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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그라운드의 정신적 지주 Lou Reed!
벨벳 언더그라운드에서 솔로이스트로의 진정한 출발지점 [Transformer]
전곡 디지털 리마스터링, 미공개 사진 16p 부클릿, 미공개 어쿠스틱 데보 트랙 'Perfect Day' 수록
루 리드(Lou Reed)가 30년 전에 발표한 앨범이 2002년 다시 찾아온다. 그러나 이것이 처음은 아니다. 그의 두 번째 솔로 앨범인 [Transformer]는 1997년 9월에 이미 라이센스로 발매된 적이 있다. 이 시점은 1997년 2월과 9월,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두 영화 'Trainspotting' 그리고 '접속'과 긴밀한 연관성을 지닌다. 이미 30년 넘게 오랫동안 음악 활동을 해온 그였지만 아직은 생소했던 루 리드라는 이름은, 구제불능의 영국 젊은이들을 담아낸 영화 'Trainspotting'에 삽입된 "Perfect Day"를 통해 국내 팬들에게 알려졌다. 그리고 가을에 영화 '접속'이 대대적인 흥행을 기록하면서 벨벳 언더그라운드(The Velvet Underground) 시절의 곡인 "Pale Blue Eyes"를 통해 다시 한번 그는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비록 이기 팝(Iggy Pop)의 "Lust For Life"('Trainspotting')와 사라 본(Sarah Vaughan)의 "A Lover's Concerto"('접속')가 더욱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이를 계기로 벨벳 언더그라운드와 루 리드에 대한 재평가가 국내에서도 시작됐다는 점은 기억할 만하다.
이미 5년 전의 일이지만 그 임팩트의 여운은 아직 가시지 않은 듯하다. 1972년 발매됐던 루 리드의 두 번째 솔로작이자 그의 성공적인 솔로 커리어의 시작을 알린 앨범인 [Transformer]의 발매 30주년을 맞아 국내에서도 이 앨범이 재발매 되는 것은, 요즘 같은 음반 시장의 불경기 속에서 더욱 눈에 띄는 일이다. "Hangin' 'Round"와 "Perfect Day", 두 곡의 미발표 버전이 수록된 동시, 디지털 리마스터링된 'expanded edtion'으로 단장됐다는 점에서 이 앨범은 적잖은 만족감을 전하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팬 서비스 차원에서 재미 있는 히든 트랙도 더해졌다니 더욱 솔깃할 만하다. '딜럭스판'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2002년 재발매작은 보다 풍성해진 라이너 노트를 담고 있으며, 데이빗 보위(David Bowie), 이기 팝과 스투지스(Iggy Pop과 Stooges), 쟈니 윈터(Johnny Winter), 퀸(Queen)의 앨범에 참여한 유명 사진가 믹 록(Mick Rock)이 찍은 희귀 사진들도 수록됐다.
Lou Reed & The Velvet Underground
비틀스(The Beatles)가 대중음악 전반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전대미문의 밴드라면 루 리드는 데이빗 보위와 함께 대중음악계의 전위적인 인물로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는 언더그라운드의 정신적 지주로서 기억되며, 그 중심에는 벨벳 언더그라운드가 자리한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앨범을 사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그들의 앨범을 산 사람들은 모두 밴드를 결성했다"는 브라이언 이노(Brian Eno)의 말은 이 뉴욕 밴드의 영향력을 단적으로 입증하는 것으로, 그만큼 루 리드의 음악적 커리어에서도 단연 가장 주요하게 다루어진다. 실제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80년대 컬리지 문화가 태동하던 시기의 R.E.M과 소닉 유스(Sonic Youth), 패티 스미스(Patti Smith), 지저스 메리 앤 체인(Jesus & Mary Chain), 스미스(The Smiths) 등에게 영향을 미쳤고, 그것은 90년대와 2000년대의 많은 인디/모던 록 밴드들에게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전위적인 록 음악의 리더이자 퇴폐적인 가사를 특유의 예술적 감수성으로 표현하는 동시 실험적인 태도를 지녔던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활동 당시 비평 쪽에서도 그리 호평을 얻지 못했고 그렇다고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지도 못했다. 루 리드는 물론 존 케일(John Cale)이란, 거물급 뮤지션이 된 두 사람이 함께 했던 밴드로 지금은 기억될 수 있지만, 당시 벨벳 언더그라운드가 발표한 앨범은 단 한 장도 차트 100위 내에 진입한 적이 없다.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당시 '플라워 운동', 히피 문화로 규정될 수 있는 당시 주류 록 음악에서도 비껴나 있었고, 뉴욕에서 인기를 얻고 있었던 배리 매닐로우(Barry Manillow), 베트 미들러(Bette Middler)와 같은 어덜트 컨템포러리와는 무관했다. 이들은 그야말로 언더그라운드의 영역에 속해 있었고 전위 예술 집단으로 출발한 밴드였다.
루 리드(를 비롯한 벨벳 언더그라운드 역시)를 얘기한 데에는 6,70년대 뉴욕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데이빗 번(David Byrne, Talking Heads)이 "뉴욕에 가본 사람이라면 루 리드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 세우지 못한다"고 말했을 정도로 6,70년대 뉴욕은 많은 예술가들이 운집한 도시였으며, 전위 예술과 비트 문화의 출발지였다. 비트 시인이었던 루 리드와 아방가르드 클래식 앙상블의 비올라 연주자였던 존 케일, 그리고 당시 뉴욕 언더그라운드의 대표적인 예술가라 할 수 있는 팝 아트 운동의 주도자 앤디 워홀(Andy Warhol)의 만남은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기억하는 핵심 코드인 셈이다.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이러한 문화적 바탕 위에서 1967년, 비틀스의 [Sgt. Pepper's Lonely Heart Club Band]에 비견되는, 록 역사상 가히 획기적인 앨범이라 할 만한 [The Velvet Underground & Nico]를 시작으로 60년대의 짧은 시기동안 마약과 도착적인 변태 성욕, 죽음 등에 관해 노래하며 사이키델릭과 개러지 록에 심취해 있던 당시 음악계를 놀라게 하는 동시 외면을 받아야 했다. 이는 루 리드의 개인적인 성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그는 히피의 낭만적인 문화와 무관한 동시 이를 비판했다. 히피들의 이상을 실현하는 매개라 할 수 있는 약물과 섹스의 어둡고 음습한 측면을 부각 시킨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음악은 단연 논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또 하나 눈 여겨 볼 것은 폭력적이고 잔인한 가사에도 불구하고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가사는 지극히 서정적이었다는 점이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음악은 루 리드와 존 케일의 서로 다른 음악적 성향이 조율 되어 독특한 형태로 완성됐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존 케일은 루 리드의 카리스마에 밴드 내에서 다소 위축돼 있었고, 루 리드 역시 그와의 음악적 차이를 포용하지 못했다. 결국 루 리드는 두 번째 앨범 [White Light/White Heat] 이후 그를 해고했다. 존 케일이 빠진 [The Velvet Underground]는 이전보다 불협화음이나 노이즈는 상당 부분 사라졌지만 가사의 내용에는 변함이 없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여전히 비대중적인 밴드였다. 결국 루 리드는 네 번째 앨범 [Loaded]를 발표하고 밴드를 해체했다.
이후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멤버들이 함께 했던 것은 90년대 접어들어서이다. 존 케일과의 화해에 성공한 루 리드는 예전 멤버들과 함께 모여 해체 20여 년 전의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이름으로 공연을 갖고 이를 라이브 앨범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이는 옛 멤버들을 결속 시키기에는 역부족인, 하나의 이벤트로 종결됐다. MTV 언플러그드 공연이 계획돼 있었지만 성사 시키지 못한 채 결국 멤버들은 각자의 길로 돌아갔다. 이후 1995년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오리지널 멤버인 스털링 모리슨(Sterling Morrison)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를 추모하기 위해 다시 한번 함께 했었을 뿐,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멤버들이 함께 하는 모습은 이후 볼 수 없었다.
Lou Reed와 David Bowie & Transformer
[Transformer]는 MNE가 선정한 'The Greatest Albums of All Time' 리스트 중 55위를 차지했으며, 1987년에는 음악관련 방송인과 록 평론가들이 뽑은 'The 100 Rock Albums of All Time' 리스트에 선정됐다. 명예로운 기록 이외에도 이 앨범은 루 리드에게는 가장 높은 판매고를 기록한 앨범이다. 그와 동시에 루 리드는 이 앨범은 자신의 최고작으로 꼽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이 앨범은 벨벳 언더그라운드라는 뉴욕 언더그라운드의 컬트적 영웅인 루 리드를 대중적인 스타로 옮겨놓은 앨범으로, 이를 계기로 음악계에서 입지를 굳힌 루 리드는 이후 'Prince Of Dark'로 대접(?) 받기 시작했다.
그는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해체 이후 박봉의 타이피스트로 몇 년간 생활하며 뉴욕을 떠나 런던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60년대 말 무명 시절을 보내고 있을 때부터 이미 루 리드의 열렬한 팬이었던 데이빗 보위는 루 리드와 만나 그를 지원하기로 했고 그로부터 [Transformer]가 탄생하게 됐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퇴폐적 이미지와 섹슈얼의 모호함은 데이빗 보위의 음악에 분명 주요한 충격을 주었는데, 그는 자신을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록큰롤 데카당스의 결과물이라 말하곤 했다. 데이빗 보위가 'Wagon Wheel'를 작곡하여 루 리드에게 헌사했다는, 적잖이 신빙성 있는 후문은 두 사람의 관계를 잘 설명해준다.
데이빗 보위는 자신의 변함없는 사이드맨 믹 론슨(Mick Ronson)과 함께 루 리드의 두 번째 앨범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당시 데이빗 보위가 글램 록 씬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는 점은 이 앨범이 그와 연장선상에 놓여 있을 것임을 충분히 짐작케 한다. 데이빗 보위와의 작업을 통해 [Transformer]를 발표함으로써 루 리드는 실험적인 프로토 펑크 밴드 벨벳 언더그라운드에서 그로테스크한 화장과 옷차림 등, 양성애적인 모습을 한 글램 록커로 변신하게 된다. 앨범 타이틀 그대로 데이빗 보위는 루 리드에게 있어 일종의 'transformer'였던 셈이다. 모든 곡을 공동 프로듀스한 데이빗 보위와 믹 론슨은 [Transformer]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할 수 있는데, 70년대 글램 록 씬의 키워드라 해도 무방할 두 사람이 참여했음에도 이 앨범은 당시 글램 록 씬의 허세가 느껴지는 사운드와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완성됐다. 이 앨범은 다분히 정돈되고 차분한 록큰롤 앨범으로 완성됐다. 루 리드는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실험적이며 기이하고 괴벽스럽기까지 했던 사운드로부터 안정적인 사운드로 귀착할 수 있었다. 그것은 이후 발표하는 앨범들에 비해서도 다분히 상업적으로도 기민한 감각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이는 "Hangin' 'Round"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고 할 수 있는데, 이 30주년 기념판에 수록된 이 곡의 어쿠스틱 데모 버전(1971년 녹음)은 다분히 컨트리와 포크적인 분위기를 담고 있지만, 데이빗 보위와 믹 론슨의 손에 의해 재탄생한 이 곡은, 당시 'Electric Warrior'로 글램 록 씬 스타로 떠오른 마크 볼란(Marc Bolan)풍의 기타 톤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Vicious"는 이 앨범의 백미이자 벨벳 언더그라운드와 루 리드의 솔로 시절을 통틀어 최고의 곡으로 꼽힌다. 이 곡은 앤디 워홀(Andy Warhol)로부터 영감을 받아 만든 곡인데, 앤디 워홀은 루 리드에게 "Vicious"라는 제목의 노래를 만들라고 권유했다. 이에 루 리드는 '잔인함'에 대해 물었고 앤디 워홀은 "네가 꽃 한 송이로 나를 때리는 거지"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는 곡의 가사로 그대로 쓰여지고 있다. 그러나 일반 대중들에게 이 앨범에서 역시 가장 주목 받는 곡은 "Perfect Day"다. 'Trainspotting'의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에 삽입되면서 인기를 얻게 된 곡으로 기억되는 이 곡은 1997년 때마침 영국 BBC의 주도로 세계 어린이 자선기금 마련을 위한 싱글로 발매되면서 보노(Bono), 톰 존스(Tom Jones), 엘튼 존(Elton John), 브렛 앤더슨(Brett Anderson), 보이존(Boyzone), 수잔 베가(Suzanne Vega) 등 30여 명이 참여한 컨트리뷰션 송으로 루 리드의 위상을 더욱 공고화 한 곡이기도 하다. 당시 이 한 곡의 뮤직 비디오를 통해 이들을 한번에 볼 수 있다는 놀라움은 결코 적지 않은 충격을 선사하기도 했다. "Walk on the Wild Side"는 벨벳 언더그라운드 시절을 통틀어 루 리드의 첫 번째 상업적 히트작이다. 이 곡에서 색소폰의 솔로는 로니 로스(Ronnie Ross)가 연주했는데, 재미있는 사실은 그는 데이빗 보위가 십대 시절 처음 색소폰을 배운 선생님이란 것. "Satellite of Love"는 영화 'Velvet Goldmine'에 삽입돼 주목을 받았다.
루 리드는 이 앨범 이후 1974년의 앨범 [Sally Can't Dance]가 앨범 차트 10위까지 오르며 가장 큰 성공을 거뒀다. 그는 솔로 뮤지션으로서 총 23장에 이르는 솔로 앨범을 발표했지만 두 번째 앨범 [Transformer]와 [Sally Can't Dance]를 제외하면 사실상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적이 없다. 그나마 80년대에는 [Transformer]의 이미지를 재현한 [The Blue Mask]가 어느 정도 대중의 지지를 얻어냈을 뿐이다. 무게 실린 그의 이름에도 불구하고 그의 Top 10 히트곡은 16위까지 올랐던 에 불과하다는 것은 놀랍다. 그러나 상업적인 성공과 무관하게 루 리드는 지속적으로 대담한 음악적인 변신을 거듭해 왔다. 그 대표적인 앨범이 [Metal Machine Music]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앨범에서 루 리드는 기타 노이즈의 실험을 통해 록 역사에 있어 또 하나의 문제작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8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뉴 웨이브 시대에 적응하는 동시에 이를 전위적인 실험과 결합 시켜 나갔다. 그는 2000년 시대상을 반영하는 동시 그 특유의 냉소적 모습을 담은 [Ecstasy]를 발표했지만 이 앨범은 노장 혹은 거장의 새 앨범으로 주목 받았을 뿐 여전히 대중들과는 깊은 인연을 지니지 못했다.
대중과는 여전히 소원한 관계이지만 루 리드와 그의 밴드 벨벳 그라운드가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사랑하는 많은 밴드들이 출현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그의 존재는 특별하다. 이제 오래된 그의 앨범들이 모던 록 팬들의 감상 목록에 올라 있는 것은 유별난 일이 아니다. [Transformer]가 발매 30주년을 빌미(?)로 재발매 되는 것 역시 그러하다. 이 앨범은 데카당스의 제왕이란 칭호에 걸맞게 여전히 특유의 가학적인 서정성을 담고 있지만 음악적으로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루 리드로부터 부정할 수 없는 영향을 받은 데이빗 보위의 영향력을 짙게 느낄 수 있다. 결국 두 사람의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된 앨범이라 할 수 있으며, 이 앨범은 록 역사에서 가장 전위적인 두 아티스트의 면면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는 앨범이다. 만약 이들이 글램 록의 시대가 아닌, 그 이전이나 혹은 이후 만났다면 [Transformer]는 또 다른 모습을 띠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