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는 <창본 춘향가>에서 1935년 정정렬로부터 [적벽가] 전편을 수득(修得)하였다고 적고 있지만, 막상 그가 만든 사설집에는 정정렬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소리를 차용한 예도 많다. 그가 밝혀 놓은 바를 정리해 보면 다 음과 같다.
㉠ 삼고초려(당당한 유현주는) : 이동백
㉡ 삼고초려(익덕의 성질은 급한지라) : 김창룡
㉢ 노숙이 공명을 찾아오는 데 : 유성준
㉣ 노숙이 공명에게 강동 가자고 유인 : 박기홍, 정정렬
㉤ 공명과 동오 선비 설전 : 신재효
㉥ 군사설움타령(노래 불러 춤추는 놈) : 유성준
㉦ 군사설움타령(고당상) : 유성준
㉧ 군사설움타령(아내 생각 : 자진모리) : 정재근, 정응민
㉨ 위국자의 노래 : 송만갑
㉩ 오작남비 : 송만갑
이상 표시된 부분은 총 일흔다섯 대목 중 열 대목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표시가 없다. 그러나 여기에 표시된 부분만 보아도 다양한 바디의 소리를 김연수가 차용해서 자신의 소리를 짰다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김연수 [적벽가]의 전반부는 정권진이 부른 이른바 강산제 [적벽가]와 거의 같다. ‘자룡 활 쏘는 대목’까지 총 28 대목 중에서 같은 대목이 무려 25대목이나 된다. 비슷한 대목은 두 대목이다. 이 중에는 김연수의 [적벽가]에 소리 로 된 대목이 정권진의 [적벽가]에는 아니리로 처리되고 있는 부분이 세 대목, 정권진의[적벽가]와 내용은 같은데 장단이 다르거나, 한 장단으로 길게 부르는 부분을 김연수가 몇 부분으로 나누어 장단을 다양하게 만든 부분이 다섯 대목이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런 정도의 일치를 보인다면 같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후반부는 어느 한 바디의 소리를 오롯이 차용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는다. 다만 박봉술이 부른 송만갑 바디, 정광수 가 부른 유성준 바디 등과 같은 곳이 몇 군데 있으며, 부분적으로는 신재효 사설과도 유사성이 발견된다.
그런데 정정렬 바디를 차용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김연수는 정정렬에게 소리를 배워서, 그의 [춘향가]는 정정렬 바디를 근간으로 삼고 있다. 또 김연수는 정정렬의 소리를 매우 높게 평가했다고도 한다. 김연수의 제자인 오정숙은 필자와 대담하는 자리에서 김연수의[적벽가]는 정정렬 바디라고 말하기도 했다. 현재 정정렬 바디 [적벽가]는 온전하게 전승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 실체를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다. 그러나 김창룡, 이동백, 조학진, 임소 향 등과 함께 녹음한 폴리돌 판 [적벽가]가 남아 있어서 일부분이나마 그 실체를 확인할 수는 있다.
그런데 ‘군사점고 대목’ 중에서 옹돌쇠가 조조를 속여서 술을 빼앗아 먹는 대목, 조조가 공명과 한나라 장수들을 헐뜯는 말을 하자 정욱이 이들이 진짜 영걸이라고 대꾸하는 대목, 관우가 조조를 잡으러 나오는 대목 등은 정정렬의 소리와 똑같 다. 공명이 동남풍을 빌기 위해 축문을 지어 읊는 대목에서는 “우리 사부 정정렬 선생께서는 어떻게 그 축문을 들 으셨는지 내게 일러 주셨으니……”라고 말하고 있기도 하다. 그 외의 부분에서도 김창룡, 이동백 등의 소리와 많은 유사점이 발견된다. 따라서 김연수 바디[적벽가]의 후반부는 정정렬을 중심으로 해서 이동백, 김창룡 등의 소리를 수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김연수 바디 [적벽가] 중에서 다른 바디와 가장 크게 차이가 나는 부분은 [새타령]이다. 보통 [새타령]은 ‘화공’ 바로 뒤에 온다. 그런데 김연수 바디의 경우에는 ‘군사점고 대목’ 뒤, ‘관우가 조조를 잡으러 나오는 대목’ 앞 에 온다. [새타령]은 적벽강에서 죽은 군사들의 원혼이 새가 되어 운다는 내용이기 때문에, ‘불 지르는 대목’ 바 로 뒤에 와서는 안 될 것으로 생각한 듯하다. 새가 되기까지는 아무래도 시간을 두어야 더 어울린다고 판단한 것이 다. 김연수는 판소리에서 ‘합리성’을 최대한으로 추구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해석은 충분히 타당성이 있다 . [새타령]의 사설 또한 다른 것들과는 다르다. 일부분이 신재효의 사설에 있는 것과 같을 뿐 어떤 바디의 것을 수 용했는지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