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위대한 블루스 락 기타리스트 스티비 레이 본의 듀엣 앨범 [Solos, Sessions & Encores]
THE VERY BEST OF STEVIE’S COLLABORATIONS
스튜디오 트랙, 라이브 잼, 협연곡 등 6곡의 미발표 곡 포함 총 14곡 수록
전설적인 프로듀서 존 해몬드에게 발굴된 이후 사망할 때까지 네 장의 스튜디오 앨범을 남긴 스티비 레이 본은 텍사스 일렉트릭 블루스의 계보를 잇는 위대한 블루스 맨이자 열정적인 로커였으며 때로는 저명한 세션 맨이기도 했다.
에릭 클랩튼, 버디 가이, 로버트 크레이와 투어 중이던 그가 1990년 8월에 헬기 사고로 사망했을 때 그의 작품 제목처럼 하늘도, 팬들도 울었다.
이번 앨범은 스티비가 다른 뮤지션들과 가졌던 협연들만을 추려서 모은 컴필레이션으로 대부분의 수록 곡들이 기존에는 발표되지 않아 일부는 부틀렉을 통해서만 감상할 수 있었던 작품들이다.
블루스의 대가들인 앨버트 킹, BB 킹, 폴 버터필드와 함께 일렉트릭 블루스 특유의 끈적함을 잘 표현하고 있는 ‘The Sky Is Crying’ 과 제프 백과 함께 터프한 로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Goin’ Down’ 이 인상적인데, 서프 기타의 황제 딕 데일과 함께 천연덕스럽게 연주하고 있는 ‘Pipeline’ 에서는 의외의 여유를 느낄 수 있기도. (한장식)
1990년 8월 31일, 스티비 레이 본(Stevie Ray Vaughan)의 장례식에 참여한 잭슨 브라운(Jackson Browne)과 보니 레이트(Bonnie Raitt), 그리고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는 <Amazing Grace>를 불렀다. 공연을 마치 그를 태우고 돌아가던 헬리콥터가 지독한 안개 때문에 추락하면서 변방으로 밀려난 블루스를 회생시킬 젊은 피라는 극찬을 받던 스티비 레이 본은 이 세상을 떴다. 1990년 8월 27일. 고작 10년이라는 활동으로도 그는 충분히 전설로 남게 되었다. 그의 죽음을 기리는 공연이 1996년에 치러졌고, 그 공연 실황은 「A Tribute To Stevie Ray Vaughan」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공개되었다.
잭슨 브라운은 스티비 레이 본에게 아주 각별한 의미를 가진 인물이다. 데뷔 앨범도 발표하지 않은 신인이 1982년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에서 보여준 연주에 감동한 잭슨 브라운은, 스티비 레이 본과 그의 밴드 더블 트러블(Double Trouble)의 데뷔 앨범 제작을 위해 기꺼이 무료로 스튜디오를 빌려주었다. 거기서 스티비 레이 본의 데뷔 앨범 「Texas Flood」(1983)가 만들어졌다. 데이빗 보위(David Bowie) 역시 그의 모습을 보고는 당시 레코딩 중이었던 새 앨범 「Let's Dance」에 스티비를 초대해 그의 기타를 앨범에 담았다.
스티비 레이 본은 더블 트러블을 결성하기 이전에 텍사스의 여러 로컬밴드를 거쳤다. 그중 보컬 루 앤 바튼(Lou Ann Barton)이 재적하고 있던 트리플 스레트(Triple Threat)도 있었다. 스티비 레이 본과 동갑이었던 루 앤 바튼은 그의 여자친구였다. 이때가 1977년. 밴드가 깨진 이후 그가 결성한 밴드가 바로 더블 트러블이었고, 에픽 레이블과 계약을 마친 후 레이블 A&R의 권유로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에 선 것이다.
이후, 1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스티비 레이 본은 그야말로 블루스를 회생시킬 젊은 피로 자리매김하기에 충분했다. 앨버트 킹(Albert King)의 연주를 들으며 블루스의 세계에 빠진 그는 거칠고 투박한 텍사스 블루스의 전통을 이어받았고 뛰어난 테크닉과 감성으로 많은 블루스 팬들을 감동시켰다. 블루스계의 대부 B.B. 킹은 틈날 때마다 스티비 레이 본의 연주를 칭찬했다. 그가 아니었어도 충분히 칭찬해야 마땅한 연주였지만 블루스의 거물까지 나선 것은, 누구나 인정하듯 스티비 레이 본이 블루스의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의 곁에는 많은 친구들이 있었다.
지난해 공개된 「The Real Deal: Greatest Hits, Vol. 1」(2006)에 이어 새로 발표되는 앨범 「Stevie Ray Vaughan & Friends: Solos, Sessions And Encores」는 스티비 레이 본이 친구들과 함께 연주한 트랙을 모은 컴필레이션이다. 이 앨범의 첫 곡 <The Sky Is Crying>은 그의 음악인생을 한번에 집약해주는 멋진 트랙이다. 스티비 레이 본의 유작으로 공개된 아웃테이크 모음집 「The Sky Is Crying」(1991)의 타이틀이기도 곡이기도 한 이 곡은 엘모어 제임스(Elmore James)의 곡으로 앨버트 킹도 자주 연주했던 트랙이다. 이번 앨범에 실린 버전은 1988년 재즈 페스티벌에서 B.B. 킹과 앨버트 콜린스, 그리고 블루스 하모니카의 대가 폴 버터필드(Paul Butterfield)와 함께 블루스 향연을 펼친 명 연주다. 게다가 스티비 레이 본에 대한 B.B. 킹의 찬사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이 자리에 블루스의 절음 피(new blood) 스티비 레이 본이 왔습니다!"라는 그의 격찬과 함께 펼쳐지는 <The Sky Is Crying>은 한자리에 모인 블루스의 대가들의 열정적인 연주를 담고 있다. 더구나 스티비 레이 본의 우상이었던 앨버트 킹과 비비 킹과 함께 하는 연주라니 생각만 해도 멋진 일이다.
이 멋진 연주로 문을 여는 「Stevie Ray Vaughan & Friends: Solos, Sessions And Encores」는 그가 참여한 여러 라이브 레코딩과 친구들의 스튜디오 레코딩에 세션으로 참여한 곡들을 모았다. 수록곡의 절반은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트랙들이라 스티비 레이 본의 팬에게는 더욱 각별한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그중 가장 오래된 레코딩은 그의 ‘진짜’ 친구인 루 앤 바튼과 함께 녹음한 <You Can Have My Husband>. 더블 트러블을 결성하기 이전인 1978년에 녹음한 이 곡에서 이미 그의 파워 넘치는 연주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You Can Have My Husband>를 제외하면 확실히 스튜디오 레코딩 세션으로 참여한 곡들에서는 그의 연주는 친구들의 음악에 부드럽게 녹아든다. 이를테면 같은 텍사스 출신 블루스 보컬리스트인 마르샤 볼(Marcia Ball)의 1984년 앨범 「Soulful Dress」에 실린 스티비 레이 본의 연주는 곡 전체에 걸쳐 자신의 연주하고 있지만 결코 전면에 나서지는 않는다. 블루스 아티스트가 아닌 데이빗 보위의 「Let's Dance」에서도 확실히 자신의 연주를 최소화하면서도 이펙트로는 결코 만들어내지 못할 감각적인 기타 연주를 선보인다.
하지만 블루스 아티스트의 작품에서는 자신의 강점을 최대한 살린 연주로 곡을 장악해나간다. 빌 카터(Bill Carter)의 <Na-Na-Ne-Na-Nay>의 경쾌한 질주도 빼놓을 수 없다. (1988년에 공개된 빌 카터의 「Loaded Dice」에 실린 곡이다.) 텍사스에서 밴드를 결성해 활동한 블루스 기타리스트이자 보컬 자니 코플런드(Johnny Copeland)의 1983년 앨범 「Texas Twister」의 수록곡 <Don't Stop By The Creek, Son>과 블루스 색소포니스트 A.C. 리드(A.C. Reed)의 1987년 앨범 「I'm In The Wrong Business」 수록곡 <Miami Strut>에서 역시 경쾌하게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연상시키는 특유의 헤비 리프를 선보인다. 그의 연주 가운데 블루스의 느낌이 가장 적게 표현된 곡은 1987년 영화 ‘Back To The Beach’의 사운드트랙에서 딕 데일(Dick Dale)과 함께 연주한 벤처스의 명곡 <Pipeline>의 커버다. 그 무렵 인기를 끌던 헤비메틀 밴드의 기타리스트가 된 양 질주하는 리프 속에서 날렵한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하지만 그가 어떤 곡을 연주한다고 해도 결코 블루스의 강렬한 느낌을 살려내지 못한 곡은 없었다. 그것은 이번 앨범에 수록된 여러 라이브 트랙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가 사망하기 전에 발표한 마지막 앨범 「In Step」(1989)이 드디어 영국 차트에도 오르게 되면서 스티비 레이 본은 오랜만에 활동을 재개한 영국 최고의 기타리스트 제프 벡(Jeff Beck)과 함께 투어를 벌이는데, 이번 앨범에 실린 <Goin' Down>은 바로 그때 녹음된 라이브 레코딩이다. 1985년 스티비 레이 본이 공동 프로듀서로도 참여한 로니 맥(Lonnie Mack)의 1985년 앨범 「Strike Like Lightning」을 발표하고 이듬해 폭스 시어터에서 치른 공연에서 들려주는 <Oreo Cookie Blues>의 연주는 생생한 라이브의 현장을 소리로 보여준다. 1988년 뉴올리언스 재즈 앤 헤리티지 페스티벌에서 거물 블루스 피아니스트이자 보컬인 케이티 웹스터(Katie Webster)와 함께 한 무대에서 연주한 <On The Run> 역시 생동감이 넘친다. 보니 레이트와 함께 무대에 섰던 1985년 시애틀 라이브에서는 우아하게 <Texas Flood> 연주를 보여주고 있으며, 스티비 레이 본이 기타를 잡는 계기를 제공한 친형이자 블루스 기타리스트인 지미 본(Jimmy Vaughan)의 밴드 패뷸러스 선더버즈(Fabulous Thunderbirds)와 함께 ‘Saterday Night Live’에서 연주한 <Change It>의 연주도 강렬하다.
무엇보다 이 앨범에서 가장 멋지고 감동적인 라이브를 들려주는 것은 ‘텔레캐스터 기타의 제왕’ 또는 ‘텍사스 텔레캐스터 달인’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앨버트 콜린스(Albert Collins)와 함께 한 <Albert's Shuffle>을 꼽게 된다. 두 사람의 블루스 연주는 그야말로 불꽃이 튄다. 앞서 언급한 <The Sky Is Crying>과 함께 이번 앨범 최고의 트랙으로 꼽아야 할 트랙이다.
「Stevie Ray Vaughan & Friends: Solos, Sessions And Encores」는 부드럽게, 때로는 광폭한 연주로 친구들을 빛내준 스티비 레이 본의 곡을 한자리에 컴필레이션이다. 스티비 원더의 앨범 「Characters」(1987)나 제니퍼 원스(Jannifer Warnes)의 「Famous Blue Raincoat」(1986) 또는 밥 딜런(Bob Dylan)의 「Under The Red Sky」(1990)에도 스티비 레이 본이 참여했지만 그의 존재가 크게 부각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스티비 레이 본 사후에 공개되는 또하나의 앨범 「Stevie Ray Vaughan & Friends: Solos, Sessions And Encores」에서 만나게 되는 그의 친구들만으로도 스티비 레이 본의 감성과, 그의 연주와, 그의 친구들을 확인하기에는 결코 부족하지 않다. 아직도 건재한 블루스계의 거물들이 있긴 하지만, 비비 킹의 언급대로 기력을 잃어가던 블루스계에 수혈할 ‘뉴 블러드’ 스티비 레이 본은 너무 빨리 이 세상을 떠났다. 그 아쉬움이 사후에도 스티비 레이 본의 이름으로 기억할만한 앨범을 계속 공개하게 만든다.
스티비 레이 본의 곁에는 항상 많은 친구들이 있었다.
그의 진정한 친구는, 이 앨범을 듣고 있는 바로 당신도 포함된다.
2007년 11월 한경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