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은 물론 신을 대표할만한 신보 [Hoffnung]을 내놓은 Lacrimosa
고요한 어둠 속. 어느 순간 긴 어둠 사이를 뚫고 스며오는 촛불의 섬세한 불빛. 그 불빛이 파리하게 흔들리며 작은 이명이 다가온다. 자극이 없는 상황 속 그 소리는 어느새 섬세하고 분명한 점을 형성하며 모든 어둠을 물린다.
고딕과 아방가르드의 완벽한 조화, Lacrimosa
1991년 [Angst] 앨범으로 데뷔했던 그룹 라크리모사(Lacrimosa)의 음악은 어둠 속 빛의 기운처럼 자신들 음악의 파장을 잔잔하게 드리워 나왔다. ‘눈물과 한탄의 날’이라는 의미를 가진 ‘Lacrimosa’는 모차르트의 아름다운 서정성이 돋보이는 곡이며, 그의 대표작인 ‘레퀴엠’의 서러움이 정점을 이루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룹 라크리모사는 모차르트를 추종하는 틸로 볼프(Tilo Wolff)가 ‘레퀴엠’으로 축약될 수 있는 음악적 지향점을 지니고서 결성한 밴드이다. 데쓰메탈과 고딕, 둠메탈이 전성기를 이루었던 1990년대 중. 후반 대한민국에서 이들의 앨범이 소개되었을 때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았다. 어둠의 장르 중에서 주요한 특징적 요소만을 발췌해서 오케스트레이션과의 조화를 이뤄왔던 라크리모사 음악의 선은 이들의 전매특허였다. 더해서 심포닉한 어레인지와 다채로운 연주와 곡의 흐름은 앨범의 판매와 인지도를 꾸준하게 성장시키는 요소였다. 그리고 흑백의 담선 속에 나체의 미녀 ‘엘로디아(Elodia)’를 등장시킨 독특한 앨범 이미지 역시 이채를 더했다. 물론 초. 중기 시절의 음반이 특히 국내에서 인기몰이를 했던 것에 반해서, 근자라 할 수 있는 앨범들은 과거의 영광을 제대로 잇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 사이 라크리모사는 지난 2013년 4월 6일 벚꽃이 만개하던 시기에 내한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바 있다. 1995년 4집 [Infermo]에 참여하며 틸로와 함께 팀의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안네 누르미(Anne Nurmi)의 폭발적인 연출을 마주할 수 있었던 이 자리에서 라크리모사는 [Inferno]와 [Stille], [Echos] 등 전성기 시절을 대표하는 앨범의 대표곡을 멋지게 선사했다. 어쩌면 이 날 자리했던 많은 팬들과 기존 마니아들은 2005년 [Lichtgestalt] 이후 쇠퇴기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는 라크리모사의 신보를 애타게 기다려 왔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기대는 이번 신보 [Hoffnung]에서 확실한 답과 너무나 큰 감동을 안겨준다.
꾸준한 인지도와 판매고 기록하며 성장한 Lacrimosa
라크리모사는 1991년부터 오늘 마주한 앨범 [Hoffnung]까지 총 12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했다. 3장의 라이브 앨범과 2장의 컴필레이션 음반, 그리고 10곡의 싱글을 발표해 나온 라크리모사의 음악은 예술적인 맥이 매우 큰 것이 특징이다. 보컬 틸로 볼프의 괴기스러운 듯 웅장한 창법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디스트 사운드와 현악의 풍성함을 모든 곡에 배치시켜 나온 라크리모사의 음악은 자신들만의 명쾌한 틀을 지니고 있다. 최초에 틸로 볼프 개인이 모든 곡을 작사, 작곡하며 연주까지 행하는 원맨밴드로 출발했던 라크리모사는 초기에 다크 엠비언트 사운드까지 연출한 바 있다. 1993년 3집 앨범 [Satura]에서부터 헤비 사운드에 근간을 둔 고딕메탈을 지향하기 시작한 라크리모사는 여성 보컬리스트이자 키보디스트인 안네 누르미를 정식 멤버로 맞아들여 1995년 네 번째 앨범 [Inferno]를 발표한다. 이 앨범은 독일 앨범 차트 정상은 물론 유럽의 헤비메탈 마니아들을 열광에 빠지게 만들며, 헤비메탈의 새로운 강자로 라크리모사를 인정하게 만들었다. 수록곡 가운데 'Copycat'이 특히 큰 인기몰이를 했는데, 이 곡은 라크리모사 음악의 기조를 확실하게 완성시킨 노래였다. 또한 아방가르드와 고딕메탈, 그리고 아트록적인 구성은 이들의 음악이 여타 메탈밴드와는 분명한 차이점을 지님을 분명히 명시했다. 그리고 ‘Copycat'은 향후 라크리모사 음악에 다양한 변화와 진화를 거듭하게 만든 기폭제 역할도 담당했다.
[Inferno]와 [Stille], [Echos]를 잇는 명작, [Hoffnung]
2012년 11집 [Revolution] 이후 3년 만인 2015년 11월에 발매된 라크리모사의 [Hoffnung] 앨범은 아쉽게도(?) 이미 올해 초부터 유튜브에 전곡 파일이 돌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국내를 대표하는 마니아 레이블인 세일뮤직을 통해 라이센스로 발매될 수 있었던 점은 반가움을 넘는 실행이라 할 수 있다. 한 가지 더해서 반가운 소식은 이번 국내반에는 보너스 트랙으로 ‘Heute Nacht’가 추가로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Heute Nacht’는 지난 2013년에 발매된 EP [Heute Nacht]의 타이틀 곡으로 틸로 볼프 고유의 읊조리는 창법과 비트가 절묘한 트랙이다. 참고로 EP [Heute Nacht]는 라크리모사의 오피셜 사이트에도 등록되지 않은 앨범으로 특별반으로 제작된 음반이었다. [Hoffnung] 앨범은 엄청난 앨범이다. 전체 수록곡의 기운과 흐름이 기가 막히게 담겨 있다. 독일 앨범 차트에서 28위에 랭크되었던 이번 앨범은 오랫동안 라크리모사가 들려줬던 비극과 슬픔의 정서가 더욱 팽창된 연주의 겹과 결로 담겨져 있다. 이번 앨범 역시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틸로 볼프의 기량이 돋보인다. 전곡에서 작사, 작곡과 오케스트레이션, 프로듀싱을 담당했으며, ‘Thunder and Lightning’이 유일하게 안네 누르미와 공동 작사, 작곡된 트랙으로 자리한다. 보너스 트랙까지 11곡이 수록된 이번 앨범의 전체 러닝타임은 1시간이 넘는다. 첫 곡 ‘Mondefeuer’는 15분이 넘는 대곡이며, 앨범의 대미를 장식하는 ‘Apeiron – Der freie Fall, Part 2’ 역시 9분이 넘는 긴 트랙이다. 이미 해외 사이트 등을 통해 이번 음반을 접한 이들과 해외 마니아들의 반응은 “[Echos] 이후 최고의 앨범이다.”는 반응과 “라크리모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손꼽고 싶다.”는 평가로 요약된다. 이번 앨범의 가장 큰 특징은 일렉트릭적인 요소가 몇몇 곡에서 발견된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클래식적인 기운이 여타 앨범보다 월등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완벽하다 할 정도의 심도있는 구조와 연주의 화려한 전개는 깊은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수록곡을 살펴보자. 안네 누르미의 나지막한 보컬로 시작되는 ‘Kaleidoskop’는 이번 앨범에서 가장 인상적인 트랙이다. 오케스트라와 디스트, 그리고 그 사이를 오가는 보컬과 비트의 맥은 정말 뛰어나다. 이는 ‘Unterwelt’와 ‘Der Kelch der Hoffnung’에 이르러 강렬한 라크리모사의 사운드로 전환된다. 흡사 'Ich Bin Der Brennende Kormet‘와 ’Siehst Du Mich Im Licht?‘의 짜릿함을 연상시킨다. 라크리모사 고유의 드라미틱한 전개 속에 일렉트릭 루핑음이 교차하는 ’Die unbekannte Farbe‘와 ’Tränen der Liebe‘는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전위적인 감성마저 전달한다. 감상의 흐름이 매우 좋은 트랙으로 꼽고 싶다. 비트의 조각들이 틸로 볼프와 안네 누리미의 보컬과 잘 어우러진 ’Thunder and Lightning‘, 연작으로 자리하는 ’Der freie Fall‘은 ’Apeiron‘라는 부제로 파트 1, 2로 나뉘어 수록되었다. 이 두 곡은 이번 앨범에서 감상 포인트가 가장 넓은 트랙이라 할 수 있다. [Hoffnung] 앨범은 라크리모사의 대표 작품인 [Inferno]와 [Stille], [Echos]의 장점을 고르게 지니고 있다. 그리고 보다 각이 크고, 맥이 깊은 음악적 진화마저 이뤄냈다. 반복에 반복을 거듭해서 들어도 결코 지루하지 않은 라크리모사의 이번 앨범은 발표 이후 6개월 여가 지났지만, 2016년을 강타할 대표적인 헤비메탈 앨범으로 소개하고 싶다.
글/고종석(대중음악평론가, 월간 Parano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