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T DISNEY RECORDS: THE LEGACY COLLECTION
PINOCCHIO
2014년 6월 [라이온 킹(Lion King)]을 시작으로 [메리 포핀스(Mary Poppins)], [잠자는 숲속의 공주(Sleeping Beauty)], [인어공주(The Little Mermaid)] 등 기념 해를 맞은 월트 디즈니 명작들의 사운드트랙을 특별한 에디션으로 만날 수 있는 [월트 디즈니 레코드 더 레거시 콜렉션(Walt Disney Records The Legacy Collection)]이 중반을 넘어서고 있다. 공교롭게 2014-5년 시즌에 기념 주기를 맞은 주요 작품들이 많았던 덕분에 기획된 이 시리즈는 그 동안 구하기 어려웠던 노래들이나 음성 자료들이 실리며 디즈니 마니아들에게 열화와 같은 성원을 얻고 있다. 이번에 영화 공개 7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발매된 [피노키오(Pinocchio)] 역시 영화에 거의 근접한 사운드트랙과 다양한 보너스 피쳐를 담아 그 기대를 충분히 충족시키고 있다. 이번에도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의 비쥬얼 아티스트 로렐레이 보브(Lorelay Bove)가 처음으로 공개한 아트워크가 담겨있는데, 이 역시 콜렉터들의 구매욕을 자극하는 요소가 되기에 충분할 만큼 훌륭한 수준을 보여준다.
1940년에 최초로 공개된 <피노키오>는 1937년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Snow White And The Seven Dwarfs)>에 이은 두 번째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다. 이탈리아의 동화 작가 칼로 콜로디(Carlo Collodi)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오랫동안 큰 인기를 누린 작품이다. 빼어난 작품을 많이 만들어낸 디즈니 애니메이션 역사에서도 손에 꼽는 명작으로 평가 받는 <피노키오>는 미국 의회도서관이 후세에 전달하기 위해 보존하는 국립 영화 등기부(National Film Registry)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훌륭한 예술적인 가치를 인정 받고 있다. 사실 <피노키오>는 월트 디즈니가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의 엄청난 성공을 잇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은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2년이 넘는 제작 기간 동안 각각 7명의 감독과 작가들이 동원되었고, 영화 음악 역시 전작을 함께 했던 리 할린(Leigh Harline)과 폴 J. 스미스(Paul J. Smith)에게 맡길 정도로 굉장한 공을 들였다. 지금은 너무도 익숙한 말인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이라는 명칭이 처음으로 사용된 것으로 기록되는 <피노키오>의 음악은 1940년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최우수 오리지널 스코어(Best Original Score)’와 ‘최우수 주제가 상(Best Original Song)’ 부문을 수상하며 경쟁 부문에서 최초로 수상한 애니메이션 영화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최우수 주제가’ 부문을 수상한 곡은 당연히 ‘When You Wish Upon A Star’! 가장 심플한 것이 가장 아름답다는 진리를 확인시키는 이 노래는 당대 최고의 브로드웨이 스타였던 클리프 에드워즈(Cliff Edwards)가 연기한 지미니 크리켓(Jiminy Cricket)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는 노래이다. 영화의 오프닝과 마지막 장면에 쓰이며 가장 중요한 넘버가 된 이 노래는 미국 필름 협회 선정 ‘필름 역사 상 가장 훌륭한 노래 100곡’에서 7위에 링크되는 등 후세에 길이 남을 후한 평가를 받고 있다. 셀 수 없이 많은 리메이크를 통해 대중들에게 진득한 사랑을 받고 있는 이 곡은 디즈니 제작 텔레비전 시리즈와 테마 파크를 통해 재생산되며 기나긴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기도 하다. 익살 맞은 멜로디와 편곡이 즐겁기 그지 없는 ‘Little Wooden Head’는 서정적이고 평화로운 정취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곡이다. 제페토가 자신의 목공소에서 나무 인형을 만드는 장면을 노래한 이 곡은 영화에서는 들을 수 있는 제페토의 노래가 빠져있어 다소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시계 알람 소리를 이용해 만들어낸 사운드가 흥미로운 ‘Clock Sequence’와 발랄한 고양이의 이미지가 바로 연상되는 ‘Kitten Theme’은 짧지만 큰 임팩트로 사운드트랙을 이끌어나간다. 한편 ‘When You Wish Upon A Star’의 멜로디가 리프레이즈 되는 ‘The Blue Fairy’는 피노키오가 용감하고, 진실하고, 이타적임을 증명한다면 진짜 소년으로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하는 장면을 경쾌한 멜로디로 재구성해내는 트랙이다. 섬세한 현악과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관악 오케스트레이션은 [피노키오] 사운드트랙의 전체적인 구성을 주도하는 키워드라고 할 수 있는데 ‘The Blue Fairy’는 디즈니 영화 음악 특유의 마법 같은 순간을 잘 잡아내는 곡으로 손꼽을 만하다. 피노키오와 지미니 크리켓의 유쾌한 듀엣 ‘Give A Little Whistle’은 휘파람으로 만들어내는 두 캐릭터의 하모니가 즐겁기 그지없다. 피노키오의 살아있는 양심 역할을 하는 지미니 크리켓이 자신이 필요할 때면 언제든 휘파람을 불라고 알려주는 이 노래는 두 캐릭터의 관계가 돈독해지는 과정을 가장 잘 표현해낸 곡이기도 하다.
캐릭터와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설정된 ‘Old Geppetto’와 ‘Off To School’ 이후 등장하는 ‘Hi-Diddle-Dee-Dee (An Actor’s Life for Me)’는 학교에 가는 피노키오에게 스타가 될 수 있다고 꾀는 여우 어니스트 존(Honest John)이 부르는 곡이다.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 양쪽에서 활약했던 배우 월터 캐틀릿(Walter Catlett)의 목소리로 만날 수 있는 이 노래는 영화 전반에 걸쳐 피노키오가 유혹을 받을 때 사용되는데, 그의 고난을 만들어냄에도 불구하고 즐겁고 활기찬 멜로디가 귀를 자극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반면 처음으로 무대에 선 피노키오가 부르는 ‘I’ve Got No Strings’는 앳된 딕키 존스(Dickie Jones)의 보컬로 들어 더욱 신선하고 귀엽게 다가온다. 네덜란드, 프랑스, 러시아 인형들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곡의 후반부는 각 나라의 전통 음악에서 영감을 얻은 멜로디가 차용되며 피노키오의 처음이자 마지막 쇼를 성공적으로 완성해준다. 피노키오를 가둔 스트롬볼리(Stromboli)의 테마인 ‘Sinister Stromboli’와 지미니 크리켓과 피노키오의 재회를 그린 ‘Sad Reunion’은 무겁고 구슬픈 단조 풍의 멜로디를 사용하여 주인공들이 처한 위기를 표현하고 있고,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는 피노키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Lesson In Lies’는 스타카토를 통해 긴박하지만 웃음을 자아내는 구성을 완벽하게 만들어낸다. 이후 어니스트 존에게 또다시 속아 플래져 아일랜드(Pleasure Island)로 가는 피노키오의 상황을 명쾌한 멜로디로 설명하는 ‘Coach To Pleasure Island’는 다양한 호흡과 스타일을 계속 선보이며 뮤지컬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화려함을 과시하는 트랙이다. 또한 뾰족한 현악기로 지미니 크리켓의 분노를 표현해낸 ‘Angry Cricket’과 당나귀로 변하는 소년들의 모습을 그려낸 ‘Transformation’은 음악을 통해 이미지가 눈 앞에 떠오를 정도로 탁월한 오케스트레이션을 사용하며 긴장감을 더한다. 이후에는 고래 몬스트로(Monstro)의 배에 갇힌 제페토를 구하러 가는 피노키오의 이야기가 서사적으로 펼쳐지며 영화의 클라이막스를 음악으로 들려준다. 특히 섬세하게 구현된 텐션이 극에 달하는 ‘Monstro Awakens’와 ‘Whale Chase’는 절정으로 치닫는 드라마를 치밀한 구성으로 보여주며 모든 갈등이 해소될 때까지 결코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드는 마력을 선사한다. 첫 번째 CD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제목부터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A Real Boy’이다. 스스로가 용감하고, 진실하고, 이타적임을 증명해낸 피노키오가 푸른 요정의 도움으로 진짜 인간 소년이 되는 장면을 명랑하고 즐거운 편곡으로 담아낸 이 곡은 후반부에 ‘When You Wish Upon A Star’가 되풀이되며 그의 소원이 마침내 이루어졌음을 아름답게 알린다.
[레거시 콜렉션]의 백미라면 단연 기존에 공개된 사운드트랙 이외의 노래들인데 [피노키오]의 두 번째 CD에는 세 곡의 로스트 코드(The Lost Chords)와 보너스트랙이 담겨있어 주목할 만하다. 영화를 위해 만들었지만 사용되지는 않았던 노래들을 당시의 제작 기법을 사용하여 재현해내는 로스트 코드는 ‘No Strings’, ‘As I Was Sayin’ To The Duchess’ 그리고 ‘Rolling Along To Pleasure Island’가 수록되어 있다. ‘No Strings’와 ‘Rolling Along To Pleasure Island’ 등 두 곡에 비해 ‘As I Was Sayin’ To The Duchess’가 귀에 잘 들어오는데, 어니스트 존의 독특한 캐릭터가 잘 녹아있어서 특유의 능글맞지만 사랑스러운 느낌이 순도 높은 즐거움을 선사한다. 특히 이 곡은 [텀벨리나(Thumbelina)], [로랙스(The Lorax)] 등의 사운드트랙에 참여한 랜디 크렌쇼(Randy Crenshaw)가 빼어난 목소리 연기를 들려주고 있는데, 각종 애니메이션에서 성우로 활약하기도 했던 그는 월터 캐틀릿에 버금가는 연기로 새로운 어니스트 존을 성공적으로 소화해냈다. 보너스 트랙들은 지미니 크리켓을 연기한 클리프 에드워즈가 [미키 마우스 클럽(The Mickey Mouse Club)]을 통해 선보였던 노래들을 리마스터링해 실었다. <피노키오>에서 성공적인 목소리 연기를 들려준 이후 ‘5~60년대에 월트 디즈니 프랜차이즈에 고루 참여하며 스튜디오를 대표하는 목소리가 된 그는 [피노키오]의 [레거시 콜렉션]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얻고 있다. 모든 곡들이 귀하기 그지 없지만 ‘Mickey Mouse Club Book Song’은’50년대에 싱글로 한번 공개되었을 뿐 이후로는 앨범에 수록된 적이 없는 곡이라 그 시절의 향수를 공유하는 음악 팬들에게는 특별한 선물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레거시 콜렉션]을 통해 공개된 모든 앨범들이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구성을 보여주고 있지만 [피노키오]는 가장 오래된 사운드트랙을 원형에 가깝게 복원해냈다는 점에서 더욱 귀한 작품이 된다. 레코드로 음악을 듣는 듯 빈티지 느낌의 사운드를 살리고 있는 것도 독특하고, 최초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이자 아카데미를 수상한 명작의 위용을 여전히 과시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를 자극한다. 이 앨범을 가장 즐겁게 들으려면 영화에서 보았던 이미지를 모두 걷어낸 채 소리에만 집중해서 들어보길 권한다. 정확하게 재단된 오케스트레이션과 음표에 그려낸 듯한 감정의 흐름이 그대로 느껴져서 영화와는 별개로 느껴지는 음악적인 가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무 인형이 진짜 소년이 된 것 같은 마법이 듣는 사람 모두에게 내려질 것이라 확신한다.
글: 장민경(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