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이상한 비유일 지 모르겠다만 팝씬에서 도대체 언제 나올지 모르는 신작들이 간혹 있어왔다. 과도하게 딜레이되면서 결국 돈을 다까먹고 아직도 진행중인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My Bloody Valentine)의 신보, 앨범 커버가 공개된 지 무려 3, 4년이 지났음에도 아직 발매가 되지 않고 있는 건즈 앤 로지즈(Guns N' Roses)의 [Chineses Democracy]가 바로 그것들이다.
포티섀드(Portishead)는 결국 작년에 10년 만에 신보를 공개하면서 이 ‘딜레이 클럽’에서 탈퇴했는데, 앨범은 팬들과 평단을 만족시키면서 비로소 ‘10년 만에 나온 앨범이 아니라 10년이 걸린 앨범’ 이라는 평까지 듣게 됐다.
자, 우리에겐 어떤게 있을까. 많은 예시들이 떠오르지는 않지만 아마도 홍대 역사상 가장 오래 걸린 앨범 중 하나가 바로 데이드림의 본 작 [A Land of April]일 것이다. 어느덧 결성 10년차인 이들의 데뷔앨범이 드디어, 드디어 발매됐다. 멤버들의 우스갯 소리를 좀 보태자면 김대중 정부 때 시작한 것이 참여정부를 지나 이명박 정권 때 공개된 것이다. 사실 멤버들의 여러가지 개인적인 일들로 '딜레이'됐던 부분도 있었지만 이들의 작업은 그 몇 년 동안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졸지에 이것은 정말 신중한 앨범이 되어버렸다. 음악적인 면, 그리고 창작자의 태도면에서도.
보컬과 기타를 담당하고 있는 유승재와 기타리스트 신계현, 그리고 묵묵하게 자신만의 그루브를 만들어내는 베이시스트 강경문이 현재의 주축 멤버이다. 드럼의 경우 앨범에서 세 명이 녹음 했으며 대부분은 최근에 자신의 또 다른 음악적인 방향을 위해 팀을 나간 드러머 이종민이 담당했다.
2003년 6월에 본격적인 녹음이 시작됐다. 하지만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소스들 중에서는 단 두 곡밖에 쓸 수가 없었다고 한다. 스튜디오 작업 이후 수십번씩 재녹음을 하면서 레코딩 기술을 직접 체득했다는데, 중간에는 음원이 망가지기까지 하면서 수많은 변화를 겪을 수 밖에 없었다고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꾸준히 새로 녹음하면서 결국 이들의 초창기 계획들은 모조리 재구성된다. 곡들은 역시 끝없는 재녹음과 재믹싱을 거듭하지만 근 몇년 동안 계속 자신들의 만족감이 채워지지 않는 시점에서 각자의 개인적인 일들이 맞물리면서 밴드가 2년 동안 중단된다. 2년 이후, 결국 이들은 다시 한번 앨범 작업에 뛰어들게 된다.
4월의 땅 (A land of April)
드디어 공개된 본 작 [A Land of April]은 서정미를 바탕으로 구축된 락앤롤과 슈게이징/포스트 락이 적재적소하게 분포되어있다. 직선적인 락앤롤 트랙과 안개로 자욱한 슈게이징튠, 그리고 감성적인 발라드 트랙들이 쉴틈없이 쏟아진다. '일관된 다양성' 이라는 표현이 이 앨범에 적확한 것 같다.
코러스 걸린 청명한 기타 톤의 [금호동 무지개]로 앨범은 시작된다. 구수한 락앤롤 넘버인 [A Land of April]에서 보여지는 창법은 마치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의 루 리드(Lou Reed)가 툭툭 던지는듯한 보컬을 연상케끔 하기도 한다. 이것이 무리가 없는 비유인 이유는 이전에 데이드림의 몇몇 멤버들은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커버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한 두번 정도 공연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8분 여 동안 서서히 깊숙하게 파고드는 [침전], 앨범에서 가장 여린 감수성을 보여주고 있는 [Oscar Wilde], 슈게이징이 가장 빛나던 시기를 너무나 찬란하게 재연하고 있는 [Shiny Road], 소닉 유스(Sonic Youth)의 잔향이 묻어나는 [Red Violin], 고딕 컴필레이션을 통해 선공개 되면서 뜨거운 반향을 불러 일으킨 바 있는 [Radiobox], 그리고 너무 맑고 아득한 [별]과 같은 곡들이 순식간에 지나가면서 앨범이 마무리된다. 그리고 수년 동안 기다려온 팬들에게 보상이라도 하듯 빵에서 녹음된 라이브 버전의 [야시장]이 보너스 트랙으로 추가되면서, 길지만 찰나와도 같은 앨범이 마무리 된다. 개인적으로는 이들의 대표곡 [최홍만]이 수록되지 않은 것이 아쉽지만 나중에라도 혹시 [최홍만]을 앨범으로 듣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과연 다음 앨범은 몇 년이나 걸릴지는 모르겠다만.
물론 옐로우 키친이라는 큰 뿌리가 있지만 본격적으로 슈게이징/포스트락이 국내 인디 팬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던 것은 우리는 속옷도 생겼고 여자도 늘었다네와 데이드림이 활동하면서 부터이다. 시간상으로 봤을 때 데이드림의 첫번째 정규 앨범은 정말 너무 늦어버렸다. 정말 지독할 정도로 오래 걸렸다. 팬들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무척 불만스러운 부분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이 덕분에 너무나 진중하고 아름다운 앨범 한 장을 얻게 됐다. 앨범이 끝날 즈음 아마도 내 생각과 당신의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일보 후퇴 이보 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