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힙합 무상급식, 버벌진트의 [go easy]
'기름같은 걸 끼얹나', '약속해 약속해'를 기억하는가?
독특한 캐릭터와 가사, 멜로디 감각으로 본령인 힙합을 넘어 소녀팬들의 수를 늘려가고 있는 뮤지션 버벌진트가 그의 네 번째 정규작 [go easy]를 선사한다.
애피타이저 [go easy 0.5]에서 선보였던 뇌쇄적인 멜로디와 생활밀착형 가사는 여전하다. 더 깊어지고, 더 넓어졌을 뿐.
싱어송라이터 버벌진트가 노래에 담는 이야기들은 2010년대를 살고 있는 20, 30대의 한국 남녀가 까페에서, SNS에서, 술자리에서 떠들 법한 흔한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노래에 담기는 방식은 세상에 단 하나 뿐인 방식이다.
검정치마의 조휴일을 기용한 타이틀곡 '좋아보여'는 강남대로라는 한정된 공간을 배경으로 하여 몇 초 안 되는 짧은 순간 동안 일어나는 남성의 심리적 변화를 훑어가는 방식으로 가사가 쓰여졌다. 이별 후의 재회라는 흔한 주제를 지금껏 시도되지 않은 방식으로 풀어낸 것이다.
연인의 배신, 짝사랑이라는 닳고 닳은 주제들 역시 버벌진트의 손길을 거치면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어베일러블', '우아한 년 2012'과 같은 전혀 다른 깊이와 긴장감을 가진 작품으로 탄생된다.
10년 가까이 버벌진트의 장인정신 힙합을 즐겨왔던 힙합팬들 중에는 이 앨범이 담고 있는 에너지가 낯설게 느껴질 이들도 있을 것이다. 여중생들 다리가 점점 길어지고, 한반도의 인종별 인구 분포도가 바뀌고, 여름 기후가 변화하고, 버벌진트의 가사 주제는 달라지고...
그러나 과연 지난 작품들을 돌이켜보면 버벌진트가 변화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가?
그리고 그가 팬에 대한 배려심으로 음악을 만든 적이 있었던가?
[무명(無明)], [누명], [The Good Die Young]에 이어 [Go Easy]로 계속되는 버벌진트의 음악적 여정에 함께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각자의 선택이다. 언제 합류해도 좋고, 떠나도 해꼬지하지 않는다. 버벌진트와 그의 음악은 심하게 쿨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