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게 펼쳐내는 노이즈의 향연
노이즈가 불을 밝힌다. 소리가 넘실넘실 춤을 춘다. 그 자태가 흥미롭다. 위태롭게 모였다 미련 없이 흩어진다. 무심하게 시크하게 사운드의 결을 만든다. 라이브에서 보여주었던 모든 요소들이 다섯 개의 곡으로 모였다. 빛과소음의 첫 번째 EP [Irregular] 안으로. [Irregular]는 노이즈록을 기본 골조로 하고 있지만 특정한 장르로 나누기는 어렵다. 사이키델릭이나 하드록, 서프록, 포스트록, 드론 메탈과도 맥이 닿아 있기 때문이다. 장르의 무정형성. 최근 이런 스타일의 밴드가 여럿 등장하고 있지만, 뚜렷한 자신의 컬러를 간직한 팀은 생각보다 흔치 않다. 물론 지금 소개하는 빛과소음에겐 해당 없는 이야기다. 곡의 뉘앙스와 리프, 노이즈의 다발이 이들만의 브랜드라는 확신을 갖게 만든다. 밴드의 음악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전부 그랬다. 어서 음반이 발매되기를 고대할 만큼.
진통 끝에 발표된 [Irregular]의 존재는 그래서 소중하다. 원래 계획이었던 풀렝스였다면 좋았겠지만, 일단 이 정도의 볼륨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음반의 문을 여는 ‘무당’. 잔잔하게 층과 층을 쌓더니 폭풍우가 몰아친다. 팀의 에너지, 혈류, 정체성을 제시하는 트랙이다. 일본 밴드 보리스(Boris)가 연상되기도 할 만큼 격렬한 드론들이 귀를 강타한다. 두 번째 트랙 ‘월미도 바이킹’은 전형적인 서프록. 도입부부터 몸이 붕 뜬다. 날렵하게 비행하는 기타 리프와 중얼거리는 듯한 보컬이 절묘하게 오버랩된다. 그러더니 이어지는 ‘해녀’에선 능숙하게 템포를 조절한다. 이제는 흘러가버린 1990년대의 향기가 밀려온다. 취할 만큼.
개인적으로 가장 사랑하는 곡인 ‘영아다방’. 철 지난 로맨스가 또르르 굴러 떨어질 것 같다. 이태호의 나직한 보이스가 터를 닦으면, 양승현의 기타가 포근한 노이즈를 구현한다. 송화선의 베이스와 박건호의 드럼이 지반을 튼튼히 지킨다. 건물을 이룬다. 그 합이 튼튼해서 어지간해선 허물어지지 않는 건축물. 하지만 그에 대한 집착은 없다. 빛과소음은 다시 다른 영역으로 회전하며 이동한다.
마지막 트랙 ‘에어플레인’. 매콤함을 줄인 다이노서 주니어(Dinosaur Jr.)를 거론할 수 있을 만큼, 빛과소음의 팝 감성은 탁월하다. “음악은 귀를 향한 것”이라는 전제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곡들은 전반적으로 잘 들리고, 음악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는 지도 명확하다. 입증해야 할 것이 많은 신인 밴드에게 이것은 큰 장점이다. 이득이다. 곡들은 4분 내외로 짧고 굵은 임팩트를 남긴다. 늘어지지 않는다. 갈려면 더 길게 갈 수 있는 대목에서도 밴드는 참고 참는다. [Irregular]가 높게 평가받아야 한다면, 바로 이 지점에서다.
빛이 켜졌다 사그라지는 그 순간. 노이즈도 함께 피고 저문다. 파랗게 부스러진 소리의 잔해. 부글거리며 밴드의 음악이 된다. 즐겁게 들었다. 긴 기다림에 부합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서투름을 억지 포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의도하되 작위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개별성을 지키면서 통일성을 담지하기 때문이다. 노이즈가 아름답게 들린다. 빛과소음의 음악이다. (글, 이경준 / 대중음악평론가)
(이 앨범은 지역기반형음악창작소조성사업의 일환인 “2016 광주음악창작소 뮤지션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의 지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1.무당
2.월미도 바이킹
3.해녀
4.영아다방
5.에어플레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