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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적 송라이팅에서 팝 누아르까지! 피오나 애플, 토리 에이모스, 크리시 하인드, 베스 기븐스에 필적하는 싱어 송라이터! Nicole Atkins (니콜 앳킨스)의 데뷔앨범.
회고적이면서도 유동적인 목소리에 매일매일 다른 옷을 입히는 다양한 사운드는 여러 가지 실험과 변주에 언제나 목마른 인디의 취향과 연관이 깊다. 앨범을 대표하는 곡 ‘Cool Enough’처럼 싱어 송라이터의 전형성을 유지하면서도, 앨범의 문을 경쾌하게 여는 첫 곡 ‘Maybe Tonight’, 웅장하게 시작하는 ‘Together We’re Both Alone’, 뮤지컬을 방불케 하는 화사한 이미지의 ‘Brooklyn’s On Fire!’를 비롯, 팝 누아르라는 정반대의 낯선 세계를 구축하듯 앨범은 굴곡이 큰 편이다. 곡 하나가 개체로서 또렷한 독립성을 갖지만 산만하지 않고 유연하게 흐른다는 것도 앨범의 강점이다. 이는 프란츠 퍼디난드, 카디건스, 오케이 고, 세인트 에티엔, 뉴 오더 등 다양한 음악을 경험한 베테랑 프로듀서 토어 요한슨의 역량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리하여 개별과 통합이 근사하게 균형을 이룬 앨범이 완성됐고, 조금 늦게 찾아왔다. 이제 재생을 시작하면, 변화무쌍하면서도 무게있는 새로운 싱어 송라이터를 만나게 된다.
사색적 송라이팅에서 팝 누아르까지
1. first record
처음으로 산 앨범이 뭐였는지 누군가 물어올 때, 우리는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을까. 니콜 앳킨스에게는 희미한 기억이다. 열두 살 무렵부터 동네 음반숍을 드나들긴 했는데, 주머니 털어 “처음” 샀던 게 홀 & 오츠였는지 그 시절 유행하던 뉴 키즈 온 더 블록이었는지 정확하게 떠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니콜에게 “직접 처음” 샀던 앨범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추천을 받았던 앨범은 선명했다. 열네 살 소녀의 조숙함을 감지한 삼촌은 트래픽의 [John Barleycorn Must Die](1970), 크림의 [Wheels Of Fire](1968)를 권했고, 재생해보니 과연 뉴 키즈와는 다른 깊은 울림을 느꼈다.
몇 년이 지난 후 니콜은 우연히 다락방을 청소하다 낡은 기타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되는 삼촌의 유품이기도 했다. 그리고 삼촌과 얽힌 여러 가지 기억들은 “고교시절 늘 파티에 초대되긴 했지만 가면서도 늘 분위기가 좀 웃기다고 생각했던” 소녀에게 열일곱에 카피 밴드로 처음 무대에 서고 커피숍을 전전하며 노래하는 계기이자 예비 가수의 문턱에 서게 된 디딤돌이 되었다. 또래들이 유행가를 들을 때 사이키델릭, 재즈, 블루스 록까지 차원이 높은 음악을 일찍 접하고 진지하게 교감했던 그녀는 ‘추천음반’을 통해 결국 미래를 보았다.
2. nostalgia
뉴 저지 출신의 니콜은 대학 진학과 함께 캘리포니아로 몸을 옮긴다. 그리고 미술이라는 전공보다는 마음껏 노래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를 제공한 대학생이라는 신분에 몸이 기울었다. 90년대부터 조금씩 움트기 시작한 인디의 흐름을 발견하자 더 많은 뮤지션이 모이는 뉴욕으로 이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뉴욕은 그리 관대하지 않았다. 솔로와 밴드를 두루 경험하는 동안 어느 정도 경력은 쌓였을지 몰라도 변변한 벌이가 되지는 않았던 시절, 결국 고향으로 몸을 돌렸다. 소일거리를 찾던 중 마을의 클럽에서 노래하려다가 그녀는 작은 굴욕을 경험하기도 했다. 니콜에겐 세계가 분명한 자작곡이 있었지만, 뉴 저지 클럽의 요구사항은 달랐다. 뉴 저지인이라면 누구나 자랑스러워하는 동향 출신의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본 조비의 카피. 다시는 그 무대에 서지 않았다.
고향은 이따금씩 작은 상처를 안겨 주었지만 그녀는 노래를 통해 고향과 화해했다. 2007년 공개한 세 번째 앨범(이자 지금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Neptune City]는 음악의 출처를 제목으로 달았다. 냅튠은 그녀가 살아왔고 살고 있는 뉴 저지의 마을이다. “앨범은 내 마을에 대한 기록이다. 뉴 저지는 가족과 친구들을 곁에 두고 성장하던 터전, 그리고 슬프고도 아름다운 추억이 깃들어 있는 공간이다. 누구나 고향을 이야기할 때 그의 인간사는 깊이 들여다볼 만한 가치가 생긴다. 더군다나 뮤지션에게 있어 개인의 생활과 역사는 창작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10년 넘게 노래를 끼고 살았던 싱어 송라이터는 고향에서 창작의 기반이 되는 유의미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니콜에게 뉴 저지란 음반숍을 드나들며 트래픽과 크림의 테이프를 품에 안고 들어와 떨리는 마음으로 재생했던 기억, 당신이 틀어놓은 로네츠와 조니 캐시를 따라 부르던 딸에게 “너는 훌륭한 블루스 가수가 될 거야”라고 지지하던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공간이다.
3. pop-noir
직접 가사를 쓰고 멜로디를 만들면서 글과 음에 깊이있는 내면을 담는 작업을 싱어 송라이터의 공공연한 자격으로 인정한다면, 니콜은 일단 그 원칙에 충실한 아티스트다. 하지만 자기세계를 표출하는 일에 능한 1인은 너무나 많다. 남다른 싱어 송라이터가 되고자 한다면 ‘싱어 송라이터 상식’ 이상의 변별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니콜의 노래에 호기심을 느끼고 귀를 열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는 뭘까? 먼저, 그녀의 노래를 누구보다도 일찍 발견하고 적극적으로 협업을 제안한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지금 니콜과 함께 무대에 서는 ‘니콜 앳킨스 & 더 씨(Nicole Atkins & The Sea)’의 멤버들로, 니콜이 마이스페이스에 올려둔 음원에 마음을 빼앗겨 접근했다. 템포는 느리되 단조로움과는 거리가 먼 풍성한 세계에 매혹된 것이다. 니콜의 목소리는 다양한 결을 가지고 있었다. 사색적인 발라드는 기본 소양이고, 뮤지컬 같은 대규모의 음악에도 적응할 수 있는 활기, 기성세대들을 동하게 할 과거 회귀의 무드,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산송장 하나 만들고도 남을 그로테스크한 연출까지 모든 게 가능했다. 피오나 애플, 토리 에이모스, 프리텐더스의 프론트우먼 크리시 하인드가 번갈아 교차되는 니콜은 가끔 포티쉐드의 베스 기븐스에 필적하는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로 변할 수도 있었다.
니콜은 자신의 음악을 “팝 누아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곡의 흐름을 이해하고 지배하면서 다양한 내면을 아낌없이 드러내는 그녀는, 아마도 가장 극단적인 에고를 드러내는 것에 가장 큰 의미를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를 증명해주는 트랙은 [Neptune City]에 수록된 ‘The Way It Is’다. 팝 누아르라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노래. ‘The Way It Is’는 물론, 전반적으로 작업에 많은 영감을 부여하는 작가는 세계를 종잡을 수 없는 컬트 감독 데이비드 린치라고 이야기한다. “그도 나처럼 미술을 공부했다. 그리고 자신의 세계를 위해 더 큰 도시를 찾았다. 내가 음악을 만들면서 영화를 기웃거리는 것처럼, 그도 영화를 만들면서 만화를 참고한다. 우리는 닮은 구석이 많다.” 린치의 영화 세계에 깊이 빠져드는 동시에 린치와 호흡을 이루는 음악감독 안젤로 바달라멘티에게도 이끌렸다. ‘The Way It Is’의 녹음을 마쳤을 때 그녀는 mp3 첨부한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극찬의 답신을 받았다. 니콜은 안젤로의 집으로 초대를 받기도 했다. 안젤로 역시 뉴 저지 출신이다. 이메일로, 그리고 음악으로 단계를 거쳐 대면한 두 뮤지션의 대화는 순조로웠다. 의미있는 만남을 가진 남녀는 긴 시간 뉴 저지와 음악을 이야기했다.
4. album
조금 늦게 폈다. 10대 시절 진지하게 음악을 들으며 진로를 결정하고, 20대 시절 ‘독립적인 소속’으로 홀로 노래하는 것은 물론 밴드를 두루 거치고 여러 무대와 여러 조직을 종횡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던 1978년생 니콜은 서른의 문턱에 서서 공식적인 인증을 받게 된다. 2006년 초 메이저 레코드사 콜럼비아와 계약을 체결했다. 두 번째 앨범이자 메이저 데뷔 앨범 [Bleeding Diamonds]를 2006년 공개했고, 2007년 가을에는 우리가 지금 만나고 있는 [Neptune City]를 선보였다. 앨범은 쌓여 온 감정과 경험과 이력의 소산이다. “1960년대 팝음악과 2000년대 인디음악의 결합”이라고 스스로 설명하기도 한다. 즉, 들었던 것과 행했던 것들을 묶는 작업이었다.
여유와 깊이가 함께 실려 있는 니콜의 중저음은 분명 회고적이다. 웅대한 편곡이 두드러지는 ‘War Torn’이 명확한 증거가 된다. 앨범을 관통하는 복고적인 성향은 안정감있는 생기를 부여하는 한편, 제목이 명시한 향수의 이미지를 지지한다. 회고적이면서도 유동적인 목소리에 매일매일 다른 옷을 입히는 다양한 사운드는 여러 가지 실험과 변주에 언제나 목마른 인디의 취향과 연관이 깊다.
앨범을 대표하는 곡 ‘Cool Enough’처럼 싱어 송라이터의 전형성을 유지하면서도, 앨범의 문을 경쾌하게 여는 첫 곡 ‘Maybe Tonight’, 웅장하게 시작하는 ‘Together We’re Both Alone’, 뮤지컬을 방불케 하는 화사한 이미지의 ‘Brooklyn’s On Fire!’를 비롯, 팝 누아르라는 정반대의 낯선 세계를 구축하듯 앨범은 굴곡이 큰 편이다. 곡 하나가 개체로서 또렷한 독립성을 갖지만 산만하지 않고 유연하게 흐른다는 것도 앨범의 강점이다. 이는 프란츠 퍼디난드, 카디건스, 오케이 고, 세인트 에티엔, 뉴 오더 등 다양한 음악을 경험한 베테랑 프로듀서 토어 요한슨의 역량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리하여 개별과 통합이 근사하게 균형을 이룬 앨범이 완성됐고, 조금 늦게 찾아왔다. 이제 재생을 시작하면, 변화무쌍하면서도 무게있는 새로운 싱어 송라이터를 만나게 된다.
글/이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