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금의 로멘티스트 정길선, 민요, 그 포근함으로 만나다
정길선은 비범한 가야금 연주자이다. 냉정하게 접근하여 정교함으로 표현된 현대 가야금 음악에서 이지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원심력과 구심력의 과감한 연주기법으로 몰아치는 산조 음악에서는 놀라운 열정의 가야금 연주자이다. 정길선은 창작음악에 대한 탁월한 해석과 연주력으로 가야금 창작음악의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며 항상 새로운 도전을 하는 음악인이다.
2007년에는 ‘그녀의 사랑이야기’ 음반을 통해 월드뮤직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면, 최근에는 소박한 우리의 민요 속에서 한국의 색깔을 찾아 세계인의 공감하는 언어로 표현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작곡가 양승환과 함께하는 4집음반 ‘The Memory of the Past’에서는 ‘민요와 연애에 빠진 가야금’을 발견하게 된다.
조금은 화려한 저녁의 느낌으로 만들어진 한국의 대표적인 민요를 가야금과 재즈트리오와 함께 풀어가는 이번 음반에는 ‘수줍은 기다림’에서는 장산곶의 작은 포구를 떠나 번화한 도시에 정착해 살고 있는 수줍은 소녀의 모습을 만날 수 있고, ‘Flying Bird’에서는 리듬의 편린들이 조각조각 흩어지고 만나면서 경쾌한 유희를 하기도 하고, ‘Elan Vital’에서는 가야금의 화려한 가락들이 유머감각으로 여유롭게 말을 걸기도 한다, ‘Arirang Road’는 일상적인 3박 음악이지만 뒷부분에 빠른 템포의 급반전이 애교스러운 느낌으로 다가오고, ‘Lemonade’ 는 라틴풍의 보사노바리듬이 군밤타령의 주제선율을 살짝드러내주는 상큼한 음악이다. 이렇게 한결 친근해진 우리의 민요가 빗장 열린 사람의 마음으로 슬며시 들어와 동서를 넘나들며 훈훈하게 할것이며, 작은 목소리로 흥얼거리는 듯 유창하게 연주되는 가야금의 선율이 산책길의 산뜻한 발걸음과 함께 하면 좋을 것이다.
정길선은 이번음반에서 강렬한 음악도, 걸부진 음악도, 박진감 넘치는 음악을 말하려하지 않는다. 컨템포러리 음악에서의 예민함과 산조음악에서의 분망함이 친근한 한국의 민요로 인하여 한층 부드럽고 유연하게 변모하여, 여유롭고 모던한 모습의 가야금 음악으로 완성되었다.
클래식과 서양의 대중음악이 주류였던 세계 문화시장의 흐름이 최근에는 월드뮤직 중심으로 급선회하고 있다. 가야금 음악의 월드뮤직 가능성을 논한다면, 반드시 항상 앞서가는 정길선의 음악적 행보를 주목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