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선은 새천년식 양반이 되고픈 작곡가 겸 가수다. 지배계급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다. 뒷짐 지고 팔자걸음하면서 시 좀 읊겠다는 것이다. 원래는 역사 공부하는 사람인데 풍류에 빠졌다. 줄 좀 퉁기고 북 좀 두들기는 양반들을 다그쳐서 악단도 만들었다. 전범선이 통기타로 멍석을 깔고 그 위에 노래를 뽑으면 전상용이 드럼으로 장단을 맞춘다. 여기에 장원혁이 베이스로 균형을 잡으면 최현규가 전자기타를 타고 노는 식이다.
고래로 풍류의 제일은 사랑타령이라 했던가. 전범선과 양반들은 사랑타령을 한다. 갑오년 초부터 마포나룻가 몇몇 구락부에서 공연을 해온 끝에 사랑가 열 마당을 모아 첫 정규음반을 낸다. 양반들을 규합한지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전범선은 지난 사년간 서울, 춘천, 미국, 영국 등지를 떠돌며 곡을 써왔다.《사랑가》는 말하자면 전범선의 총각작임과 동시에 오랜 사랑타령의 산물이다.
사랑타령에도 여러 갈래가 있다. 전범선과 양반들은 요즘 청년과 아낙들이 흔들어대는 빵빵한 곡조는 뽑지 못한다. 대신 사랑이 마음 속 한구석에 던지고 가는 여백의 미를 숭상하여 읊조리는 듯이 한가한 풍악을 울린다. 한숨 느긋이 돌려주고 두 박자 쉬어 주는 그 여유가 양반들의 풍류에는 참 중요한 것이 아니던가.
《사랑가》는 명월이라는 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다. 곡 순서에 따라 명월에 대한 사랑도 무르익어 간다. 애정의 온도와 습도는 계절과 같다. 전범선과 양반들이 노래하는 사랑의 본질은 한순간의 운우지정이 주는 <간지러운 떨림>보다 더 복잡하다 (설레임). <말라있던 볼테기마저 따스해>지고 <내 모난 삶도 동그랗게> 만드는 것이다 (따스해진다, 동그라미). 사뭇 느린 호흡에 한결 넉넉한 노래 가락은 곧 전범선과 양반들의 사랑타령에 가장 그럴듯한 구색을 맞춘다.
결국은 사랑타령이다.
전범선이 스스로 제작했다. 녹음은 김보종이 감독했고 추가 녹음은 스튜디오 브로콜리에서 강은구, 곽동준이 했다. 믹싱은 허정욱, 마스터링은 소닉코리아 전훈 부장이 했다. 조수지가 시각 설계를 담당했다.
글 / 엄태경, 전범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