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결같은 노이즈와 싱그러운 트위팝의 만남. 릴리즈 즉시 전세계를 사로잡은 2009년도 최고의 신인!
페인즈 오브 비잉 퓨어 앳 하트(The Pains of Being Pure at Heart)가 엮어낸 올해 가장 신선한 데뷔앨범 [The Pains of Being Pure at Heart]
[The Pains of Being Pure at Heart]
앨범은 미국에서 2009년 2월 3일에 발매됐다. 인터뷰에 의하면 앨범은 4,5주에 걸쳐 완성됐다고 한다. 레코딩/믹싱을 충분한 기간을 두고 하지 못한 이유는 돈을 넉넉하게 가지고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피치포크에 관한 인터뷰 내용을 덧붙여 보자면 이들은 "피치포크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긴 했지만 우리가 공연이 끝나면 일을 하러 가야 하는 상황은 변함이 없다"는 언급을 했다. 하지만 여러 페스티발을 바탕으로 이들의 상황은 점점 좋아지고 있는 듯 보인다.
[Everything with You]의 뮤직비디오가 공개되고 7인치 싱글이 발매되면서 이들은 단숨에 주목 받는다. 곡은 과연 '올해의 팝송' 답다. '올해의 싱글'로 이것을 지목하는데 이의를 제기할 수는 있겠지만 ‘올해의 팝송’으로 본 곡을 꼽는 데에는 그 누구도 만류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것이 진부한 전개, 익숙한 멜로디를 가지고 있을 지언정 적어도 곡을 듣는 그 순간만큼은 당신에게 행복감을 안겨줄 것이다.
쟁글거리는 앨범의 첫 트랙 [Contender]의 보컬은 앞서 언급한대로 유독 모리씨같다. 초기 MBV를 연상시키는 질주감과 서정미를 겸비한 [Come Saturday], 흩뿌려지는 신시사이저 소리가 이색적인 [Young Adult Friction]이 이어진다.
첫번째 싱글 커트곡인 [Everything with You]와 똑같은 코드전개를 보여주고 있는 아름다운 노이즈팝 트랙 [This Love Is Fucking Right!]은 일단 제목부터 죽인다. '이 사랑은 졸라 옳은 거야!' 라는 타이틀을 가진 본 트랙은 사실 필드 마이스(The Field Mice)의 곡 [This Love Is Not Wrong]의 답가와도 같은 역할을 하고있다. 비슷한 코드전개와 템포, 그리고 세상의 모든 사랑은 아름답다는 내용을 담은 가사는 충분히 TPOBPAH가 필드 마이스에게 다이렉트로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로 비춰질 수 있다.
뉴웨이브 트랙 [The Tenure Itch], 기타 인트로가 익숙한 댄서블한 트랙 [Stay Alive], 마치 스트록스(The Strokes)의 [Someday]를 연상시키는 [A Teenager in Love] 등의 곡들이 차례로 전개된다. 앨범의 막바지에 배치된 두 곡은 가장 헤비한 노이즈를 가지고 있다. 곡 전반부에 채워진 퍼즈톤의 노이즈가 돋보이는 [Hey Paul], 그리고 지저스 앤 매리체인의 [Just Like Honey]의 리듬패턴-사실 더 올라가 보면 로네츠(The Ronettes)의 [Be My Baby]의 그것-을 연상시키는 [Gentle Sons]은 얼얼한 노이즈로 앨범의 마무리를 장식한다. 하지만 이 노이즈는 실험적인 측면이라기 보다는 곡의 드라마를 만들기 위한 장치로 이해하는 편이 옳은 것 같다.
시원한 전개를 바탕으로 속삭이는 남녀의 혼성 보컬과 노이즈를 머금은 채 반짝거리며 질주하는 쟁글리 기타는 안타까운 멜로디와 맞물려 완벽한 '팝송'을 만들어 낸다. 부유하는 노이즈와 트위팝은 본 작에서 적절하게 믹스매치 됐다. 몇몇 인디팬들은 '나무랄 데가 없는 2009년도 US 인디팝 걸작' 이라며 본 앨범을 덩달아 추켜세우고 있는 중이다.
아무래도 TPOBPAH의 음악은 슈게이즈 리바이벌로 카테코라이즈드 되고 있는듯한 모양이다. 애교가 있는 멜로디와 굉음의 기타가 얽혀있다. 슈게이징+기타팝이긴 하지만 의외로 슈게이징의 색이 진하지 않기 때문에 듣기 쉬운 팝 앨범으로 분류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급기야 이들은 ‘슈게이즈/기타팝의 넥스트 제네레이션으로’ 지목 받으며 급속도로 인기몰이를 이어나가고 있는 중이다.
This Album Is Fucking Right!
캐치한 팝을 바탕으로 바운스한 리듬과 슈게이즈 기타, 그리고 백일몽의 보컬을 끼워넣는 방식은 사실 딱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이 가진 따뜻한 분위기는 라디오 뎁트(Radio Dept) 라던가 바셀린즈의 팬들에게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여지가 된다. 로켓쉽(Rocketship)과 코멧 게인(Comet Gain)의 90년대 퍼즈톤의 기타팝을 사랑했다면 역시 쉽게 다가갈 것이다. 발군의 이모팝 센스를 바탕으로 남녀 혼성보컬을 사용하는 것은 초기의 슈퍼카(Supercar)를 떠올리게 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자주 슈퍼카와 비견되곤 하는 것 같다.
‘만일 파스텔스의 스테픈 파스텔(Stephen Pastel)과 블랙 탬버린(Black Tambourine)의 팸 베리(Pam Berry)가 결혼하고 네 명의 아이를 낳아 팝 밴드를 조직한다면 바로 이런 음악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농담을 누군가가 하기도 했다. 블랙 탬버린의 경우 슬럼버랜드의 초기밴드로 1980년대 말에 결성된 전설의 노이즈/트위팝 밴드였는데, 슬럼버랜드의 앨범들을 수입하기도 했던 파스텔 뮤직의 사무실에 이들의 리이슈된 싱글 모음집 샘플 CD가 굴러다니기도 했다. 한참을 굴러다녔지만 비로소 TPOBPAH의 본 데뷔작을 통해 뒤늦게 관심을 갖고 뒷북을 치게 됐다. 사실 내 경우에는 다이너소어 쥬니어(Dinosaur Jr.)와 바셀린즈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다면 아마도 이런 밴드가 등장하지 않았을까 싶다.
약간은 조잡하지만 순수한 에너지를 바탕으로 80년대의 정취를 보기 좋게 재연해내고 있다. 바셀린즈와 C86 당시의 밴드를 동경해왔던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이 살아있었다면 아마도 이 앨범을 무척 좋아했을 것 같다. 그는 한때 BMX 밴디츠(BMX Bandits)와 같은 밴드에 들어가고 싶다고까지 말하지 않았는가. 왠지 소피아 코폴라(Sofia Coppola)도 이런 퍼즈톤의 싱그러움을 좋아할 것 같다. 이 문단에서는 너무 지례짐작만 하고 앉아있는데 하나 더 추가하자면 음악을 별로 안 좋아하는 내 동생도 이 앨범을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ㅋㅋㅋ
의도하지 않은 풋풋한 가슴떨림, 멜로디와 피드백의 적절한 조화는 가끔씩 청순한 공기를 만들어내곤 한다. 라스(La's)의 풍부한 기타 사운드와 스톤 로지즈(Stone Roses)의 공간감과 그루브들 또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지금 언급한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은 1980년대 당시의 밴드들이고 또한 영국 밴드들인데 사실 이들의 음악을 들으면서 21세기의 미국을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힘든 일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오래된 슈게이즈 팬들에게는 센티멘탈한 향수를 불러일으켜 줄 것이며 새로운 세대들에게는 참신한 빈티지 팝을 만끽하게끔 이끌어 줄 것이다.
싱거운 얘기를 하자면 TPOBPAH의 경우, 음악에 있어서는 딱히 새로울 게 없다. 하지만 이들에게 대부분의 미디어는 호의적인 평가를 내렸다. 새로운 것에 집착하고 노이로제에 가깝게 '익숙한 것'을 혐오하는 집단들이 이 ‘진부한’ 앨범에 환호한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의 미디어 하이프, 특히 피치포크가 시작한 뻥튀기를 인정하는 바 이다만, 결국은 단순히 '좋은 노래'의 힘으로 이런 상황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진정 ‘좋은 노래’ 앞에서는 진부하고 그렇지 않음이 별로 의미가 없다. 마치 나훈아의 노래를 들었을 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당신이 본 작을 듣게 된다면 과연 평론가 나부랭이들이 어느 지점에서 무너지기 시작했는지를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아, 갑자기 토스트가 먹고 싶어졌다.
희미한 수채화와도 같다. 그리고 그것은 가끔씩 반짝거린다.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안타까운 노스탈지아를 불러일으키곤 한다. 그런 류의 감정들이 앨범을 듣는 내내 이따금씩 솟구친다. 좌우지간 2009년도의 진짜 주인공은 당분간 이들로 낙점된 듯 보인다. 완벽한 청춘의 슈게이즈 기타팝이 비로소 다시금 만개했다.
한상철 (불싸조 http://myspace.com/bulssaz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