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네 이발관으로 데뷔한 정바비와 브로콜리 너마저로 데뷔한 계피가 만난 밴드 ‘가을방학’이 산책하기 좋은 이 가을, 우리에게 감상적인 방학을 선사한다.
가을방학은 언니네 이발관의 원년멤버이자 줄리아 하트, 바비빌 등으로 활동해온 송라이터 정바비와 브로콜리 너마저, 우쿨렐레 피크닉 등에서 편안하면서도 개성 있는 음색을 선보여 온 보컬리스트 계피의 프로젝트이다. 브로콜리 너마저의 성공적인 활동 이면에서 밴드활동에 대한 부담감 및 자신의 진로 등에 대해 회의를 거듭하던 계피는 결국 정규 1집인 [보편적인 노래] 작업을 마지막으로 밴드를 탈퇴하고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음악계를 떠난 바 있다. 그녀가 소란했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을 무렵 평소 좋아했던 밴드 줄리아 하트의 리더 정바비가 가벼운 데모 작업을 제안해왔다. 부담 없이 시작한 이 작업에 둘은 서로 크게 만족했고, 이는 자연스럽게 이후 작업으로도 이어지게 된다. 2009년 10월 이들은 디지털 싱글 [가을방학/3월의 마른 모래]를 발매하며 데뷔했으며, 이후 루오바 팩토리와 계약하고 민트 페이퍼 컴필레이션 [Life]에 자신들의 곡 ‘취미는 사랑’을 수록하는 등 정규 음반 발표를 향한 발걸음을 착실히 내디뎌 왔다.
노랫말이 가질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해온 정바비의 사려 깊은 송라이팅과 이성과 감성 사이의 탁월한 균형감각을 유지하는 계피의 음색이 어울려 노랫말의 내러티브를 생생하게 살렸다.
2010년 가을 선보이는 가을방학의 첫 번째 정규 앨범에는 그 동안 이들이 작업해온 19곡 중 12곡이 수록되어 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묘사, 호소, 유머, 암시, 스토리텔링 등 노랫말이 가질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해온 정바비의 사려 깊은 송라이팅을 바탕으로, 자기 얘기는 남 얘기하듯, 남 얘기는 자기 얘기하듯 부를 줄 아는 독특한 감성을 갖고 있는 계피의 목소리는 가을방학 만의 감성을 만들어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수많은 OST 및 이상은, 한영애 등의 음반에서 음악감독을 맡은 바 있는 이병훈의 탁월한 프로듀싱은 가을방학의 음악을 잘 가다듬어 한층 더 업그레이드해주었다. 편곡은 물론 음의 세밀한 배치 및 호흡에 이르기까지 디테일은 더 치밀해졌고 큰 그림은 더 또렷해졌으며 메시지는 좀 더 청자에 귀에 가깝게 다가오게 되었다.
‘취미는 사랑’은 [Life] 컴필레이션에 이미 수록된 곡의 풀 밴드 버전으로, 체코 작가인 카렐 차펙의 소설 중 ‘우주의 수많은 별은 남자신의 수집 콜렉션’이라는 구절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으며, 여성들의 공감 능력에 경외를 표하는 곡이다. 이외에도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의 집에 사는 것이 어쩐지 당연시되어있는 한국 20대의 자화상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린 ‘동거’, 이상의 소설 “봉별기”의 마지막 장을 덮고 그 감동에 취해 짝 안 맞는 양말을 신고 산책을 나간다는 내용의 ‘속아도 꿈결’, 남자아이들한테만 인기가 있을 뿐 여자아이들의 표를 얻지 못해 한번도 반장이 못 되어본 남자애의 얘기를 다룬 ‘인기 있는 남자애’ 등 다채로운 소재의 곡이 수록된 가을방학의 데뷔 앨범은 루오바 팩토리가 2010년 음악팬들에게 선사하는 귀중한 선물이다.
1. 샛노랑과 새빨강 사이
2. 동거
3. 곳에 따라 비
4. 속아도 꿈결
5. 취미는 사랑
6. 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
7. 이브나
8. 3X4
9. 인기 있는 남자애
10. 나비가 앉은 자리
11. 가을방학
12. 호흡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