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길 위에선 음유시인의 정관. 이근중 1st Story
2012년 초봄, 여기 낯선 한 장의 음반이 있다. 이근중이라는 생소한 이름.
그 흔한 디지털 싱글 한 장 없이 대뜸 열세곡을 담은 앨범을 우리에게 내밀었다. 앨범 속으로 들어가면 놀라움이 서서히 커진다.
작사 작곡 편곡 연주가 바로 이 청년 한 사람에 의해 이루어진 것, 그리고 앨범의 전 곡이 아무런 어시스트 없이 통기타 한 대와 목소리만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포크음악의 전성시대인 1970년대에도 이런 과감한 시도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근중의 데뷔 앨범을 관통하는 정서는 고독하고 쓸쓸한 정관(靜觀)이다. 이 노래들은 현란한 모든 테크닉과 음향 효과로 도배질 되다시피한 요즘의 음악 트렌드에 비추어 보면 한 마디로 텅 비어 보인다.
목소리와 기타 이외의 공간은 어두운 침묵이다. 이것은 김중만이 인물을 묘사할 때 즐겨 찍은 모노크롬의 명암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이 침묵의 여백은 겉으로는 즐겁고 발랄하지만 속으로는 몇겹의 내상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지금-여기 젊은이들의 초상이다.
모두가 이 떠들썩한 대도시의 소외된 섬이 되는 시대의 고독한 내면이 가령 ‘Rain’ 같은 노래의 풍경이 되는 것이다.
통기타 스트로크 특유의 그루브감이 돋보이는 ‘늦은 밤이라도 괜찮아’나 ‘이별’ 같은 트랙에 이르러서도 이 진지하지만 박탈당한 감성은 모든 악절마다 진하게 스며들어 있다.
이근중은 함부로 흥분하지 않고 함부로 도취되지 않는다. 이 앨범의 최절정은 마지막 직전 트랙 ‘생각’이다. 앨범의 끝점으로 가서야 처음으로 꽁꽁 묶은 감정의 사슬을 풀어 헤치는 그 순간 우리는 슬픔의 연대를 뜨겁게 경험한다. 그리고 짧은 에필로그의 제목은 놀랍게도 ‘Intro’이다.
음유시인에게 길은 끝나지 않는 것이다. 길은 또 다시 다른 길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