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데이의 2000년에 발표된 정규 앨범.
“Warning”, “Minority”, “Blood, Sex and Booze” 등 총 12곡 수록.
경고. 빌리 조 암스트롱(Billie Joe Armstrong), 마이크 던트(Mike Dirnt), 트레 쿨(Tre Cool). 세 명의 펑크 보이들이 돌아왔다. '94년 [Dookie]가 백만 장이 넘게 팔리면서 심각한 그런지(Grunge)의 세상에 치기 가득하고 발랄하기 짝이 없는 펑크의 기운을 불어넣었던 그들. 하지만 너무 들뜨거나 긴장할 이유는 없다. 이번 그린 데이의 사운드는, 엄청 사색하는 표정으로 거리를 걷고 있는 커버 속 멤버들의 모습처럼 차분하니까. 지난 앨범보다도 훨씬 느긋하고 사람 좋아진 느낌.
전작 [Nimrod] 이후 계속되는 투어로 점차 소진되어 가는 것을 느끼던 그들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달려가고 있는 듯한 현재의 상황을 멈추고 재충전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집으로 돌아간 세 청년은 빨래도 걷고 설거지도 도와주고 우는 애도 보는 등등 각자의 조용한 사생활을 즐기면서 한 인간으로서의 삶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할 기회를 가졌다. 나이를 먹은 만큼의 달라진 생각. 그들은 이제 '호텔 옆방에 대해 노래하는' 수많은 남자들 중 하나가 되는 것은 거절한다. 그리고 그 결과 이번 앨범은 좀 더 개인적이고 일상적이며 이전보다 훨씬 '덜 펑크적'인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단어를 침 뱉듯 내뱉던 암스트롱의 보컬은 그대로지만 그는 'Warning'에서 어쿠스틱 기타에 맞추어 여유 있게 노래하고 'Castaway'에서 나이 먹어 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며, 'Minority'에서는 '나는 소수가 되고 싶다'고 외치면서 정체성을 새삼 확인하려 애쓴다. 그린 데이다운 경쾌함은 'Fashion Victim' 같은 곡에서 여전히 살아있지만 어디로 튈지 모를 깜찍 발랄함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약간은 아쉬운 기분이다. 사운드를 만드는 데 있어 전작에서 볼 수 있었던 하모니카와 색소폰 그리고 아코디언 같은 악기들도 역시 재차 등장하고 있다. 악기 구성에 있어 가장 특이하다고 할 수 있을 'Misery'의 오프닝에는 무그 신서사이저가 사용되기도 했다. 이 유랑극단 같은 사운드는 어머, 크라잉 너트(Crying Nut)의 서커스 펑크를 들은 것일까? 한편 전작에 참여했던, 벡(Beck)의 아빠 데이빗 캠벨(David Campbell)도 다시 한 번 들러 현악 어레인지를 도와주었다.
이들의 신보가 참으로 평론가들을 곤란하게 만들겠다. 지난 1997년 스카에 브라스 섹션, 하모니카, 바이올린에 현악 세션까지 시도하면서 급기야 Last Ride In에서 카운터 펀치를 날려버린 NIMROD의 탈 네오 펑크 노선에 대한 의지와는 또 다른 양상이다. 그야말로 트리오의 단순 명료를 거부한 악기편성으로 다가왔던 전작과는 달리 이번에는 아주 제대로 된 모던 록을 보여주고자 한 듯 싶다.
그러나, 이렇다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예의 그 강한 전염성도 지니고 있고 어딘가 모를 그린 데이만의 평범함도 존재하지만 어쨌든, 전작들과 다른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앨범. 바로 WARNING이다.
그들에게 DOOKIE의 메가 플래티넘은 캘리포니아 버클리를 떠나 전 세계를 여행하게 만든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사건이었다. 물론, DOOKIE가 Billie Joe(Vocal, Guitar), Mike Dirnt(Bass), 그리고 Tre Cool(Drum) 세 사람에게 불행했던 과거(빌리는 10살 때 아버지를 암으로 잃었고 마이크는 헤로인 중독 어머니와 백인 아버지에게 입양되었다)와 다른 풍요를 가져다주긴 했지만 이후의 음악활동은 그들이 진정 원했던 핵심이 결여된 작업이었다고 고백한다.
결국, 1997년 NIMROD 이후 그린 데이는 한 걸음 물러나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고향에서 시간을 보냈고 그야말로 평범한 일상 속에 자신들이 하고자 했던, 선택하고자 했던 음악적 방향을 설정할 수 있었다.
“이전에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언지 알지 못했죠.그런데 이제 알 것 같아요. 내 아이들이 훗날 ‘내 아버지는 희망이 넘쳐나는 사람이었다’고 회상할 수 있는 노래를 쓸 겁니다.”
이미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있는 빌리에게 30을 바라보는 천년이 보통의 그것과는 다르게 다가왔던 것일까. 항상 몽롱하고 제맘대로인 머리털로 취해 살았던-Green Day는 마리화나의 다른 말이다-그가 사뭇 책임감 강한 아버지의 모습, 전과 달리 이제는 인생을 아는 성년의 모습으로 읽혀지니 말이다.
최근에 듣고 있다는 밥 딜런의 오래된 음반들, 특히 BRINGING IT ALL BACK HOME을 듣는다면 이들의 새 음반에 대한 이해가 빨라질 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린 데이가 그린 데이가 아닌 색채들을 엿보이는 원인이 내적 성숙에 있다 하니 아니 반가울 수 없는 일이지만 펑크 세대들이 그것을 이해해줄 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진 신보 역시 팬들에게 충분히 어필하게 될 구성과 멜로디, 비트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여전히 냉소와 반항이 깃들인 가사들 속에 과연, 그가 말하는 희망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그것은 WARNING의 언플러그드(?) 트랙 Macy's Day Parade와 Hold On에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먼저 Macy's Day Parade에서 빌리는 ‘난 전혀 알지 못하던 새로운 희망을 기다린다’라고 노래하며, 포크 록의 구성을 하고 있는 Hold On에는 ‘희망의 눈물, 평화를 위한 항변, 그리고 내 양심의 울림’ 이라고 ‘잃어버린 진실과 젊음의 보물’에 대해서 쓰고 있으니 이만하면 그가 말하는 ‘아버지’ 역할은 하고도 남은 셈이다.
나머지 곡을 살펴보면, 첫 싱글 발매될 Minority는 아르페지오 어쿠스틱 기타 선율을 물리치고 터지는 그린 데이의 매력, 심플한 리듬이 펑크적 감각을 살리면서 시종 보컬을 쫓는 하모니카의 연주가 돋보이는 트랙. 경쾌한 스텝과 단순코드 진행의 Warning에서는 친근한 멜로디와 플랫한 기타 연주 속에 빌리의 냉소가 엿보이고 Blood, Sex and Booze의 경우, 마이크의 무표정한 베이스와 빌리의 멜로디가 팬들을 자극할 듯 싶다.
그리고 깜짝 트랙 하나, Misery. 키보드 인트로부터 심상치 않다 했더니 이 곡은 완벽한 트롯! 그 발견의 놀라움은 예의 ‘Fastball’을 대하던 것과는 종류를 달리한다. 현의 백 코드를 들을 땐 친숙한 가요를 대하는 듯 싶을 정도. 아코디언, 기타 연주와 엔딩의 노이즈까지 그 자체가 한국 팬들에게는 말 그대로 엽기 Misery다.
자신들이 펑크 신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사랑을 담아낸 언어로 보여주고 있다는 그린 데이를 이제 더 이상 펑크 신은 물론이거니와 어떠한 카테고리 안에 결박(?)시켜놓는 일은 하지 말자.
이 이상한 음반이 궁금하다면, 네오펑크 키드들이여, 그리고 모든 록 매니아들이여 “그냥, 들어보시길!”
1. Warning
2. Blood, Sex And Booze
3. Church On Sunday
4. Fashion Victim
5. Castaway
6. Misery
7. Deadbeat Holiday
8. Hold On
9. Jackass
10. Waiting
11. Minority
12. Macy's Day Para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