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이솔이의 음악을 어떻게 들어주었으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대뜸 이러더라고요. '상처 받은 사람들이 내 음악을 듣고 마음껏 울었으면 좋겠어요.' 이솔이는 내가 보기엔 천성이 미스 스마일이었거든요. 의외의 면이 있어서 놀랐죠. 음악도 들어보니까 깊숙한 곳에 숨겨둔 비밀스런 상처들을 아프게 토해내고 있더라고요. 그런 이중성, 그게 스물아홉이 아닐까 싶어요. 특히 여자라면." (대중음악평론가 이대화)
경희대학교 포스트모던음악과 수석 입학, 미국 최고의 예술종합대학 'The University Of The Arts' 재즈 작곡 석사 과정 입학, 국내 유명 대학들의 외래 교수 임용, 이 모든 것들을 모두 20대에 이뤄냈다면? 실용음악계의 소문난 수재 이솔이가 첫 번째 정규 앨범을 발표하고 가요계에 정식 데뷔한다.
그녀는 이미 국내 정상급 가수들과의 다양한 작업 및 트레이너로 왕성한 활동을 해오고 있는 가요계의 숨은 고수로 통한다. <스물아홉>은 실용음악계의 엘리트 코스만을 밟아오던 그녀가 항상 애정을 갖고 동경해오던 인디 음악계에 처음으로 문을 두드리는 앨범이다.
유통사도 꼭 미러볼 뮤직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직접 이창희 대표를 찾아갈 정도였다고 한다. 작업 방식도 철저한 1인 프로듀싱을 지향해 작사, 작곡, 편곡, 연주, 레코딩까지 모두 혼자서 해결했다. 정확한 기교보다 풍부한 감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오토튠을 이용한 후보정 작업도 전혀 하지 않았다.
레코딩도 개인 작업실에서 최소한의 장비만으로 스스로 해결했다. 음악도 본인이 가진 상처를 아픈 그대로 내어 보이는 솔직한 스토리텔링에 중점을 두었다. 앨범이 다루는 내용은 주로 사랑의 상처에 관한 것이다. 생의 가장 아팠던 한 사랑의 이야기를 트랙들마다에 순차적으로 담아낸 컨셉 앨범이다.
자신의 음악이 어떻게 들려졌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그녀는 "상처 받은 사람들이 내 음악을 듣고 마음껏 울었으면 좋겠다"고 답한다. 타이틀곡 '乾(건)'은 눈물이 마르고 마음이 타들어가는 절박함을 한자 '마를 건'에 빗대어 표현한 곡이다.
익숙한 가요 패턴에서 벗어나 뮤지컬적인 구성을 취하고 있어 극적인 고조가 다이나믹하다. 놀라울만큼 다채로운 보컬의 음색은 곡의 흐름만큼이나 변화무쌍하다. 인트로 '도레미파솔라시(Acoustic Ver)'는 디지털 싱글로 발매했던 동명의 일렉트로니카 곡을 피아노 반주와 보컬 만으로 재해석한 곡이다.
피아노와 보컬 모두 한번의 녹음으로 끝냈다는 이 곡은 화려한 기교보다 감정의 극대화를 중시하는 앨범의 지향점을 보여준다. 재즈 보컬 말로에게 사사받던 스물 한 살에 만들었다는 '왜 이렇게', 만취 상태에서 원 테이크로 오열하며 불렀다는 '비밀', 마칭(Marching) 드러밍이 단순한 멜로디를 받쳐주는 '거식증', 간결하고 명료한 리듬이 인상적인 '가', 특별한 기교 없이도 감정의 기승전결을 선명히 드러내는 '마지막 기도', 수록곡 중 가장 무난하게 들을 수 있는 재즈팝 '이별 후'까지. 앨범은 이별의 과정을 천천히 짚어가며 사랑이 주는 잔인한 상처에 대한 다양한 잔상들을 풀어놓고 있다.
유일하게 밝은 분위기인 마지막 트랙 '손가락'은 이 모든 상처에도 결국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어쩔 수 없는 천상 여자의 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솔이는 <스물아홉>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저는 20대 내내 음악을 하면서 살았는데, 불현듯 정작 내 음악을 한 적은 없다는 억울한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음악밖에 없었던 나의 20대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어요. 스물아홉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