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그대는 '발 닿는 곳으로' 떠날 수 있을 것인가? 나직한 목소리로 작은 울림을 던져주는 '나비'의 아픔과 분노, 몽환의 세계
‘나비’의 음악여정은 순탄치 않다. 스무 살 때 처음으로 하게 된 밴드는 합주 한두 번 만에 해체했다. 혼자 곡을 만들며 일을 하면서 앨범도 만들고 공연을 하겠다는 꿈을 키웠지만, 우울증과 불안 증으로 인해 대외활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2년 동안 거의 모든 활동을 중단할 수 밖 에 없었다. 쉬면서도 밴드를 하고 싶어 직접 만든 음악을 들고 멤버를 구하러 다녔지만 잘 되지 않았다. 언젠가는 공연을 할 거라는 막연한 생각만으로는 안 될 것 같아서 하던 일을 그만두고 클럽 ‘빵’에서 ‘나비’라는 이름으로 공연을 시작하게 되었다.
기타를 배우며 함께 할 밴드를 구하고 다니던 시절, 오디션을 통해 ‘고스락’ 솔로 앨범에 객원보컬로 참여하게 된다. 그리고 당시 고스락 앨범을 작업 하던 스튜디오에서는 이장혁 1집 앨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고, 스튜디오를 오가며 만나게 된 이장혁과는 오랜 시간동안 음악적 교류를 하며 지내왔다. 2008년부터는 이장혁 밴드에서 멜로디언과 코러스로 참여하기도 하였고, 결국 이장혁이 소속 되어있는 ‘앨리스뮤직/루비살롱레코드’에서 본 앨범이 나오게 되었다.
오랫동안 공연을 하고 곡을 만들며 얻은 나비의 음악은 그녀가 살아온 것과 같다. 그다지 꾸미는 것이 없고, 있는 그대로이며 약간은 슬프고 차분한 것 같지만 거칠다. 지인이 애인과 힘들게 헤어지고 쓴 가사로 시작되는 첫 트랙 ‘Fade Out’에서 보이는 나비의 감수성은 보통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갖게 마련인 집착이나 미련이 아닌, 함께 공유했던 대화나 시간들도 '어찌할 수 없는 간극' 이라고 담담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앨범의 타이틀곡인 ‘발 닿는 곳으로’는 밤거리를 위험성을 배경으로 하여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 현실과 이상의 괴리 등을 표현한 본 앨범의 백미라 할 수 있다. ‘고양이는 울었지’는 공장에서 야간조로 근무 하던 시절, 피곤한 몸으로 집에 돌아가는 길에 부동산 앞 고양이가 기분 좋게 일광욕을 하는 풍경에서 비롯된 생각들의 노래이다. 비 오는 날, 취소된 공연, 연락의 부재, 젖은 가방, 젖은 기타, 킬링 타임 등등이 혼재 되어 커피숍에서 쓴 곡 ‘Coffeeshop of Rainyday’, 장마 통에 방바닥에 늘어져 하게 되는 여러 공상 중 하나였던 용이 되어 구름 사이를 날아다니는 상상의 곡 ‘Dragon’등, 본 앨범은 나비의 아픔과 그 아픔을 바라보는(혹은 받아들이는) 조용한 자세, 그리고 그 반응으로 나타나는 작지만 묵직한 분노와 그러한 상황을 조금은 외면하고 싶은(혹은 벗어나고 싶거나) 마음에서 생성되는 개인적 몽환의 세계를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나비의 세계는 가슴 위로 뚝뚝 떨어지는 무거운 기타소리 위로 유유히 흐르는 ‘나비’의 보라빛깔 음성을 통하여 표현된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대한 꿈을 키워 왔지만, 순탄치 않았던 나비의 음악여정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과 상당 부분 비슷하다. 그러한 꿈과 현실의 괴리로 인해 찾아온 자괴감들, 그 자괴감으로 비롯되는 절망감과 정신적 혼란은 스무 살이 훌쩍 지났음에도 때 아닌 사춘기적 방황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 사람을 적잖게 당혹시킨다. '발 닿는 곳으로' 떠나는 것도 그러한 행동 중 하나일 것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발 닿는 곳으로 가보았더니 타인들은 자신을 밀어내고, 곳곳에서는 위험한 냄새가 난다. 때문에 자신이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오고 싶은 욕망은 자연스레 생겨나며, 돌아갈 곳에 대한 애정은 진해진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러한 낯섦과 위험함의 경험은 현실을 보다 충실하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여행을 하는 목적 중 하나는 '돌아오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현실이 바뀌지는 않고, 상황이 나아질 리 없으면, 그 보다 더한 세상을 맛보고 오는 방법. 그러고 나면 받아드리는 사람의 마음은 한결 여유가 생긴다. 게다가 그 여유는 문제를 풀 수 있는 의외의 열쇠가 된다. 극심한 자괴감과 절망감 속에서도 노래하기를 멈추지 않고 온 ‘나비’의 음악은 우리에게 그러한 문제해결 방법을 들려주며, 색다른 치료제로 다가온다. 색다른 보라색 치료제 같은 나비의 음악과 함께 한 번쯤은 ‘발 닿는 곳으로’ 떠나 각자에게 새로운 원동력이 생기는 2010년이 되기를 기대한다.
글 : 루비살롱레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