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가 20세기와 작별하기 위한 백 투 더 퓨처 Gigi – Maintenent
팝(POP)이 주는 가장 순수한 즐거움
팝의 잔재미들 말고, 동상이라도 하나 세워야 할 것 같은 정상급 뮤지션들의 연주 실력 말고, 죄책감과 쾌감을 동시에 안겨주는 조이 디비전(Joy Division)의 음습한 무대 말고, 클럽의 원초적 비트 말고, 당신이 마지막으로 팝 사운드 그 자체만으로 순수한 즐거움을 느낀 것은 언제인지? 물론 이 질문은 어리석기 그지없다. 그런 사운드가 그리우면 언제라도 당신의 ‘Pet Sounds’나 ‘Rubber Soul’을 꺼내 들으면 된다. 이 쉬운 답을 두고 옛적 사운드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았던 이상한 주인공이 여기 있다. 콜린 스튜어트(Colin Stewart)와 닉 커고비치(Nick Krgovich)의 프로젝트 밴드, 지지(Gigi).
팝은 모노로!
지지의 ‘Maintenant’는 더도 덜도 아닌 필 스펙터(Phil Spector) 스타일의 팝이다. 커고비치와 스튜어트는 지지라는 프로젝트가 스펙터의 초기 작품들을 집대성한 ‘Back To Mono’ 앨범 위에 지어졌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고전적인 사운드를 지금의 스튜디오에서도 재현 할 수 있는지 시도한 실험 음반이라 해도 무방하다. 앨범 자체는스테레오로 믹싱 되어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좌우채널의 분리가 매우 약하기 때문에 거의 모노처럼 들린다. 특히 처음과 마지막에 의도적으로 배치된 ‘No, My Heart will Go on’과 ‘'Neathe the Streetlights’는 2트랙만을 사용해 오버더빙 없이 스튜디오 라이브 형식으로 녹음했다. 이데올로기만이 아니라 방법론마저도 필 스펙터의 ‘소리의 벽(The Wall of the Sound)’* 방식을 고스란히 재현했다. 그러다 보니 앨범의 작업기간도 4년이나 걸렸고 동원된 뮤지션의 수만도 두 멤버 포함 40명에 달하며 앨범에 수록된 15곡의 메인 보컬은 모두 다른 사람이다. 앨범의 타이틀은 ‘Maintenant (멩뜨낭/‘지금’, ‘현재’라는 뜻의 프랑스어)’라고 붙였고, 프로젝트 밴드의 이름은 고전 뮤지컬의 주인공 이름에서 따온 지지(Gigi)로 정했다. 두 사람 모두 캐나다의 영어권 지역 출신이면서 밴드이름과 앨범 타이틀 모두 프랑스와 연결한 점이 흥미롭다.
사운드에 어울리게 노랫말들도 간결하고 단순한 사랑이야기가 주이다. 군데군데 재미난 요소들도 눈에 보인다. 첫 곡의 제목에 들어간 ‘My Heart Will Go On’은 노랫말에 나오듯이 같은 캐나다인 아티스트 셀린 디옹(Céline Dion)이 부른 영화 ‘타이타닉’의 주제가가 맞다. ‘Alone at the Pier’의 노랫말에 등장하는 ‘96 Tears’는 퀘스쳔마크 앤 더 미스티리언스(? & the Mysterians)의 1966년도 히트곡이다. 이어지는 트랙 ‘Everyone Can Tell’에도 1951년 페티 페이지(Patti Page)가 히트시킨 ‘Mockin' Bird Hill’이 등장한다. ‘The Marquee’에는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가 나오는 영화 ‘지상에서 영원으로(From Here to Eternity)’가 언급된다.
프로젝트 밴드인 지지가 창조적인 엔진으로서 지속될지 여부는 장담할 수 없다. 스튜어트는 프로듀싱, 커고비치는 자기가 속한 두 밴드 피:아노(P:ano)와 노 키즈(No Kids) 활동을 계속 해나가야 하고 디지털 시대 대중음악의 지향점과는 반대로 흘러가는 느린 작업이라 더 이상 이들 이상의 시도가 있을 것이란 기대도 희박하다. 그래서다. 소리의 보편적 아름다움이란 팝의 미덕을 그대로 따른 최후가 될지도 모르는 앨범, ‘Maintenant’를 들어야 하는 이유. 20세기와 작별하기 위해서라도 21세기가 꼭 들어봐야 하는 작업이다.
* 필 스펙터 사운드의 기둥은 ‘소리의 벽(The Wall of Sound)’이라고 불리는 독특한 기법에 있다. 말로 설명하기는 무리가 있지만, 이것은 같은 멜로디를 연주하는 다수의 같은 악기를 동시에 녹음해 소리를 그 자체로 풍부하게 만들고 또 여러 다른 악기나 목소리는 에코를 더해 서로 섞어놓는 것이다. 벽돌들이 서로 맞물려 거대한 벽을 이룬 것 같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그러나 소리의 벽은 저가의 오디오, AM라디오, 주크박스에는 잘 어울리는 전략이지만 모든 소리를 정교하게 가다듬고 분리해야 하는 스테레오의 전략과는 상극이다. 또한 보컬이든 기타든 주도하는 세력이 분명해야 하는 오늘 날의 추세와도 맞지 않다. 이것이 필 스펙터가 비틀즈의 ‘Let It Be’ 앨범을 손봤을 때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가 반발한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