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일에게서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은 무엇일까? 꽤 오랫동안 생각해 온 이 질문은 결국, 이번에는 그가 과연 어떤 음악을 내게 들려 줄 것인가 하는 기대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음악의 내용과 스타일, 그리고 전달하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번번이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기존의 틀을 벗어난 방법을 들고 나오는 그의 음악에 대해, 이런 식의 기대와 예상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돌이켜 보면 벌써 오랫동안 정재일은 눈에 띄는 곳에서든 띄지 않는 곳에서든 꾸준히 이런 작업을 계속해 왔다. 영화나 공연을 위한 음악, 전시 및 설치, 퍼포먼스와 융합된 음악 표현 등 그의 다양한 시도는 우리에게 늘 새로운 가능성을 환기시킨다는 점에서도, 그는 이미 독보적인 존재가 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010년의 솔로 2집 ‘Jung Jae IL’ 이후, 아직 그의 솔로 앨범을 들을 수는 없지만, ‘Incendies’(2012), ‘Savoy Sauna’(2014), ‘상림’(2014)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작업들을, 언제든 다시 들을 수 있는 음원, 앨범의 형태로 정리, 발표하고 있는 것은 참 반가운 일이다.
정재일의 디스코그라피를 더욱 풍요롭게 할 새로운 작품은, 2013년 10월 방영된 KBS의 다큐멘터리 ‘의궤, 8일 간의 축제’를 위해 만들어진 음악으로, TV 방영 이후의 추가 작업을 거쳐, 박창학이 가사를 쓰고, 정가 보컬리스트 박민희가 노래한 테마송 ‘비웃어 주오’ 등의 새로운 곡을 더한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이자 컨셉트 앨범의 형태로 마무리했다. 최근 발매된 그의 작업들과 마찬가지로, 이 앨범 역시 그의 솔로 앨범으로 규정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밀도 있는 음악을 가득 담고 있다.
그룹 ‘푸리’에서의 활동, 2009년 영화 ‘바람’의 사운드 트랙 등, 그 동안의 많은 작업을 통해 정재일은 국악의 요소들을 그의 음악적 표현의 한 축으로 사용해 왔는데, 그것이 그저 소위 국악과 양악의 만남이라는 표면적인 차원에 그치는 일 없이, 국악의 특징들과 현대 팝음악의 본질적 융합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었다는 점을 잊을 수 없다. 이 앨범은 그런 의미에서도 정재일의 현재를 보여 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국악이라는 방법론은 더 이상 그에게 융합 가능한 하나의 이질적 요소가 아니라, 이미 그의 안에 체화되어 그 자신이 된 그의 소리, 그의 리듬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이번 작품을 통해 확실히 보여 주고 있다. 한국에서 태어난 뮤지션이라면 아무도 자유로울 수 없는 이 고민에 대한 답에, 그는 아마도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 중 한 명일 것이 분명하다. 아니, 어쩌면 그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정재일에게서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은 무엇일까? 내게는 분명 그것이 있고, 어쩌면 아직 난 그것을 듣지 못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매번, 내게 그 질문을 잠시 잊어 버리게 하는 음악을 들고 찾아온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이번에도 역시 그의 음악은 어김없이 새롭다. 내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곳을 향해 그의 음악은 늘 한 발씩 더 나아가고 있으니까 말이다. 당분간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그저 늘 놀랄 준비가 되어 있을 뿐이다. (박창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