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과 부딪힌 이들의 가슴 속에 새롭게 드리워진 마음의 빛
‘침몰된 이야기’가 살고 있는 절망의 深淵
일본 포스트 하드코어씬의 旗手.
엔비(Envy)의 2007년도 화제작[Abyssal]
레몰로 노이즈는 엔비의 음악 중 가장 황홀한 순간을 선사한다. 아마도 본 앨범을 구입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 첫 번째 트랙이 되어주지 않을까 싶다. 당연히 엔비 역사상 가장 중요한 곡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앨범에서 가장 치열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하드코어 넘버 [All That's Left Has Gone to Sleep]는 대자연의 서사와 섬세함을 바탕으로 이들이 확실히 땅에 발을 붙이고 행진을 멈추지 않고 있다는 증거를 제시한다. 정과 동의 대비는 여전히 아름답고 그것은 우리의 마음속에 앨범의 세 번째 트랙 제목처럼 [Thousand Scars (천 개의 자국/상처)]를 남긴다. 몇 번씩이나 교차하는 아름다움과 굉음의 폭풍우가 어느덧 한편의 드라마를 만들어내고 있다. 마지막 트랙인 [Fading Vision]은 이 모든 것들을 천천히, 그리고 조용하게 마음속에서 씻어 흘려 보내고 있는 부드러운 송가이다.
사실 이런 식의 리얼 드럼이 아닌 일렉트로 비트를 운용하는 방식은 곧바로 이어지는 제수와의 컴필레이션에서 다시 한번 이어진다.
격렬한 통곡과 그 사이에 존재하는 아름답고 덧없는 정적, 이 대비를 본 작에서도 적절하게 배치해내고 있다. 서정적인 전작의 연장선이요, 오히려 한층 더 돌진하는 소리를 만들어 내고 있는 실로 감정적인 하드코어이다. 한편의 '시'가 연상되는 가사와 현기증 나는 굉음의 노이즈가 청자들의 의식을 순식간에 덮친다. 이 ‘격렬함’에 과연 스스로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가끔씩 의문스러울 때가 있다. 과연 다이빙을 하면서 격렬하게 소화시켜야 할까, 아니면 가만히 듣는 내내 우두커니 서서 눈물을 삼키고 있어야 할까.
장렬한 압도감과 심원의 울림은 시냇물 소리와 같이 아름다운 선율과 맞물려 불타오르는 격동의 사운드를 완성해낸다. 사실 글을 쓰면서도 본문에 약간은 오버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는 있는데 고백하자면 이런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나까지 괜히 흥분해서 뭔가 되게 본이 아닌 오버를 해줘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가 엄습하곤 한다. 아마도 음악을 듣는 동안에는 강렬함에서 오는 특유의 ‘설득력’에 최면이 걸리는 모양이다.
生きる
일단 앨범이 끝나고 들었던 느낌은 비장감이나 초조감 보다는 단순히 '기분이 좋다'는 것이었다. 모두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는 충실한 작품이다. 느린 템포의 곡들이 주를 이루고 있고 초기와는 많은 것들이 달라졌지만 이 앨범을 듣고 느끼는 감각은 과거의 작품들을 들은 이후의 얼얼한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이들이 가진 분노와 진심은 좀 더 세련되어지고 발전한 형태일 뿐, 비슷한 성질의 기본 바탕이 되어주기 때문인 것 같다. 항상 이들의 앨범에서 느끼는 바이지만 혼돈과 슬픔의 끝에 기다리고 있던 것은 결국 희망이다.
비장감이 감도는 가사와 희망으로 가득 찬 공간감, 그리고 섬세한 소리의 확대와 굉음의 덩어리가 압도적인 존재감을 낳으면서 자신들만의 오리지날리티를 지켜내고 있다. 초기의 하드코어적 색채는 많이 엷어졌으며 더욱 포스트락화(化) 되어가고 있는 인상을 쉽게 받을 수 있다. 공간계의 활용을 늘리면서 오히려 슈게이징에서 느낄 수 있는 화이트 노이즈를 증폭시키는데 집중하고 있다. 현재의 모습은 단순하게 '하드코어'라는 단어 자체로는 완전히 설명될 수는 없지만 '하드코어'의 정신만큼은 결코 잊지 않고 있는 밴드라 하겠다.
엔비는 확실히 장엄한 스케일과 아름다움, 생생한 무게의 폭발력과 설득력이 회를 거듭할 수록 성장하고 있다. 절망을 철저히 추적해내는 감각, 그리고 그것을 표현해내는 의지는 꾸준히 단련되고 있는 듯 보인다. 이들은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들이 가진 희노애락의 감정을 가장 근사치로 표현해내고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격렬한 아름다움을 앨범에 포박하고 또한 라이브 쇼에서 사정없이 쏟아낸다. 곧 다시금 이 땅에서 재연될 이들의 절규가 자뭇 기대되는 부분이다.
장대하고 가끔씩은 신성해 보이기까지 한다. 한(恨)으로 풀어내는 치유의 음악이다. 이것이 모두를 넘어뜨리기 위한 굉음인지, 아니면 모두를 정화시킬 흰 빛의 소용돌이인지 분간하기가 어렵다. 여러분들은 분명히 듣고 보았을 것이다. 듣고 한참이 지나면 잊혀지겠지만 이것은 우리의 삶 속에서 결코 떠나지 않을 것이다. 절망과 질주는 아마도 당신의 머리, 그리고 손바닥과 가슴속에 흘러 넘칠 것이다.
엔비의 가사 중에 ‘의식은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방치되는 것이다.’라는 대목이 있다. 절망의 늪에 허우적대면서 생의 끈이 희미해질 무렵, 우리는 무의식 중에 ‘살아 남아야 한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기본적인 ‘삶의 의지’라기 보다는 무심결에 심연의 구석에 방치되어있던 ‘의식’이 깨어나는 순간일 것이다. 구석에 방치되어 다시는 처다 보기도 싫은 무의식과 마주하면서 고통스러워 하고 또한 스스로를 극복해 나가면서 희열을 얻게끔 만드는 역할을 바로 본 작이 수행할 것이다.
아…. 글을 쓰다 보니 너무 멀리 와버렸다. 아까워서 글을 지우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고 그냥 지금 썼던 말들은 모조리 무시하라. 그저 듣고 분노하고 또한 기뻐하라. 분명하지 않은 실체를 표현할 때 쓰는 ‘말장난’이라는 것은 보통 쉽게 설득력을 잃기 마련이다.
한상철(불싸조 http://myspace.com/bulssaz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