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과 와인 한 잔, 그 풍경에 잘 어울리는 록의 고전
HELLSONGS 'HYMNS IN THE KEY OF 666'
록 또는 헤비메틀을 향유하는 이들에게 변하지 않는 관심사란 '누가 더 헤비한 음악을 연주하는가'이다. 젊음과 열정의 상징이요, 끓어오르는 혈기를 음악이라는 도구를 빌어 분출해 내는 것이 바로 록, 헤비메틀의 매력이자 정신이기 때문이다.
비 영어권 국가에 살면서 록을 20년 이상 즐겨 들은 필자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파괴력 있는 분위기가 록의 전부일까? 분명 이런 음악에도 가사가 있고, 아티스트는 가사를 통해 무언가를 전달하고자 하지 않았을까? 그럼 나는 그 동안 미치도록 사랑했던 곡들의 가사를 통해 곡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알고 음악을 들었던 것일까? 답은 물론 '아니다', 아니 '못한다' 였다. 짧은 외국어 실력을 비롯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몰아치는 곡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가사를 이해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인 듯하다. 진정한 감상이라기 보다는 헤드뱅잉에 더 중점을 두고 음악을 향유해 왔던 것 같다.
장르를 불문하고 명곡들은 후대에 걸쳐 수도 없이 리메이크 된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리메이크 버전들은 얼마나 원곡의 느낌을 잘 살렸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 바로 그 느낌, 이것은 역시나 곡의 내용 전달과는 거리가 좀 있다. 수없이 많은 리메이크 곡들을 들어봤지만 개사한 리메이크 곡들은 지극히 적다는 점을 생각하면, 우리가 그 동안 들었던 리메이크 곡들은 어느 정도 '연주만 다시 한' 곡들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싶다.
북유럽 대중음악 강국 스웨덴에서 탄생한 HELLSONGS는 리메이크 밴드이긴 하나 그 느낌이 조금은 다르다. 실제로 본 앨범의 프로모션 카피를 처음 들었을 때 리메이크 앨범이 맞는 것인가 의아했고, 각 곡을 들으며 원곡의 멜로디와 전개를 찾아내느라 당황하기도 했다. 아마도 지금 음반을 듣고 있는 여러분도 원곡을 떠올리며 비교하느라 머리가 아플 지경일 것이다. HELLSONGS의 앨범 HYMN IN THE KEY OF 666은 밴드의 이름이나 앨범 타이틀에서 느껴지는 강렬함도 사악함도 수록곡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참으로 오묘한 곡들로 가득 차 있다.
2004년 초가을 스웨덴의 한 시골 헛간에서 동네 젊은이들을 모아 놓고 조촐한 공연을 하면서 시작된 HELLSONGS는 3곡의 록의 고전들을 전혀 다른 분위기로 연주하며 뜻밖의 반응을 얻었다. 멤버 모두가 골수 록 팬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듣기 좋은 라운지 형태로 곡을 바꿔 보니, 원곡을 모르는 일반 대중들은 오히려 더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다. 조금씩 인구에 회자되던 3명의 멤버들은 급기야 스웨덴 공중파 라디오 채널을 통해 전국에 알려지게 되었고, 누가 들어도 좋아할 만한 편안한 분위기 탓에 소위 라운지 메틀 이라는 다소 반어적인 장르로 알려지며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내었다. 더구나 편안한 슬로우 템포의 편곡은 가사 전달력 또한 배가 되어, 록 매니아들에게도 록의 고전이 들려주는 심오한 가사에 대해서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록 매니아라 자부하는 필자도 메탈리카의 Blackened가 환경에 대한 내용이고, 아이언 메이든의 Run To The Hills가 미국 인디언과 정부군 양자의 입장에서 바라 본 전쟁에 대한 시각에 대한 내용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가요 발라드를 들으면서 가사 내용에 감동을 받아 왔으면서, 정작 내가 20년 넘게 정말 좋아했던 장르의 음악의 가사 내용은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HELLSONGS의 음악이 편안한 음악이라고 해서, 멤버들이 록을 즐기지 않는 것은 아니다. 리더이자 기타리스트인 Kalle Karlson은 아직도 잠자리에 들기 전 Megadeth의 Symphony Of Destruction의 헤비한 오프닝 리프를 한 번씩 연주할 정도로 록을 사랑하고, At The Gates, Entombed, Sepultura를 즐기는 헤비메틀 매니아이다. 그러나 그는 록의 강렬하고 파괴적인 이미지 이면에 자리한 편안함을 발견하고는 매우 매력적인 충격을 느꼈고, 그것이 HELLSONGS의 오묘한 리메이크 방식을 낳은 원동력이 되었다.
"Billy Corgan's Zwan의 b-side를 들으며 록에 대한 역발상을 시작했다. 그들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밴드 Iron Maiden의 The Number Of The Beast 를 커버했는데 지금은 이 커버곡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 중 하나가 되었다. 아마도 수천 번은 들은 것 같다. 16살 때 The Number Of The Beast의 리프를 연주하긴 했지만, 가사에 대해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Zwan 버전을 듣고서야 비로소 내용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원곡을 훨씬 잘 커버한 곡이라 생각한다."
HELLSONGS의 데뷔 앨범 "Hymns In The Key Of 666"는 록의 고전을 커버한 앨범이다. AC/DC에서 Metallica와 Slayer, Iron Maiden에 이르는 헤비메틀 장르의 모든 거장의 곡들을 완전히 새로운 곡으로 변형시켰다. 리더인 Karlsson은 곡을 선택하고, 멤버 중 음악에 대한 학문적 지식이 가장 뛰어난 건반주자 Johan Bringhed가 기이한 편곡을 만든다. 여기에 전형적인 포크 음색을 지닌 매력녀 Harriet의 음색이 더해져 록의 고전들이 색다른 느낌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우리의 밴드명 HELLSONGS에 대해 대중들이 반어적인 이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것은 우리가 커버한 트랙의 원곡자들 모두가 지옥, 사탄, 악마의 뿔 등 전형적인 메틀의 이미지를 가진 밴드들이기 때문에 탄생한 이름이고, 앨범 제목 Hymns In The Key Of 666는 스티비 원더의 Songs In The Key Of Life를 록의 언어로 바꾼 것이다. 밴드명과 앨범 타이틀을 통해 우리는 단지 헤비메틀에 대한 애정과 좋은 면에 대한 감상을 표현하고자 했을 뿐이다."
다음은 Hymns In The Key Of 666 수록곡들에 대한 Kalle Karlsson의 짤막한 설명이다.
Iron Maiden: "The Trooper" - 전형적인 아이언 메이든 스타일의 곡, 러시아 전쟁에 관한 비극적인 가사를 담고 있다.
Megadeth: "Symphony Of Destruction" - 우리는 늘 전형적인 어떤 인물을 선출하고, 그가 자신을 어떻게 신격화 하는지를 보아야 한다. 가사는 인류의 가장 우매한 면을 보여준다.
Europe: "Rock The Night" - 스웨덴 출신 밴드의 곡을 한 곡 정도 넣고 싶었다. 우리의 어린 시절, 유럽은 매우 거대한 밴드였다.
Slayer: "Seasons In The Abyss" - 기타 파트는 그대로 두었다. 가사는 병들어 가는 인간의 뇌에 관한 연구에 대한 것이다.
Twisted Sister: "We're Not Gonna Take It" - 우리에게 이 곡은 부정의에 반대하는 성가와도 같은 곡이다.
Metallica: "Blackened" - 가사는 놀랍게도 환경에 대한 내용이다. 죽어가는 지구와 인류에게 두 번의 기회는 없음을 노래하고 있다.
AC/DC: "Thunderstruck" - 왈츠로 변형시킨 사랑의 노래이다. 아직은 부족한 나에게, 이 위대한 기타 솔로는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Iron Maiden: "Run To The Hills" - 아마 아이언 메이든의 곡 중 최고의 가사를 가진 가장 성공적인 곡이 아닐까 생각한다. 1절은 인디안의 시각에서, 2절은 미 정부군의 시각에서 씌어진 가사이다.
Black Sabbath: "Paranoid" - Harriet이 좋아했던 구절을 약간 변형했다. "Finished with my man because he couldn't help me with my mind..."
Saxon: "Princess Of The Night" - 나는 색슨의 앨범들을 그리 많이 듣진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메틀 밴드이고, 오랫동안 그들만의 음악을 연주하며 변화를 거부했다. 우리는 이런 점을 존중한다.
Karlsson의 설명은 대부분 가사에 대한 언급이다. 어찌 보면 HELLSONGS가 중요시하는 것은 강렬한 가사를 편안한 분위기로 풀어내는 반어적 재해석인 듯하다. 다른 장르로의 편곡을 통해 곡의 느낌은 완전히 달라졌지만, 곡이 전달하고자 하는 가사 내용을 편안한 분위기 속에 전달함으로써 곡을 더 명확히 이해하도록 하고 있으니, 어찌 보면 곡의 본질에 더 충실하고자 했음이 아닐까 한다. 물론 본 음반에 대한 평가는 이미 매우 다양하다. 편안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음악으로서 대중에게 어필하는데 성공했지만, 모 헤비메틀 전문지는 본 앨범에 0점이라는 평점을 내리기도 했다. 헤드뱅어들에게는 신과도 같은 밴드들의 고전을 전혀 록 답지 않게 연주했으니 그런 극단적인 평가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적어도 음악적 완성도를 놓고 평가한다면 생각은 조금 달라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장르에 대한 편견은 더욱 굳어지는 것 같다. 이런 고집스런 집착 때문에 시원시원한 록이 더 좋은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HELLSONGS가 던지는 메시지를 듣고 보니, 단순히 헤비한 이미지가 록의 전부는 아닌 듯하다. 더 명확한 가사의 전달을 통해 록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주장하는 HELLSONGS는 그 누구보다 록을 사랑하는 진정한 매니아들이며, 비록 색다른 편곡이긴 하지만 그들이 연주한 곡들은 신곡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완성도 높은 곡들로 평가하고 싶다.
적어도 장르에 대한 편견을 배제하고 HELLSONGS의 음악을 접한다면, 단지 원곡과 분위기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혹평을 내리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이제 원곡과의 비교 평가는 잠시 접어 두고 록의 정신이 아닌 그저 편안한 라운지 뮤직을 접한다는 생각으로 앨범을 만나보자. 감상이 끝나면 분위기 있는 바에서의 와인 한 잔이 생각날 지도 모르겠다.
1. Blackened (Metallica)
2. Jump (Van Halen)*
3. Symphony Of Destruction (Megadeth)
4. Breaking The Law (Judas Priest)*
5. We'Re Not Gonna Take It (Twisted Sister)
6. Orgasmatron (Motorhead)*
7. Seasons In The Abyss (Slayer)
8. Trooper (Iron Maiden)
9. Paranoid (Black Sabbath)
10. Princess Of The Night (Saxon)
11. Run To The Hills (Iron Maiden)
12. Rock The Night (Europe)
13. Thunderstruck (Ac/Dc)
14. Seek & Destroy (Metallica)*
* 보너스트랙 4곡 추가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