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위안 같은, 라엘의 목소리. 라엘(Ra.L)의 미니앨범 < A >
라엘의 목소리는 악기다. 작은 체구에서 뽑아내는 탄식 같은 소리에서부터 긴 호흡으로 굵고 둔중하게 몰아 내지르는 음성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음색을 대할 때마다 듣는 이는 그녀의 내밀한 이야기에 귀를 세우고 가슴으로 음악을 들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24명의 목소리가 쌓여 웅장함을 형성했던 곡, 영화 <레미제라블> OST의 < One Day More >를 혼자서 소화해낸 라엘을 기억한다면 이 말에 끄덕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그녀가 미니앨범을 발매했다. 라엘의 최근 싱글 <잠을 좀 자고 싶어요>만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이번 음반은 그녀의 새로움을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마치 심연의 기저에서 갓 건져 올린 듯한 축축함, 어쩌면 싱그러운 아침에 눈앞을 뽀얗게 드리운 신선한 안개 같은 곡들은 듣는 이의 감성을 그녀가 이끄는 음악 속으로 자박자박 걸어 들어가게 만든다. 마치 물에 대한 메타포로 읽히는 듯한 라엘의 음악은 듣는 이의 가슴을 충분히 어루 만져주는 자연친화적이며 치유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그래서 라엘의 음악을 힐링 뮤직이라고 규정지어지는 것인지는 모르나 아직 그녀의 가능성은 다양하기에 무엇이라 틀을 만들기에는 아직 이르다. 라엘이 발표한 이번 곡들은 묘한 구석이 있다. 어쿠스틱 코드를 기반으로 한 앨범의 곡들은 상당히 흐트러진 듯 보이지만 잘 들어보면 상당히 깔끔하게 정돈되어있다. 마치 자유롭게 자라나는 나무들을 먼 곳에서 바라보았을 때 큰 하나의 숲이 되어있는 같은 뉘앙스랄까.
자작곡인 < Take It Slow >는 싱커페이션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곡으로 부모님의 행복한 웃음 속에서 슬픔을 느껴버린 라엘의 감정이 담긴 곡이다. < No(집에 갈 생각이 없어) >는 새롭게 믹스와 리마스터링 되어 그녀의 읊조린 듯한 나즉한 음성을 더욱 섬세하게 느껴볼 수 있다. 사라 바렐리스(Sara Bareilles)의 곡을 그녀만의 어쿠스틱으로 재해석한 < Brave >는 원곡이 좀 활기찬 용기에 관해 설파했다면 라엘은 많이 지치고 힘든 사람들에게 속삭이듯 위무하며 용기를 불어넣어 딛고 일어나라 말하는 것 같다. <좋겠다>는 기존에 피아노버전으로 싱글앨범을 발표한 곳이지만 이번에는 밴드버전으로 재 편곡 되어 음반에 실렸다.
훨씬 섬세하고 파워풀해진 내공을 지닌 곡으로 다가온 <좋겠다>는 라엘이 돌아가신 할머니를 떠올리며 써내려간 곡으로 소중한 이들을 잃은 사람들을 위한 치유의 노래라고 할 수 있다. 댄스와 일렉트로니카가 평정한 듯한 한국 가요계에서 이런 시도와 도전들의 등장은 반갑기만 하다. 몰개성적인, 하나로 편향된 가요신(Scene)에서 라엘이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으로 앞으로도 계속 진정 즐겼으면 좋겠다.
그녀의 미니앨범 제목인 < A >처럼 이제부터 새로운 출발이라고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는 라엘로 성장하길 바란다.
앞으로도 프로듀서로 싱어송 라이터로 더욱 두각을 발휘하는 그녀가 되기를 빌어본다.
글_ 정현해용(문화만담가)
1. Take it slow
2. No (집에 갈 생각이 없어) Remastered
3. Brave (네이버 토닥 Live)
4. 좋겠다 (Band ver.)
5. Take It Slow (In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