케니 지식의 기승전결이 그대로 녹아 있는 Stranger on the shore, 역시 재즈 피아니스트 실로니어스 몽크(Thelonious Monk)의 대표작인 Round midnight, 재즈 색소포니스트 콜맨 호킨스(Coleman Hawkins)가 1939년 레코딩했으며,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liday)도 부른 바 있는 Body and soul, 뮤지컬 <오즈의 마법사>에서 주인공 도로시 역을 맡았던 주디 갈란드(Judy Garland)가 불러 히트시켰던 대중적인 스탠더드 넘버 Somewhere over the rainbow 등이 케니 지의 재즈/팝 연주 레퍼토리에 다소곳이 담겨 있다.
꼬불꼬불하고 치렁치렁한 긴 머리카락, 단정한 검은 색의 정장, 가느다랗고 긴 은색의 소프라노 색소폰, 마치 피아노를 치듯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열 개의 손가락, 그리고 누구도 따라가지 못할 긴 호흡...이렇게 케니 지의 마음속에서부터 전달되어져 오는 감동의 메아리를 듣고 있노라면 누구나 그 아름다운 유혹에 금세 빠져버리고 만다.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이라는 영화가 있었던가. 하지만 케니 지의 선율은 '음악보다 아름다운 유혹'이란 명제를 우리들의 가슴에 남겨준다. '97년 베스트 앨범에 이어 2년만에 발표된 <Arista>에서의 11번째 작품 CLASSICS IN THE KEY OF G... 케니 지의 아름다운 유혹에 다시 한 번 빠질 때가 왔다.
1. Summertime (with George Benson)
2. Round Midnight
3. Body And Soul
4. In A Sentimental Mood
5. Stranger On The Shore
6. Desafinado
7. The Look Of Love
8. Girl From Ipanema
9. What A Wonderful World (with Louis Armstr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