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tpop Made in Busan, 부산에서 만들어진 영국팝, 밴드 ‘검은잎들’의 데뷔 EP ‘’메신저’’
검은잎들은 부산 일대에 근거를 두고 있는 4인조 록 밴드이다. 고교 동창인 보컬 권동욱과 기타 김성민을 주축으로 베이스 최은하가 인터넷커뮤니티를 통해 원년 멤버로 가담했으며, 막내인 드럼 홍현승은 2016년 팀에 합류했다. 부산 지역 클럽 공연 외에는 주목할 만한 활동이 없었던 검은잎들을 알게 된 것은 2015년초 그들로부터 받은 한 통의 이메일을 통해서였다.
기타리스트 김성민이 쓴 메일의 제목은 ‘9와 숫자들에게’였고, 내용은 자신들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9와 숫자들의 부산 공연 시 오프닝으로 참여하고 싶다는 제안이었다.
두 곡의 데모 음원도 첨부되어 있었다. 제작자로서의 활동이 점점 뜸해지고 있지만 신인 뮤지션들의 데모와 제작 제안은 꾸준히 받고 있다. 그러나 검은잎들처럼 대뜸 오프닝 공연에 참여시켜 달라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조금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동시에 느껴지는 절박성과 당당한 태도에 관심이 갔다.
팀 명에서부터, 기형도다. 시의 제목을 팀 명으로 빌려 쓰는 방식이 쉬우면서도 인상적이었다. 사실 작명 센스 하나로도 많은 점을 유추할 수 있는데, 그런 점에서 ‘검은잎들’은 꽤 믿음직한 네이밍이 아닌가!
첨부된 두 곡을 들어보니 개러지록의 냄새가 나는 기타팝인데, 묘한 느낌이 있어 명확히 규정하기는 어려운 음악이었다. (이들은 스스로를 ‘쟁글팝’ 밴드라 칭하고 있었다.) 팀 명에 걸 맞는 문학적 가사도 근래에 찾아보기 힘든 좋은 요소로 보였다각자의 삶이 바쁘고 지리적 제약도 있다 보니 만남이 성사되기까지는 근 1년이 소요됐다. 2015년 겨울 성수동의 한적한 카페에서 처음 만난 권동욱과 김성민은 조용하고 어두운 느낌이었으나 좋은 매너와 열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우연으로 맺어진 인연으로 데뷔 EP 발매까지 함께 왔다.
‘덕력과 중2병’의 힘
검은잎들과 작업을 진행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Beatles, David Bowie, Joy Division, The Cure, The Smiths, Libertines, Oasis 등을 아우르는 영국팝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었다. 멤버들이 음악을 나눠 들으며 떠들고 있는 모습은 마치 70~80년대 영국의 록키드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부산으로 날아든 것 같은 광경이었다. 맨체스터 씬의 기원을 밝히는 영화 ‘24시간 파티 피플’에서 볼 수 있듯, 새 시대를 여는 예술가들은 대체로 이전 시대의 워너비들이다. 동시대 해외 Trend의 영향을 받는 팀들이 주를 이루는 국내 인디씬의 경향 속에서 검은잎들처럼 일종의 ‘역사성’을 갖고 있는 밴드는 참 반갑고 소중하다.
검은잎들이 워너비를 넘어 자신들만의 시대를 열어갈 수 있는 힘은, 소위 말하는 ‘중2’ 감성에 있다. 섬세한 감수성이 하나의 병으로 치부되고 놀림 받는 이 시대의 정서에 아랑곳하지 않고 순수하게 제 갈 길을 찾아가는 이들은, 서점에 드나들며 시집을 모으는 문학소년들이고 예술 영화 극장의 VIP 회원이 될 정도로 영화광이기도 하다. 이제 작은 첫 열매를 맺게 되었는데,
저 풍부한 꿈과 낭만의 세계 속에서 앞으로 어떤 작품들이 쏟아져 나올지 몹시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검은잎들의 음악을 설명할 때 영국팝의 강력한 영향을 감추거나 부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한국, 그 중에서도 부산이 갖는 지역성이 충분히 반영되어 있으며 검은잎들이 아니면 안 되는 그 무언가, 그들만의 개성 있는 색채가 곳곳에 은은하게 베어있다. 이는 주의 깊은 청취를 통해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식품 원산지를 표시할 때, 원재료가 해외에서 들어왔더라도 국내에서 가공되면 국내산으로 표기된다고 한다. 그리하여 소개한다. Britpop Made in Busan, by 검은잎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