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이 오해받기 쉬운 시대의 사랑 노래 - 음악평론가 차우진
미리 밝히지만 이 글은 편견과 신뢰에 의한 글이다. 그 두 개가 어떻게 합치될 수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런 생각이 든다. 요컨대 박창근의 음악은 내게 그 둘의 교집합이다. 그러니까, 모든 게 우연이었다. 2005년이 막 시작되었을 때 한 선배로부터 그의 2집 앨범을 소개받은 것도, 작은 매체에 그에 대한 글을 쓴 것을 계기로 대구에 있는 그로부터 안부 메일을 받은 것도, 그 몇 년 뒤에 선배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그의 공연을 보고 또 드디어 얼굴을 마주하고 인사를 하게 된 것 모두가 사소한 우연, 어쩌면 인연이었다.
그의 2집을 처음 들었을 때 독특한 그의 미성과 착한, 그야말로 착하다고 밖에는 설명할 길 없는 노랫말이 특별하게 기억되었다. 사실 그의 노래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박창근을 설명할 때 어쩔 수 없이 김광석이나 정태춘을, 노래모임 가객의 활동을 불러와야 했다.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런 불필요한 수고없이 온전히 그의 노래만을 설명할 수 있기를 바라기도 했다. 6년 만의 3집인 <무지개 내린 날개 위의 순간>을 듣고 어쩌면 그런 바람이 이뤄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기에 실린 노래들은 사색적이면서도 사려 깊다. 막연한 말이라는 걸 잘 안다. 들어보기 전에는 모를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빈 말이 아니라 나는 박창근이 앨범 소개 글을 부탁한 것조차 무척 기쁘다. 남사스럽지만 사실이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앨범의 수록곡은 대부분 사랑노래다. 한없이 낭만적이고 한없이 정직하다. 잠깐 왔다가는 찰나의 감정도 사랑이고 누군지도 모를 ‘누군가 당신’이 그리운 것도 사랑이다. 과연, 서른이 훌쩍 넘어버린 사내가 부르기엔 손발이 오그라드는 고백이지만 한편 이 사소하고 서투른 감정이 그저 예뻐서 듣고 또 듣게 된다.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은 “나랑 잘래?”다. 야한 얘기처럼 들린다. 맞다. 야하지 않다고, 말장난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좋아하는 연인에게, 혹은 그, 혹은 그녀에게 ‘나랑 잘래? 나랑 잠만 잘래? 꿈만 꿀래?’라고 묻는 게 어째서 야하게 들리지 않는단 말인가. 물론 교묘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사랑을 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진심으로, 누군가와 잠만 자고 싶은 순간이 온다는 것을. 그 무방비의 상태를 공유하면서 같은 공간의 공기를 나누고 너의 숨소리를 몰래 들이마시고 싶어질 때가 온다는 것을. 그건 너무 사소하고 미묘한 감정이라서 오해받고 또 좌절되기 십상이겠지만 어쨌든 그게 진심이라는 것을 나는, 그래 당신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박창근의 음악이 다른 음악과 다르게 들린다면 그것은 이 남자가 눈에 보일랑 말랑 사소한 것들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그것을 제대로 된 노래로 풀어내기 때문이다. 귀를 기울이면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이를테면 진심이다.
하지만 이 ‘진심’은 얼마나 허약하고 의뭉스러운가. 이때 우리는 새삼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그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니까 그의 노래는 진심이 오해받기 쉬운 시대에 부르는 순진한 연가(戀歌)이자 맹목적인 고백이다. 번번이 좌절될지라도 그저 착하게, 보기 좋게 꾸미고 자시고 할 것 없이 있는 그대로 부를 수밖에 없는 노래다. 여기 실린 14곡의 노래가 죄다 소중하게 들리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1. 푸른 바다와 그대 꿈에 관한 이야기
2. 무지개 내린 날개 위의 순간
3. 날아라 애벌레
4. 나랑 잘래?
5. 소년이 소녀에게
6. 다섯 계절 이야기
7. 비가 된 그대를 상상해
8. Falling in love with the moon
9. 사랑을 원해요
10. 아무 일도 일어나진 않았지
11. 미친 밤을 걷네
12. 넌
13. 이유3
14. 걱정하지 말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