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이문세, 김광석, 김현식, 안치환 같은 선배 분들의 노래를 들었어요. 어머니가 좋아하셨거든요. 아무래도 디지털화된 음악들은 제 적성에 맞지 않더라고요. 포크 음악을 좋아하기도 더 좋아했고 듣기도 더 많이 들었구요. 환경적인 영향도 있었고 제 취향에도 어울렸죠.”
1993년생이다. 이문세, 김광석, 김현식, 안치환이라니. 확실히 그 또래들이 공유하는 접점과는 거리가 먼 리스트다. 그린 데이(Green Day)에 영향을 받아 밴드도 해보고, 알앤비도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라지만, 로이킴은 이번 신작에서도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가장 잘할 수 있는 장르를 더욱 밀도 있게 밀어붙인다. 이른바 ‘포크 록’이라는 이름의 그것이다.
첫 곡 ‘영원한 건 없지만’에서부터 그의 지향은 분명한 만듦새로 드러난다. 잔잔한 피아노 위로 담담한 노래가 흐르더니 50초경에서부터 노래는 서서히 절정을 향해 상승하기 시작한다. 이 지점에서 그의 목소리는 영락없는 김광석이나 안치환이다. 곡은 후렴구에서 공간감 넘치는 드럼 비트를 더하면서 오프닝 트랙으로서의 인상적인 성취를 일궈낸다. 단순한 편곡이지만 그 묘를 제대로 살렸다고 할까. 1번 트랙의 주요한 역할, 즉 듣는 이의 집중력을 ‘환기’한 뒤, 작품 전체로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포털이 되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더없이 만족할 만한 스타트다.
김광석이나 안치환을 연상케 한다는 것이 결코 그의 약점은 아니라고 본다. 이미 그는 스스로가 메인스트림 쪽에서 드문 케이스에 해당하는 까닭이다. ‘영원한 건 없지만’에 이어 흘러나오는 ‘가을에’는 제목 그대로 이 계절에 듣기 딱 적합한 곡이다. 이런 노림수, 조금은 뻔하지만 결국에 중요한 것은 결과물의 완성도일 것이다. 나는 신보에서 이 곡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요즘 이 곡만 내내 반복해서 듣고 있는 중이다. 음악평론가가 누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혜택이라고 할까. 대중보다 조금 먼저 듣고 느낄 수가 있는, 작지만 큰 행복. 이 곡이 지닌 정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어쿠스틱 기타와 잔잔한 현악, 그리고 로이킴의 목소리. 이 세 가지만으로도 듣는 이에게 작지 않은 울림을 준다. 이 지점에서 그의 성장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앨범의 인상은 ‘Home’을 경유하면서 조금 변화한다. 확실히 ‘가을에’보다는 리듬 터치가 살아있는 곡이다. 이 곡은 무엇보다 스트링을 집중해서 들어야 한다. 과도한 떡칠을 자제하고, 곡 전체를 은근하게 받쳐주는 맛이 일품이다. 로이킴은 이 음반에서 전작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물량 공세를 퍼부었다. 각 분야 최고의 세션 연주자와 스트링 어레인저를 초빙해 사운드적인 측면에서도 최선의 노력을 경주한 것이다. 그러니까, 외형적으로는 스케일을 확장해 1집과의 차별화를 꾀했지만, 뭐랄까, 음악적인 지향에는 변함이 없는, 그런 음반이라고 보면 되는 것이다.
스케일의 확장은 어쩌면 독이 될 수도 있다. 규모가 커지는 만큼, 그 빈 공간을 채우려는 욕심이 들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현명한 자기 경영이다. 프로듀서와 많은 대화를 하면서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이 앨범에서 로이킴이 제대로 해낸 것 한 가지가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그 어디에서도 과잉이 들리지 않는다는 것. ‘날 사랑한다면’ 같은 트랙이 대표적이다. 후반부의 몰아치는 리듬 파트가 압권을 형성하는 이 곡은 ‘가을에’와 함께 음반의 또 다른 봉우리를 형성한다. 몰아치는 와중에도 중심을 끝끝내 유지하면서 결코 오버하지 않는다. 업 템포로 진행되는 ‘잘 있나요 그대’도 마찬가지. 담백한 기타 연주와 내추럴한 보컬로 듣는 이를 포근하게 감싸는 이 곡으로 분위기는 다시 한번 전환된다.
이 외에 따스한 청량감이 돋보이는 ‘롱디(Hold On)’, 핑거 스타일 기타리스트 정성하가 참여한 곡답게 화려한 변박 연주로 변별력을 획득한 ‘커튼’ 등, 앨범의 표정은 예상 이상으로 다채롭다. 음반은 ‘멀어졌죠’와 ‘Thank You’로 차분하게 마무리된다. ‘멀어졌죠’의 경우, 허밍에 가까운 코러스의 활용이 유독 돋보이는 곡이다. ‘Thank You’는 아마도 그의 가족이나 팬들을 위한 헌사일 테고.
비유하자면 이 음반은 모난 구석이라고는 보이질 않는, 잘 만들어진 기성품을 보는듯한 느낌을 준다. 이것은 결코 비판이 아니다. 모든 소리가 예측 가능한 선에서 작동하지만, 그 차후의 문제, 즉 이것을 잘해내느냐 못해내느냐의 갈림길에서 이 음반은 전자의 성취를 일궈냈다는 뜻이다. 익숙한 것들에 대한 다수 대중의 본능적인 호의를 간파할 줄 아는 것은 대중가수로서 갖춰야할 필수 덕목 중에 하나임을, 로이킴은 잘 알고 있다. 게다가 누군가의 말마따나 “그 어떤 음악과도 닮지 않은 음악은 끔찍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로, 그는 이 앨범에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고, 이를 성공적인 결과물로 이끌어냈다. 음악적인 욕심을 현명하게 경영해낸 이 음반이 그에 대한 증거다.
글, 배순탁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