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재래
전 유럽과 호주 그리고 일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Cool한 밴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팝음악의 지형도에 있어서 미국의 존재감이 절대적이라는 점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처럼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진 미국 음악계에서 창조적인 음악적 성취가 일련의 움직임으로 드러나고 있는 곳은 어디일까?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지금 시점에서 주목해야할 음악적 실험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은 시카고(Chicago)가 분명하다. 짐 오루크(Jim O'rourke)와 존 맥킨타이어(John McEntire)라는 두 천재를 축으로 해서 시카고 출신의 밴드들이 펼치는 활동은 전통적인 형식과 아방가르드를 아우르는 대단히 광범위하면서도 미래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절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이들 두 명의 아티스트는 시카고를 중심으로 수많은 뮤지션들을 엮어내는 구심점 역할을 하면서 '드랙 시티(Drag City)'와 '쓰릴 자키(Thrill Jockey)'와 같은 인디 레이블을 통해서 '시카고 인디팝'의 기운을 하나의 움직임(Movement)으로 형성하는데 성공하였다. 흔히 '포스트 록(Post Rock)'이라고 회자되는 음악들은 직간접적으로 시카고 신(Scene)과의 피드백을 유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제 막 팝음악의 지도에 등장한 신인 밴드 하나가 시카고와는 또다른 축에서 미국 음악계의 자존심을 지켜왔던 뉴욕(New York)의 존재를 우리에게 상기시켜주고 있다. 이제 막 「Is This It」라는 데뷔 앨범을 발표한 스트록스(The Strokes)가 그 주인공이다. 도대체 뉴욕이 어떤 곳인가?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이 '사악한 제국(Evil Empire)'이라고 규정했던 미국의 정치적 수도는 워싱톤이지만 문화적인 수도는 뉴욕이라고 할 수 있다. 뉴욕은 문화제국주의적인 침략의 본거지인 동시에 코스모폴리탄으로 살아가는 모든 아티스트를 포용해내고 있는 세계인들의 문화적 고향이기도 하다. 미국 내에서도 가장 국제적인 도시인 뉴욕에서 발생하는 문화적 파장은 전세계를 흔들어놓기 마련이고 우리의 문화계도 그 영향권에서 결코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사실 문화 제국의 수도로서 뉴욕의 역사는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음악적으로 보자면 1960년대 중후반, 비틀즈(The Beatles), 롤링스톤즈(The Rolling Stones), 후(The Who) 등의 영국 록 밴드들이 미국 전역을 휩쓸었던 소위, 브리티쉬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에 대해서 이들과는 구별되는 음악적 비전으로 시니컬하게 응답해주었던 것도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와 같은 뉴욕 출신의 밴드였다. 뉴욕 펑크를 대표하는 뉴욕 돌스(New York Dolls)나 텔레비전(Television)과 같은 밴드들을 거쳐서 블론디(Blondie), 토킹 헤즈(Talking Heads), 1990년대에는 소닉 유스와 같은 아방가르드 록 밴드에 이르기까지 뉴욕 언더그라운드의 역사는 녹녹치 않다. 뉴욕의 언더그라운드 신은 현재 시카고의 인디 신이 그러하듯이 거대 음악 산업의 무차별적인 그물망에 저항없이 포섭되거나 함몰되지 않고 언제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영민하게 자신들의 음악적 비전을 실험해왔다. 때문에 이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음악적 실험들은 당대에 대중적인 환영을 받아본 일은 드물지만 오히려 그 선구자적인 비전만큼은 후대에 의해서 칭송되곤 하였다. (당대에 인기를 누렸던 밴드를 꼽자면 블론디 정도가 있을까?)이처럼 벨벳 언더그라운드에서부터 소닉 유스에 이르기까지 뉴욕 출신의 밴드들은 당대 주류의 음악과는 구별되는 진보적이고 아방가르드한 사운드를 지향해왔다. 한가지 지적해야할 점이 있다면 진보적인 실험이 비록 전위적이었지만 그것이 '록큰롤(Rock 'n Roll)'이라는 포맷을 저버린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주류 음악계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던 뉴욕 언더그라운드의 선배들과는 달리 스트록스의 음악은 영국에서는 차트 20위권에 진입할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고 평론가들의 절대적인 지지도 얻고 있다. 영국에 비하면 침묵하고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미국에서는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고 있진 않지만 적어도 앨범이 발표된 후에는 미국에서도 이들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 양상을 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이들의 음악은 선배들처럼 그렇게 전위적이거나 실험적이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70년대로 워프(Warp)한듯한 복고적인 사운드를 구사하고 있다. 사실 복고라는 코드조차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영국은 '비틀즈의 재래'라는 호들갑과 함께 '오아시스(Oasis) 대 블러'라는 양자구도를 조장하여 다시 한 번 전 세계를 향한 '브리티쉬 인베이전'을 성취해내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90년대 미국에서는 'H.O.R.D.E. 페스티벌'을 중심으로 루츠 록(Roots Rock) 혹은 얼터너티브 컨트리(Alternative Country)로 대변되는 복고적인 움직임이 있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미국 내의 국지적인 움직임에 그쳤을 뿐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말하자면 팝음악 최초의 월드 스타 비틀즈의 전통에 기대어 보다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성공한 브릿팝과는 달리 루츠록은 지나치게 미국적인 정서가 투영된 탓에 국지적인 움직임에 머물렀다. 윌코(Wilco)와 같은 훌륭한 밴드도 아무리 자국 내에서 많은 음반을 팔고 성공을 거두었지만 '미국'만의 컨트리 밴드이상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스트록스의 등장은 보다 보편적인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코스모폴리스(Cosmopolis), 뉴욕의 유산에 기대어 있다는 점에서 복고의 기치를 앞세운 여타의 미국 밴드들과는 구별된다. 게다가 거대한 뱀파이어처럼 각종 테크놀로지와 새로운 아이디어를 흡수해가면서 새로운 장르와 함께 몸집을 키우고 있는 미국의 주류 록음악을 생각해보자. 최근에 각광받는 첨단의 악기들과 장비의 도움없이 전형적인 록 밴드의 구성으로 충실한 록큰롤 사운드를 재현해내고 있는 스트록스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혁명적이다.
주류 음악계는 십대들의 전유물로 전락하여 자극적인 사운드만이 난무하는 무늬뿐인 록에 점령당한지 오래이고, 극도로 자행된 실험과 잡종 교배로 이제는 그 골격마저 해체되고 그 화석조차 찾아보기 힘든 록아닌 록, 포스트 록(Post-Rock)이 지배하는 미국 인디 록의 지형도에서 스트록스의 등장은 우리 시대에도 유효한 록큰롤의 가치를 역설(力說)하고 있다. 록큰롤의 매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퇴색하는 것이 아니라 숙성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현재 스트록스와 비슷한 사운드를 구사하는 밴드를 들으려면 에그 스톤이나 레이 원더(Ray Wonder)와 같은 스웨디쉬 팝 밴드를 찾아보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그러나 스트록스가 이들 스웨디쉬 팝 밴드와 동류로 취급될 수 없는 이유는 이들은 스웨디쉬 밴드들이 결여하고 있는 무언가를 겸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주류 문화에 대해서 냉소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는 동시에 비주류의 소외되고 뒤틀린 가치들과 현상들을 통해서 삶의 풍경을 구성해내려는 이들의 태도(Attitude)에서 찾을 수 있다. "지켜야할 록큰롤의 미덕은 지키면서 과거의 지혜로운 유산을 계승하고" 있기에 이들은 음악은 관습적이거나 퇴행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스트록스의 음악이 복고적인 것을 분명하지만 복고를 위한 복고가 아니라 복고라는 형식을 통해 표현되는 현재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면 그것이 궁극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것은 미래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올해의 앨범 감을 기다려온 당신의 리스트에 스트록스의 야심찬 데뷔작, 「Is This It」을 넣어주어도 좋을 것이다. 이 앨범을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1. Is This It
2. the Modern Age
3. Soma
4. Barely Legal
5. Someday
6. Aone, Together
7. Last Nite
8. Hard To Explain
9. New York City Cops
10. Trying Your Luck
11. Take It Or Leave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