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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음반을 듣고 있으면 지난 날을 생각하게 한다.
그 힘은 마치 '마력'과도 같고 '자석'과도 같다.
이 음악을 통해 다시 탄생한 '지난 날'들은 비로소 화해하고 편안해지고 곧 드라마가 된다.
우리 삶의 배경음악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으며 우리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이 음반에 경의를 표한다.
이병률 시인
어느 길모퉁이를 돌다 우연히 마주친 코지한 카페에서, 머리가 맑아지는 진한 향 커피를 한잔 마시고 다시 길을 걷다. 끝이 없이 펼쳐진 푸른 잔디에 잠깐 누웠다가 그렇게 빛 고운 석양을 맞이하고, 문득 고개를 들면 금세라도 쏟아질듯한 별을 볼 때… 바로 그때 가슴 깊은 곳에서 이는 묘한 설렘. 그렇게 기분 좋은 꿈을 꾸게 했다. 듣는 내내…
< Numéro KOREA> 최선희 편집장
분명 귀를 통해 소리를 듣고 있는데 눈을 감는 순간 그 음악이 바로 풍경이 되어 펼쳐진다. 물 안개 드리운 새벽의 강 위로 어슴푸레 아침이 밝아오고, 저녁을 먹고 산책 나온 한 가족이 물 수제비를 뜨면서 웃음을 터트린다. 그 강가에는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고 꽃이 피고 강풍이 불다가 다시 고요해진다. 아침, 점심, 저녁을 지나 새벽이 밝아오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고 다시 새싹이 돋는다. 그리고 그 시간과 계절의 흐름 속에 인생의 희, 노, 애, 락이 찾아온다.
그저 눈을 감아라. 그리고 귀를 열어라. 트랙 위로 가볍게 몸을 올리면 이 음악의 강은 당신을 싣고 조용히 흘러 갈 것이다. 여정이 아름다운 여행은 목적지가 중요하지 않다. Balmorhea의 river arms는 티켓이 필요 없는 여행이요, 발을 옮기지 않아도 가질 수 있는 휴식이다.
<매거진t> 백은하 편집장
Bio
텍사스 오스틴 출신의 듀오 발모라이(Balmorhea)는 롭 로우(Rob Lowe : 동명의 영화배우와는 상관없음)와 마이클 뮐러(Michael Muller)로 구성되어있다. 두 멤버는 각각 피아노와 기타를 연주하고 있으며, 이를 중심으로 바이올린과 첼로 그리고 베이스 기타를 추가로 배치시키면서 포크와 현대음악, 그리고 포스트록을 적절하게 매쉬업하고 있다는 평가를 이끌어 내고 있다.
이들의 음악은 포크와 클래식, 그리고 재즈와 현대음악에 영향을 받은 듯한 모양새를 하고 있는데 어느 웹진에서는 좀더 확장된 스트라빈스키와 같다는 평가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드뷔시의 재치와 아르보 파트(Arvo Pärt)의 로맨티시즘, 키스 자렛(Keith Jarrett)의 차가운 관능, 그리고 막스 리히터(Max Richter)의 작업물에서 볼 수 있는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어쿠스틱한 어프로치 등을 적재적소하게 배치시키면서 많은 음악 팬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결국엔 존 파이(John Fahey)부터 심지어는 조지 윈스턴(George Winston)의 팬들까지 한번에 사로잡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음악을 들려주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회자되었다. 2007년 4월에 셀프-타이틀 데뷔앨범을 공개한 이후 텍사스와 미국 서부 지역에서 투어를 다니기도 했다.
[Rivers Arms]
눈부시고 차분하며, 무엇보다 감성적이다. 앨범은 피아노와 (어쿠스틱, 혹은 일렉트릭)기타를 중심으로 벤조, 바이올린, 첼로, 그리고 약간의 샘플링된 음원들로 채워나가고 있다. 구조물 자체에도 인위적인 꾸밈이 별로 없다. 마치 예민한 마이크로 녹음된 것과도 같은 섬세하고 자연스러운 엠비언스로 채워져 있는데 확실히 데뷔 앨범보다는 성숙한 사운드를 발산하고 있다. 그리고 몇몇 부분에서는 시거 로스(Sigur Rós)를 연상케하는 엠비언스나 이-보우 연주를 보여주기도 한다. 음반을 끝까지 들어본다면 이것을 자연스러운 명상음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CD 플레이어에 음반을 걸면 야외의 엠비언스와 벤조가 처음으로 울려 퍼진다. 한국에서 큰 인기를 모았던 크리스티나 앤 로라(Kristina & Laura)의 [Amorosso] 라던가 레이첼스(Rachel's)의 곡 [Water From The Same Source]를 떠올리게 하는 현악파트를 담고 있는 첫 곡 [San Solomon]으로 본 앨범은 시작된다. 슬픈 자장가를 연상시키는 [Lament], 스테레오로 배치시킨 맑은 균형감을 지닌 [The Summer]와 [Greyish Tapering Ash], 피아노를 중심으로 다양한 감정을 표출해내고 있는 [The Winter], 그리고 긴장감을 조성하는 피아노 멜로디 뒤로 매미소리가 요란하게 깔리는 [Barefoot Pilgrims] 등의 곡들이 음악을 듣는 이들의 감성을 서서히 파고든다.
희미한 엠비언스와 샘플링 된듯한 거대한 합창과 오케스트라 부분이 이색적으로 삽입된 [Context]와 이-보우를 활용한 기타와 역시 라디오에서 샘플링된 불안정한 목소리와 노래가 사용된 [Process]의 경우엔 엠비언트와 일렉트로닉을 중앙에 배치시켜놓은, 앨범에서 가장 실험적인 부분이라 할만하다. 기타가 중심이 되는 [Divisadero]와 피아노가 중심이 되는 [Limmat]가 사이좋게 한 곡씩 진행 된 이후 로맨틱한 멜랑꼴리로 채워진 [Theme No. 1], 아름다운 포크 발라드 연주곡 [Windansea]에 이어 첫 곡인 [San Solomon]의 리프라이즈로 앨범은 마무리 된다.
듀오는 확실히 자기 자신만의 무드를 가지고 있다. 우아한 책략으로 슬픈 가락과 담담한 멜로디를 풀어내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무척이나 섬세하고 충분히 매혹적이다. 그리고 결코 과장된 제스추어를 하지 않는다. 여러 웹진 및 프레스에서 내렸던 평가 중에 가장 많이 겹치는 부분은 바로 어레인지가 무척 뛰어나다는 언급이었다. 특히 헤드폰으로 듣게 된다면 적절히 배치된 스테레오 어레인지의 공간감이 무척 입체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다. 약간의 슬픔을 머금고 있는 이 친숙한 어레인지와 멜로디는 엘리베이터나 커피숍, 그리고 각종 응접실의 라이브러리 뮤직으로도 적절하다.
엘루비움(Eluvium)과 골드문드(Goldmund), 그리고 마이클 뉴만(Michael Nyman)이라던가 실뱅 쇼보(Sylvain Chauveau)의 작업물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본 앨범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될 것이다. 게다가 오히려 앞에 언급했던 아티스트들의 음악들이 낯설게 느껴지는 사람들이라 해도 충분히 이 음반의 매력에 빠질 수 있을 것 같다. 음악의 깊이라던가 개인의 취향차이에 대한 확실한 결론을 내는 것은 어렵지만 적어도 대중에게 어필할 만한 요소들은 앞에 언급했던 뮤지션들의 작업물에 결코 뒤지지 않기 때문이다.
본 앨범은 음악을 듣는 사람들에게 지속적인 영감을 주고 있다. 앨범의 막바지쯤에 접어들어서는 서서히 다가오는 경이로움 또한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지적인 감수성이 돋보이는 음반이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이 음반이 바로 한편의 영화 그 자체이다. 이런 류의 음악은 사실 본 국 보다는 한국에서 더욱 사랑 받을 만한 성질을 가지고 있기도 한데 그런 의미에서 나는 본 앨범의 국내 흥행에 대한 심심한 기대를 가져보려 한다.
깨끗하고 평화롭다. 그리고 오직 약간의 슬픔만이 얼룩져있다.
한상철 (불싸조 http://myspace.com/bulssaz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