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OY [her] : 너라는 세계
너라는 세계가 나의 세계를 만날 때, 모든 것은 마법처럼 선명해진다. 신기한 일이다. 그다지 몸집이 크지도 눈부시도록 화려하지도 않은 너는 그저 살짝 미소 지으며 조심스레 한 발을 내디뎠을 뿐인데, 누가 와도 꿈쩍 않고 고집을 부리던 나의 세계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다. 새로운 시신경을 선물 받은 것처럼 또렷해진 세상은 모조리 새롭다. 쳇바퀴처럼 돌던 집에 오는 길이 이렇게 아기자기했는지, 무감하게 바라보던 노을이 이토록 아름답게 매일 도시를 물들였는지 그제야 깨닫게 된다. 그뿐인가. 나의 세계를 성큼성큼 걷는 너의 걸음을 따라 태어나 처음 보는 꽃과 나무가 무수히 자라나고, 너의 작은 움직임 하나에 곳곳에 몸을 숨기고 있던 새와 작은 동물들이 날아든다. 너의 세계와 나의 세계의 만남은, 단순한 마주침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시작이다.
모든 게 기적처럼 선명해진 시야 사이로 단어 하나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her’. 나의 세계 안을 파고든 작고 소중한 너. 사실 아도이는 한동안 뭐라 딱 꼬집어 이야기할 수 없는 추상적 개념들을 찾아 헤맸다. 젊음(Young), 사랑(Love), 생생함(VIVID). 싱글, EP, 정규 앨범 등 다양한 형태로 추상의 바다를 헤엄쳐 건넌 이들이 마침내 마주친 것, 그것이 바로 ‘her’다. 나의 세계에 들어와 모든 걸 선명하게 만든 너,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너. 너라는 세계.
그 어느 때보다 확실한 방향키를 쥐어서일까, 첫 곡 ‘Simply’는 이미 시작된 이야기의 결말이 무엇이든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담담한 자세로 앨범의 문을 연다. 꿈결처럼 퍼져나가는 멜로디와 기타, 달콤한 잠꼬대 같은 목소리는 마치 서로를 처음 발견한 작은 생명체들이 조심스레 서로를 탐색하듯 한 음, 한 음을 주고받는다. 최초의 탐색을 마친 이들은 더 이상 주저하지 않는다. 곧바로 이어지는 ‘Antihero’와 ‘Saint’는 아마도 아도이를 좋아하는 이들이 아도이의 음악에서 가장 뚜렷하게 사랑하는 순간일 것이다. 청춘의 여름 한가운데에서 길어낸 이 두 곡의 싱싱한 신스팝 넘버는, 정신을 잃을 것처럼 뜨거운 그러나 한없이 깨끗한 햇살 속을 두려움 없이 내달린다. 한 차례 질주가 끝난 뒤 숨을 고르는 앨범의 후반부는, 심장이 터질 듯 가득 차 올랐던 열기를 서서히 가라앉히는 데 집중한다. 쿨한 목소리로 나는 너와 사랑에 빠진 것 같은데 너는 어떠냐며 끊임없이 물어대더니(‘Baby’) 이내 뉴욕의 마천루 아래로 장소를 옮긴다. (‘NY’) 아도이 음악 특유의 부유감과 질주감이 능숙하게 교차하며 밤의 도시를 내달린다. 그리고 말을 건다. 지금 나에게 보여달라고. 너의 캐딜락이든, 뉴욕의 낮과 밤이든, 네가 품어왔던 환상이든, 아직 숨겨진 마음이든,
완벽하게 조응한 두 세계를 확인하고 맞이하는 마지막 곡 ‘Up’은 그래서 더욱 더 묘한 심상을 낳는다. 특별한 노랫말 없이 고요하고 뭉근히 피어날 뿐인 노래는 조금 전 턱까지 차올랐던 숨이, 귓가에 요동치던 맥박이, 차창 밖으로 바람처럼 스쳐 지나던 도시의 밤이 진짜였는지 아니면 하룻밤의 꿈이었는지를 의심하게 한다. 꿈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 위에서 오직 너라는 세계 하나가 분연히 떠오른다. 두 개의 세계가 만나 하나로 물들어간 것처럼, 그 순간을 따르고 그리는 아도이의 음악도 그만큼 선명해진다. 이것이 현실이어도 꿈이어도 좋을 상승기류 속에서 너의 세계가 나를 찾은 이유도, 아도이의 음악이 가고자 하는 방향도 명확해졌다. 너라는 세계가 비로소 나의 세계가 되었다. 아도이가 비로소, 아도이가 되었다.
김윤하 / 대중음악평론가
[her] credits.
01. Simply
Written by 지 / Lyrics by 지 / Arranged by 지
02. Antihero
Written by 정다영, 오주환, 지 / Lyrics by 오주환, 지 / Arranged by 지
03. Saint
Written by 정다영, 오주환, 지 / Lyrics by 지 / Arranged by 지
04. Baby
Written by 정다영, 오주환, 지 / Lyrics by 지 / Arranged by 지
05. NY
Written by 정다영, 오주환, 지 / Lyrics by 오주환, 지 / Arranged by 정다영, 오주환, 지
06. Up
Written by 지 / Arranged by 지
Performed by ADOY
Guitars by 박재희
Recorded by 김대성, 양하정, 안영길, 이상철, 이승준 @ TONE Studio Seoul
Mixed by 김대성 @ TONE Studio Jeju
Mastered by Greg Calbi, Steve Fallone @ Sterling Sound
Album Artwork by Agnes Ricart
Album design by 홍준기
Logo by 전채리 at Content Form Context
Photography by 손동주
An ANGEL HOUSE Produc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