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이지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안도감이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편안한 느낌이라 마냥 몸이 녹아드는 듯싶다. 남들이 힘들어하고 어색해하는 베토벤과 모차르트를 맘먹은 대로 주무를 수 있는 피아니스트라면 단연 김대진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워낙 피아노야 그렇다 치더라도 은근슬쩍 시작한 지휘는 왜 이렇게 능청스러운지 모르겠다. 그저 타고났겠지 하고 넘기기에는 너무나도 앞뒤가 잘 들어맞는 게 징그럽기까지 하다. 저러다가 언젠가는 지휘봉을 잡겠지 하는 기대는 누구보다 먼저 품고 있었지만 이토록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는 줄은 짐작조차 못한 일이다. 크고 작은 협연 무대마다 늘 그 오케스트라의 형편과 사정을 헤아리고 맞춰주는 특별한 능력과 여유를 보여주더니 그게 다 지휘자로서의 남다른 자질과 관심이었던 모양이다.
이런 저런 관계가 복잡하고 예민할 수 밖에 없는 우리나라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기 보다는 남의 나라 오케스트라를 대하기가 훨씬 편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렇지 서로가 낯설고 시간도 부족한 상황에서 이만한 호흡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놀랍기만 하다. 게다가 폴란드 국립방송교향악단이라면 폴란드를 대표한다는 자부심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고 모차르트라면 또 동유럽 특유의 오염되지 않은 정통성을 고집했을 법도 하다. 억지로 따라간 것이라면 듣기에 이처럼 자연스럽고 편안할 수가 없다. 그 모습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들 모두 기꺼이 함께 한 행복한 시간이었음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김대진에게 있어 모차르트는 고향이고 안식이다. 아무리 멀리 갔다가도 언젠가는 돌아와야 하는 바로 그런 근본과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아마 지휘자로서의 출발 역시 모차르트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한 사람의 음악가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힘겨운 도전을 계속하고 있는 김대진에게 모차르트는 너무나도 절실한 종교와도 같다. 소리 하나하나를 너무나 섬세하고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어 순간 숨이 멎어버릴 듯한 긴장과 전율이 느껴질 때 환희와 슬픔이 함께 밀려오는 오묘한 모순을 경험하게 되고 거기서 바로 절대적인 고독에서 오는 신앙의 경건함을 체험하게 된다. 협주곡 23번의 2악장을 듣고 또 듣는다. 아무도 없는 캄캄한 성당 안 한 구석에 눈을 감고 앉아 있는 김대진의 모습이 너무나도 또렷하게 보인다. 소리내어 통곡하지 못하고 절절한 단어 하나 하나를 속삭이듯 가슴 속으로 삼키는 기도가 비수가 되어 내 가슴에 꽂힌다. 이 순간 음악은 더 이상 음악이 아니다. 지금까지 아는 척 지껄였던 그 무수한 말로는 절대로 설명할 수 없는 알파요 오메가이다. “태초에 음악이 있었다.” 

[글: 홍승찬 (서울예술종합학교)]

1. Piano Concerto No.23 In A Major, K.488 : I.Allegro

2. Piano Concerto No.23 In A Major, K.488 : Ii.Adagio

3. Piano Concerto No.23 In A Major, K.488 : Iii.Allegro Assai

4. Piano Concerto No.17 In G Major, K.453 : I.Allegro

5. Piano Concerto No.17 In G Major, K.453 : Ii.Andante

6. Piano Concerto No.17 In G Major, K.453 : Iii.Allegret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