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나, 우리의 깊고 고요한 밤
살아 움직이는 수많은 감정들에 대한 상념을 엮은 음악단편집
에피톤 프로젝트 세 번째 정규 앨범 [각자의 밤]
- CD & LP(Vinyl) 동시 발매!
- 미워하는 마음의 시작 이전부터 그 후까지, 감정의 흐름을 절제된 시선으로 따라가는 타이틀곡 '미움'
길고 깊고 고요한 밤, 어둠이 찾아들고 오롯이 홀로 남겨지면 머리로는 해결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들이 꾸물꾸물 싹을 틔운다. 즐거웠던 낮의 기억을 떠올리며 웃음짓는다거나, 힘찬 마음으로 새로운 다짐을 앞세우거나, 답장이 없는 그에게 서운하다거나, 아쉽다거나, 혹은 미워하는 마음. 두려움, 그리움, 분노와 질책. 고독과 불안. 이것들은 무서운 속도로 자라나 오직 '나'만이 존재하는 자아의 거울 앞으로 나를 데려간다. 어떤 껍질도 존재하지 않는 거울 앞에서, 말로 하기 힘든 마음의 풍경들이 수천갈래로 펄떡이며 생동한다. 나의, 당신의, 그리고 우리의. 각자의 밤은 그렇게 깊어간다.
에피톤 프로젝트가 2년 만의 새 앨범, [각자의 밤]으로 돌아온다. 2년 전 초여름의 입구에서 발표한 두 번째 앨범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는 공개되자마자 포털 사이트 검색어 1위를 점령하며, 가요계의 눈과 귀를 주목시켰다. 모든 공연의 매진 사례에 이어 앨범 전곡 프로듀싱을 맡아 화제가 되었던 이승기의 5.5집 타이틀곡 '되돌리다'는 5주 연속 1위를 달성해 2012년 싸이 '강남스타일'이 세운 기록과 타이를 이루었고 김완선, 2AM, 슬옹, 이석훈, 백아연 등 내로라 하는 뮤지션들의 러브콜을 받으며 꾸준히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선보였다. 드라마 <주군의 태양>에서는 처음으로 OST 작업에 참여, 홍대광 보컬의 '너와 나'를 통해 안방극장에도 인사를 건네는 등 단순히 '홍대 씬의 잘 나가는 뮤지션'이 아닌, 작곡가 겸 프로듀서의 입지를 탄탄히 다지며 잃어버린 감성을 일깨우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모든 뮤지션이 그렇듯, 새 앨범을 준비하면서 그 역시 숱한 고민의 밤을 보냈다. 다양한 작업을 거치는 동안 좋게 말하면 '스타일', 나쁘게 보자면 '자기복제'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은 그에게도 여지없이 찾아왔다. 지난 앨범에서 모든 보컬 곡에 자신의 목소리를 채워넣은 그는 변화를 고민했다. 그리고 가장 자신다운 길을 택했다. 객원보컬 체제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여러 번의 반복된 오디션 끝에 낙점된 타이틀곡의 주인공은 손주희다. Lucia(심규선)라는 걸출한 보컬리스트를 배출해낸 에피톤 프로젝트가 새롭게 선보이는 신인 손주희는 이번 앨범에서 총 두 곡의 보컬리스트로 참여했다. 타이틀곡 '미움'은 미워하는 감정이 생기기 전부터 그 이후까지, 사랑하지만 그럼으로 인해 미워하게 된 애증(愛憎)에 관한 노래다. 에피톤 프로젝트만이 가진 섬세한 감성의 멜로디, 그리고 하나하나 감정을 곱씹는 노랫말을 잔뜩 물기 어린 목소리로 담아내는 손주희의 목소리는 곡이 가진 슬픔의 정서를 한층 더 깊은 심연 속으로 밀어넣는다.
타이틀곡 '미움'과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를 연상케 하는 '회전목마'까지, 두 곡의 보컬을 맡은 손주희에 이어 '플레어'에서는 파스텔뮤직에서 데뷔를 앞두고 있는 신인 뮤지션 Azin이 보컬로 참여했다. 꿈을 꾸는 듯, 환상을 보는 듯 멜랑콜리하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에 신비로움을 더하는 Azin의 목소리는 곡의 완성도에 매듭을 지으며 화룡점정을 일궈냈다.
'환상곡'에서는 '홍대괴물'로 불리는 선우정아와 호흡을 맞췄다. 당초 '난파'로 알려진 이 곡은 카츠시카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라는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거센 풍랑, 일렁이는 파도와 같은 풍경들을 절로 눈 앞에 펼쳐낸다. 에피톤 프로젝트가 "이른바 '에피톤표' 음악이라 불리는 음악적 아이덴티티를 한 번 부숴내고 싶었다"고 밝히기도 한 만큼, 이 곡은 기존의 그의 음악에서 접할 수 없었던 낯선 정취로 가득하다. 익숙하지 않은 셔플리듬과 화성 진행, 일렉기타와 일렉피아노, 오르간의 전면 배치 등 변화의 지점이 가장 확실하게 드러나는 곡으로, 에피톤 프로젝트가 선보이는 새로운 음악적 스타일을 감상할 수 있다.
앨범명과 동명의 첫 트랙 '각자의 밤'은 어느 곳이든 각자가 서 있는 '밤'이라는 시간에 대한 상념을 담은 곡으로 앨범 전체의 분위기를 예고한다. '친퀘테레'는 '이화동'을 잇는 두 번째 지명 삽입곡으로 여행을 좋아하는 그의 이야기가 어떻게 녹았는지 기대를 불러 일으킨다. 이탈리아 서부 리구리아 해안가에 위치한 이 아름다운 마을을 여행한 후 카메라에 남은 사진들은 북릿에 수록됐다. 상실과 부재에 관한 '낮잠', 적막한 밤의 음울함이 한층 두드러지는 연주곡 '불안', 2013년 장기 소극장 공연 '시월의 주말' 이후 작업하게 된 동명의 곡, 밤이라는 시간에 맞닿아 있는 죽음을 떠올리며 만든 '유서', 이른 봄비가 내리던 날 만들어져 가슴 속 깊이 쌓인 먼지를 털어내는 '환기', 유려한 멜로디와 편안한 분위기로 가장 에피톤 프로젝트다운 감성이 느껴지는 '나의 밤' 등 꽉 채워진 12트랙은 어느 트랙을 먼저 플레이하든 관계 없이 각자의 매력을 발산하며 생생하게 살아 반짝인다. 또한 앨범에는 온라인상으로 공개되지 않는 타이틀곡 '미움'의 차세정 보컬 버전이 보너스로 수록되어 있어, 담백한 그의 음색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에게 더욱 특별한 선물로 다가간다.
이번 앨범은 CD와 더불어 LP가 동시 발매된다. 최근 많은 뮤지션들이 LP를 발매하고 있으나, 앨범 발매와 동시에 LP 발매가 이루어지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이다. CD와 2LP로 발매되는 이번 앨범은 세계적인 마스터링 스튜디오로 손꼽히는 영국 Metropolis Studio의 Stuart Hawkes가 마스터링을 담당했다. 또한 감성적인 아날로그의 느낌을 더하는 LP(Vinyl) 프레싱 작업은 재즈의 명가 Blue Note의 타이틀과 The Rolling Stones, Stevie Wonder, Bob Dylan, Arcade Fire 등 해외 유명 뮤지션들의 LP를 제작한 미국 RTI에서 진행하는 등 심혈을 기울였다. 아트워크는 일러스트 작가 배중열의 작품을 보라색 톤으로 재작업하여 외로우면서도 슬픈, 한편으로 고상한 품격이 넘치는 앨범의 정서를 한층 배가시켰다.
전작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장편소설에 비한다면 [각자의 밤]은 각 트랙 모두가 나름의 개성을 가진, 12개의 '싱글'을 한데 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하나의 단편집이다. 너울지는 빛의 그림자 위에 펼쳐지는 수많은 감정들의 단상. 시간의 멜로디들이 춤을 춘다. 어디에서든, 무엇을 하든, 누구에게든 언제나 존재하는 각자의 밤 속에서, 길고 깊고 고요한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