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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하고 사랑스런 매력, 그리고 내추럴한 투명감으로 가득한 식스펜스 넌 더 리처(Sixpence None the Richer)의 보컬 리 내쉬(Leigh Nash)의 싱그러운 첫번째 솔로 앨범.
[Blue on Blue]
아마도 90년대 후반에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라면 도대체 [Kiss Me]를 모를 수가 없을 것이다. 지금에 와서 밴드가 너무 뻔하다고 비웃을 지언정 적어도 내 경우에는 식스펜스 넌 더 리처(Sixpence None the Richer)의 곡들이 무척 소중한 시기의 기억 한 켠에 저장되어 있는 창고와도 같았다. 밴드는 베스트를 발표하고 흐지부지됐고-정확히는 내 기억 속에서 흐지부지됐고- 어느날 식스펜스 넌 더 리처의 그녀가 솔로앨범을 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Leigh Nash
텍사스에서 크리스찬 가정의 막내로 태어난 리 안느 빙햄(Leigh Anne Bingham)은 결혼하면서 남편의 성을 따르면서 리 내쉬(Leigh Nash)라는 이름을 갖는다. 취미는 그림 그리기, 비디오 게임, 그리고 오래된 컨추리 뮤직을 듣는 것, 싫어하는 것은 흡연, 무례, 더러운 손, 오만, 신체접촉을 수반하는 스포츠, 쓴맛 등이라고 한다. 어린시절부터 로레타 린(Loretta Lynn)이나 팻시 클라인(Patsy Cline) 등의 컨추리를 듣고 자라면서 음악과 친해진다. 12세 때부터는 현지의 컨추리 웨스턴 댄스홀에서 정기적으로 출연해 노래를 부르면서 끼를 발산한다. 1990년대 초에 교회에서 기타리스트인 맷 슬로컴(Matt Slocum)을 만나면서 비로소 밴드를 시작하게 된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식스펜스 넌 더 리처는 이렇게 결성된다.
이들은 1994년도, 그러니깐 리 내쉬가 16살 무렵에 첫 앨범 [The Fatherless & the Widow]를 발매한다. CCM 씬에서는 나름 인기를 얻었는데 이들은 다른 밴드 멤버들을 찾기 시작한다. 각 파트의 멤버들을 기용하면서 1년 후에 [This Beautiful Mess]를 발표하고 가스펠 뮤직 어워드인 도브 어워드(Dove Award)에서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그리고 1996년 5월에 리 내쉬는 CCM밴드 PFR의 드러머인 마크 내쉬(Mark Nash)와 결혼하게 된다. 이들은 CCM 뮤직 페스티발인 코너스톤 페스티발(Cornerstone Festival)에서 만나서 눈이 맞아 결혼까지 하게됐다.
1997년도에 셀프 타이틀로 정해진 세 번째 정규작이 발매되면서 이들은 전세계의 주목을 받는다. 빌보드 싱글차트 2위에까지 랭크된 [Kiss Me]의 놀라운 성공이 그 원동력이 됐는데 라스(The La's)의 지구상 가장 아름다운 팝송 [There She Goes]의 커버버전 역시 많은 인기를 얻었다. 그들의 노래는 수많은 CF, 그리고 영화에 삽입되면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국의 에드워드 왕자 결혼식 테마 음악으로 울려 퍼지면서 인기가도를 달렸다. 앨범은 플래티넘을 기록했고 [CCM Presents: The 100 Greatest Albums in Christian Music]이라는 서적의 19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2001년도에 다음 앨범인 [Divine Discontent]을 발표하지만 2004년도에 리 내쉬가 아이를 낳으면서 양육 문제와 이런저런 사정때문에 밴드는 결국 해체한다. 거대한 성공을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개인의 인생이 무엇보다도 중요했기에 이런 결정을 내렸던 모양이다. 해체이후 맷 슬로컴은 아스트로넛 푸셔즈(Astronaut Pushers)라는 밴드를 만들어 활동한다. 참고로 밴드의 멤버 중에는 디파쳐 라운지(Departure Lounge)의 멤버인 린제이 제이미슨(Lindsay Jamieson)이 포함되어 있었다.
Blue on Blue
리 내쉬는 2005년 초부터 다시 곡을 쓰기 시작하고 일년 후인 2006년 8월에 본 작 [Blue on Blue]가 세간에 공개된다. 앨범이 공개된 이후 여러 CCM 매체에서는 호의적인 평가를 내렸다.
사라 맥라클란(Sarah Mclachlan)의 프로듀서이기도 했던 피에르 마르샹(Pierre Marchand)이 본 작의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역시 어쿠스틱을 중심으로 음악적 방향을 이끌어 가는데 소위 이런 '방향성'은 사라 맥라클란과 공통되는 지점이라 하겠다. 하지만 사라 맥라클란이 피아노나 건반을 메인으로 가져가는데 비해 리 내쉬의 경우 현악기 중심으로 전개 시킨다. 확실히 피아노로부터 태어나는 음악과 기타로부터 태어나는 음악은 분위기와 전개가 기본적으로 다른 것 같다.
밴드 당시의 곡조라던가 그녀의 노래 부르는 방식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팬들 역시 안심하고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부르는 상냥한 팝송은 몇몇 삐딱한 인간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이런 류의 노래들은 거칠어진 감수성에 치유의 효과를 주기도 한다.
첫번째 싱글 [My Idea of Heaven]이 앨범 발매 한달 앞서 공개된다. 익숙한 코러스 멜로디가 드럼 킥을 중심으로 차분하게 전개된다. [My Idea of Heaven]와 [Nervous in the Light of Dawn]은 다이도(Dido), 넬리 퍼타도(Nelly Furtado), 그리고 마돈나(Madonna)와 쥬얼(Jewel)의 곡들을 만들어준 송라이팅 콤비인 릭 노웰스(Rick Nowels)와 빌리 스타인벅(Billy Steinberg)이 제공했다. 컨추리에 기반을 둔 담담한 멜로디를 가진 [Nervous in the Light of Dawn]의 경우 식스펜스 넌 더 리처 당시부터 꾸준히 함께 해왔던 맷 슬로컴이 참여한 유일한 트랙이기도 하다.
피아노와 역동적인 드러밍을 가진 [Ocean Size Love]는 두 번째로 싱글커트된 곡이다. 마치 바이올린소리와도 같이 끊임없이 서스테인되는 기타의 솔로가 더욱 가슴 벅차게 만든다. 싱그러운 모던록 트랙 [Never Finish], 크렌베리스(The Cranberries) 류의 멜로디와 보컬 기교가 연상되는 [Between the Lines], 드라이브감을 가진 [Blue] 등의 곡들 역시 인상적인 부분들이다. 굵은 클라리넷 소리가 분위기를 둥글게 만들어 주는 [Just a Little]을 끝으로 앨범이 마무리된다.
참고로 일본반에만 추가된 보너스트랙 [Blue Sky]는 토요타(Toyota) 자동차의 하이브리드 카 프리우스의 발매 10주년 기념 TV CF에 사용되면서 일본 팝차트 5위에 오르기도 했다. 앨범에 수록된 여느 트랙들 또한 CF에 잘 어울릴만한 아름답고 한번에 꼽히는 곡들로 채워져 있다. 대중적이되 그렇다고 너무 플라스틱 같지 않은 트랙들 말이다.
Afterhours
2007년 이혼한 이후 그 해 말 식스펜스 넌 더 리처가 재결성됐다. 2008년도에는 이들의 새로운 작업물들 또한 발매됐다. [My Dear Machine]이라는 EP를 공개한 이후 크리스마스 앨범인 [The Dawn of Grace]를 시중에 내놓았다. 크리스마스 앨범 공개 이후에는 "Love Come Down Christmas 2008 Tour"라는 타이틀로 투어를 가졌다. 이혼한 이후 과연 계속 남편의 성을 따를 것 인지가 의문스럽다. 아직 바이오그라피나 보도자료에는 그녀의 성이 ‘내쉬’로 되어 있는데 동양여성의 인권이 어쩌네 저쩌네 하는 서양 놈들이 사실 더 차별하고 악독하다는 증거가 바로 이런 사례에서 입증된다. 결혼한 여성이 남편의 성으로 바꾸는 것은 명절날 남자들 고스톱 칠 때 여자들이 차례상 준비하는 것 만큼 어처구니 없는 짓이다.
2007년도에는 일렉트로닉 밴드 델레리움(Delerium)의 앨범에서 몇몇 트랙에 보컬 피쳐링을 하기도 했는데 밴드의 멤버들과 폭스리아지(Fauxliage)라는 프로젝트 앨범을 발표하면서 함께 투어를 다니기도 했다. 크리스찬 록밴드 자스 오브 클레이(Jars of Clay)의 곡 [Mirrors and Smoke]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유독 맑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모셔가려는 움직임들이 특히 많은 것 같다.
Sweet-Blue Days
이 솔로 앨범은 기존과 많이 다르지는 않지만 비교적 재미있는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밴드 포맷이었던 식스펜스 넌 더 리처의 테두리를 살짝 빗나가면서 어레인지를 달리했다. 로리타 스타일의 보컬은 도나 루이스(Donna Lewis)나 카디간스(The Cardigans) 같고, 가끔씩 등장하는 성숙하고 슬픈듯한 보컬은 르네 말린(Lene Marlin)을 연상케 한다. 곡에 대해 스스로가 절실히 공감하고 있는 듯 보이며 그렇기 때문에 좀 더 능숙하게 들린다. 나이를 먹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결코 화려한 사운드는 아니지만 그녀가 표현해내는 컨추리, CCM, 재즈, 그리고 락과 팝의 요소들은 보기 좋게 어우러져 순수한 자연미로 넘쳐나는 맑고 깨끗한 아름다움을 표출해내고 있다. 그녀의 인생에서 발생한 기쁨과 슬픔, 그리고 따뜻한 상냥함이 고스란히 앨범에 녹아 들어가 있다.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풍요로움과 여유가 깃들어 있다. 자기 자신이 더욱 두드러지기 때문에 밴드 활동 당시보다 오히려 매력은 늘어났다. 거듭 얘기하지만 유독 맑은 목소리는 듣는 이들을 매료시킨다.
지금이 봄인지는 잘 모르겠다. 얼마 전까지는 추워서 옷 좀 껴입었는데 또 갑자기 반팔을 입고 돌아다녀도 덥기 시작했다. 그녀의 노래는 이렇게 춥거나 덥거나 상관없이 모든 봄에 어울릴 것 같다. 달콤하고 어쩐지 나른한 그녀의 가성 역시 변함없는 봄이다. 그리고 이것은 한가롭고 침착하면서도 질리지 않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가끔씩 옛날생각이 나서 매년 봄 무렵에는 식스펜스 넌 더 리처의 앨범을 꺼내 듣곤 한다. 내가 성격파탄에 조지고 부시는 밴드를 해서 이게 거짓말 같이 들리겠지만 틀림없는 사실이다. 아무튼 올해는 옛날 앨범 대신 이 앨범을 한번 들으면서 다녀봐야겠다. 뭐, 봄이니깐.
한상철 (불싸조 http://myspace.com/bulssaz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