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진의 해금정악 별곡 (別曲) / 취타계주 (吹打繼奏)
별곡 (別曲) : 반바탕 가즌회상
영산회상을 즐기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원래의 악곡과 악기 편성 그대로를 즐기는 방법, 악기의 구성 내용에 변화를 주어 소규모 악기 편성으로 즐기는 방법, 연주자 수의 가감(加減)으로 음량의 조화를 다르게 하여 즐기는 방법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영산회상은 독주, 중주, 합주가 모두 가능한 음악이다.
더 나아가 영산회상은 곡목 자체를 길게 늘이기도 하고 줄이기도 한다. 그야말로 곡 내용을 달리하며 신축성 있게 감상할 수 있는 가변성을 지닌 음악이다. 이러한 점들은 서양 음악에서는 도저히 찾아보기 힘든 우리 음악만의 독특한 연주형태이다. 이처럼 영산회상은 연주 형식과 연주 내용면에서 모두 여유가 만만한 푸근하고 정겨운 음악이다. 그리고 연주자에 따라 그 맛이 서로 다를 수 있으니 영산회상에 접근하는 방식은 참으로 다양하다.
박혜진의 이번 CD는 영산회상 음악의 이러한 가변성 중 일부를 취한 것이다. 즉 해금, 가야금, 장구의 소규모 악기편성으로 연주하여 해금 음악의 좀 더 세밀한 부분을 듣게 해줄 것이다. 그리고 도드리에서 시작되어 천년만세로 끝나는 별곡의 내용이 될 것이다.
평상적인 영산회상을 조금 달리해서 연주하면 선인(先人)들은 이를 별(別)스러운 곡(曲), 즉 보통과 다른 곡 별곡(別曲)이라 칭해왔다. 별곡이란 곡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하여 영산회상의 내용을 좀 더 살펴본다.
영산회상은 18c 악보인 대악후보(大樂後譜)에서 보여지듯이 ‘영산회상 불보살’이라는 가사를 가진 성악곡이었던 바, 조선 중기 이후 가사가 떨어져 나가고 순수 기악곡으로 변화되었다 함은 이미 알려진 바이다.
현재 영산회상은 상령산, 중령산, 세령산, 가락더리, 상현도드리, 하현도드리, 염불도드리, 타령, 군악의 9곡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곡 편성 내용에 따라 그 이름이 아래와 같이 여러 가지로 바뀐다.
• 민회상 - 영산회상 9곡을 모두 연주할 때.
• 긴풍류 - 영산회상 중 상령산, 중령산을 가리킬 때.
• 잔풍류 - 영산회상 중 세령산 이하 군악까지를 가리킬 때.
• 뒷풍류 - 천년만세 즉 계면가락도드리, 양청도드리, 우조가락도드리를 가리킬 때.
• 가즌회상 - 영산회상 9곡, 도드리, 돌장, 천년만세까지를 모두 연주할 때.
• 온바탕 가즌회상 - 가즌회상 전부를 연주할 때.
• 반바탕 가즌회상 - 도드리, 돌장, 상현도드리 3장 4각 이후, 천년만세까지를
연주할 때.
• 별곡 또는 정상지곡(呈祥之曲) - 네 가지 연주 방법이 있다
㉮ 상령산, 중령산, 세령산, 가락더리, 상현도드리, 웃도드리 7장 마지막 2째 각
5박에서 느려짐, 돌장, 상현도드리 3장 4각 4째 박에서 본 빠르기로,
하현 도드리, 염불도드리, 타령, 군악, 천년만세까지 연주(온바탕 가즌회상)
㉯ 온바탕 가즌회상에서 천년만세를 빼는 연주
㉰ 웃도드리 시작, 돌장 이후 천년만세까지 연주(반바탕 가즌회상)
㉱ 반바탕 가즌회상에서 천년만세를 빼는 연주
위와 같이 연주되는 곡 모두를 풍류(風流)라고 부르기도 한다. 풍류는 속되지 않으면서 운치와 멋을 알고 자연을 사랑하는 옛 선현(先賢)들의 정신이 깃든 음악이다. 긴풍류는 여유롭고 담백하며 속 깊은 멋을 느낄 수 있고, 잔풍류는 차츰 몰아가면서 흐드러진 가락으로 건들거리는 흥겨운 맛이 일품이다.
본래 단잽이로 연주되는 경우의 풍류는 장구가 변죽을 때리고 해금도 원산을 공명통 가장자리로 옮겨 음량을 줄이는 것이 보통이다. 이는 음량이 작은 현악기를 위한 배려다. 그러나 독주나 중주 형식의 연주라면 해금 원산을 굳이 옮길 필요가 없다.
이번 CD에서 박혜진이 들려줄 음악은 그 곡명을 별곡, 정상지곡, 반바탕 가즌회상 이렇게 세 가지로 부를 수 있다. 그러나 필자의 견해로는 ‘반바탕 가즌회상’이란 곡명이 음악 내용이나 성격을 가름하는 이유로서 적합하고 타당한 이름이라고 본다.
‘반바탕 가즌회상’은 높은 음역으로 연주되는 웃도드리의 경쾌하고 흥겨운 느낌으로 시작된다. 돌장 부분에서는 속도가 다소 느려지며 상현도드리로 연결된다. 그리고 하현도드리에서 다시 속도가 느려지면서 음역도 낮아져 차분해진다. 이후 속도도 차츰 다시 빨라지고 음역도 높아져서 곡 후반으로 갈수록 악곡에 긴장감을 더하며 몰아간다. 계면가락도드리에서 잠시 여유를 찾은 뒤 양청도드리에서 빠르게 몰아치다가 양청도드리 7장 이후 마지막 악곡인 우조가락도드리에서 약간 느려지며 곡을 끝내게 된다.
취타계주(吹打繼奏) : 취타. 길군악. 길타령. 별우조타령. 군악
㉮ 취타는 글자 그대로 불어서(吹) 소리내고 쳐서(打) 소리내는 음악이란 뜻이다. 궁중(宮中)음악 중 군례악(軍禮樂)으로 분류된다.
만파정식지곡(萬波停息之曲)으로도 일컬어지는 취타는 임금의 행차(行次)등 왕실 거둥길(擧動:御路) 도중에 울려 퍼지던 곡이다. 아울러 군대의 행진(行進)과 전쟁 개선(凱旋)등에 쓰인 음악이다.
본래 순수 군악용 악기들로 다소 요란하게 연주되던 대취타(大吹打)곡을 관현악으로 옮긴 음악인바 고려 후기부터 비롯되었다고 전해지고도 있다.
관현악으로 연주되는 취타는 대취타의 태평소 가락을 장2도 올려 각 악기 주법 특성에 맞게 편곡되어진 것이다. 그러나 편곡 과정이나 절차는 알려진 바 없는데 이는 대부분의 국악곡이 작곡자나 편곡자를 알 수 없다는 맥락과도 상통한다.
쾌활하고 씩씩한 느낌의 곡이지만 현대 행진곡풍 음악보다는 느린 속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음악적 속도 차이는 현대인들의 걸음걸이와 같지 않은 옛 사람들의 여덟 팔자(八字) 느린 걸음을 상상해 보면 그 차이가 이해될 것이다.
본 CD에서는 해금으로만 연주되며 장구가 장단을 짚어 갈 것이다. 취타는 전7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2박 1장단의 취타 장단으로 되어있다. 취타의 음계는 흔히 임종평조(林鐘平調)로 알려졌지만 태주평조(太蔟平調)일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 앞의 취타는 그 곡의 길이가 짧아서 동가(動駕)와 군대 행진용으로 쓰여질 때 길군악(일명:절화折花)이 늘 계주(繼奏)되었다 한다.
길군악은 장(章)의 구성이 특이하다. 4장 형식으로 되어 있고 제3장 후에는 돌장1, 돌장2가 있다. 그러나 돌장1은 첫 각만 다르고 나머지는 초장과 같으며, 돌장2는 제2장과 완전 동일하다. 곡을 길게 늘이기 위해 ‘도는 장’ 즉 돌장을 삽입한 것으로 보인다.
제4장은 다음 곡인 길타령으로 넘어가기 위한 교량적 역할을 하는 악절처럼 여겨지도록 변조가락으로 연주된다. 평조에서 계면조로의 변조방법은 임종음(林鐘音)에서 눈에 띄게 중려음(仲呂音)으로 퇴성(退聲)을 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제4장 둘째각 임종(林鐘)이후의 임종음들은 모두 퇴성을 제대로 해주어야만 계면조로의 변화를 예고한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일부 개론서에는 길군악이 태주평조(太蔟平調)로 소개되고 있으나 곡태(曲態)로 보거나 종지부분의 연주법(演奏法)으로 보거나 또는 제4장의 변조악절로 보아서 길군악은 임종평조(林鐘平調)일 가능성이 높다. 8박 1장단으로 되어있고 제4장은 4박1장단으로 연주한다.
㉰ 길타령은 영산회상(중광지곡 重光之浀)의 타령을 변주시킨 곡으로 보인다. 길타령은 딴이름으로 일승월항지곡(一昇月恒之曲) 또는 우림령(雨林鈴)으로도 불린다.
앞서 길군악은 8박과 4박 장단으로 되어 있어 12박으로 되어 있는 취타에 이어져 계주(繼奏)되어도 그 음악 연주의 선율리듬이 행진속도라든지 보행방식에 어긋남이 없다.
그러나 3분식 12박 타령장단으로 되어있는 길타령은 앞의 두곡인 취타와 길군악의 리듬과는 기본적으로 다르다. 따라서 만약 길타령을 취타, 길군악에 이어서 연주하며 동일한 행진속도와 보행방식에 맞추기를 원한다면 무리(無理)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음악의 사리(事理)가 행진형태에 맞지 않는다는 뜻이다. 타령장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곡은 행진을 위한 곡, 즉 행악(行樂)이기보다는 순수연주를 위해 변주되어진 음악형태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 한다. 아마도 보행이 끝난 뒤에 후속 행사의 흥을 돋우기 위해 사용된 연주곡목일 수도 있겠다. 현재는 허튼타령으로도 불리우며 무용반주에 자주 쓰이는 음악으로 춤 반주에 어울리게 흥청거린다는 점도 이같은 점을 뒷받침 한다.
전 4장으로 되어있는 길타령은 전형적인 황종계면조(黃鐘界面調)의 형태를 보이며 제3장 이후는 영상회상의 타령과 거의 일치하고 있다.
㉱ 별우조타령은 금전악(金殿樂)이라고도 한다. 대부분의 개론서에 이 곡은 계면조인 영산회상 중 타령을 우조로 변조시켜 만들었으므로 별(別)스러운 우조타령이라고 간단하게 소개된다.
그러나 별우조타령은 영산회상타령과 평조회상타령 두 곡을 교묘하게 엮어 변주시킨 특이한 형태의 음악으로 주목받아야 할 곡이다. 선현(先賢)들의 깊은 예지(叡智)와 음악적 통찰력에 감동을 느낀다. 선율 상행시(上行時)의 음계와 하행시(下行時)의 음계를 서로 다르게 구성한 조치야말로 실로 교묘한 장치의 증거이다.
상행음계는 黃,太,仲,林,無의 임종계면조(林鐘界面調)로 되어 있지만, 하행음계는 無가 아닌 南을 사용하여 황종평조(黃鐘平調)로 변환시킨 점이 특이하다.
따라서 이 음악 전체를 통하여 높은 음역의 가락에서는 계면조의 느낌을 받지만 낮은 음역의 가락에서는 우조 즉 평조의 느낌을 받게 된다.
이 음악은 독립되어 연주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취타에서 시작하여 길군악, 길타령, 별우조타령으로 계주(繼奏)되며 이 곡 후에는 군악이 이어진다.
전 4장으로 되어 있고 타령 장단을 사용하지만 영산회상타령과 평조회상타령의 32장단보다 4장단이 더 많은 전 4장 36장단으로 되어 있다.
㉲ 군악은 그 곡명이 영산회상 및 평조회상의 그것과 같다. 만약 이 곡이 취타계열음악에서 마지막으로 계주되어지는 음악이 아니었다면 그 곡명(曲名)의 동일함 때문에 어느 음악을 지칭하는지 혼동되었을 것이다.
곡의 이름은 같지만 이 곡은 영산회상, 평조회상의 군악과 조금 다르다. 우선 초장에서 한 장단이 늘어난다. 그리고 太를 아래음정에서부터 깊게 끌어올리는 연주법을 자주 사용하고 있다.
나아가 제 2장의 앞부분 5장단은 새로운 운지법(運指法)을 사용하며 전혀 다른 가락으로 변주되어 기존의 군악곡이 아닌 새로운 군악곡으로 탈바꿈한다.
이 부분은 매우 특색 있는 선율이어서 감상자들이 주의 깊게 들으면 신선한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이후의 가락은 기존의 군악과 같으며, 장단은 타령장단으로 기존과 같다.
이상 취타계주(吹打繼奏) 각 곡목들의 특징을 간단히 살펴본바 이 곡들은 뒷곡으로 갈수록 시대적으로 비교적 근세에 가까운 음악임이 틀림없으며, 아직도 학술적으로 규명되어져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 있다고 본다.
어찌되었든 이 음악들의 예술적인 우수성과 가락짜임의 빼어남은 어느 곡에도 뒤지지 않는 명곡들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으니 강호제현(江湖諸賢)들에게 널리 감상되어지기를 염원한다.
( 글 : 공연예술학 박사 조 운 조 )
박혜진
해금연주자 박혜진은 계원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 한국음악과 및 동 대학원 졸업 후 이화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 음악학부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또한 경인교대, 경원대학교 강사, 서울국악관현악단 단원을 역임했다.
7회의 해금 독주회를 개최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중이며 제 22회 난계국악경연대회 입상하는등 두각을 나타냈다. 그리고 강릉시립교향악단, 용인쳄버오케스트라와 협연 등 국내외 다수 연주회를 개최했다.
현재는 계원예고, 이화여자대학교, 수원대학교 강사로 활동하며 후학을 지도중이고, 중요무형문화재 제 1호 종묘제례악 전수자로 활동하며,사단법인 한국국악교육학회 간사, 사단법인 한국정악원 이사, 해금합주단 ‘이현의 사랑’, ‘잉어질 소리모임’ 회원으로 활동중이다.¬
음반 참여 연주자
박거현/ 장구
장구연주를 맡은 박거현은 중요무형문화재 제 1호 종묘제례악, 제 46호 피리정악 및 대취타 이수자로 활동중이며, 현재 해금연구회, 예악연구회 회원으로 활동중이다.
한양대학교, 단국대학교, 국립국악고등학교, 선화예고, 계원예고에서 강사로 활동하면서 후학을 지도중이고 현재 국립국악원 정악단 부수석으로 활동중이다.
김형섭/ 가야금
가야금 연주를 맡은 김형섭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음악대학원 졸업 및 박사과정에 재학중이며, 현재 국립국악원 정악단 단원으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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