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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권밴드 새 앨범 「2막 1장」
‘담담한 관조적 시선 속에 묻어나는 깊은 슬픔’
2012년 여름밤 지산에서 들국화의 부활을 보았던 날을 잊지 못한다. 그날의 헤드라이너는 라디오헤드였지만 나와 같은 많은 이들에게 진정한 주인공은 분명 들국화였다. 나는 울컥해서 순간 눈물을 쏟을 뻔하였다. 대학교 1학년이던 1989년 ‘아듀 들국화!’ 고별 콘서트를 본 이후 장장 23년만의 감격적인 해후였다. 그렇게 들국화는 돌아왔다. 2013년에는 27년만의 정규앨범 「들국화」가 나왔지만 아쉽게도 동행은 짧게 끝났다. <걷고 걷고>는 지금껏 걸어왔고 앞으로도 걸어갈 길에 대한 절절한 토로와 뜨거운 다짐이었지만 다시 핀 들국화도 우리 곁에 오래 머물진 못했다. 그들은 앨범 완성 직전에 드러머 주찬권을 잃었고 그밖에 이런저런 이유들로 다시 해체 상태로 접어들었다.
다행스럽게도 이번에는 전인권이 돌아왔다. 그가 기타리스트 안지훈, 베이시스트 민재현, 트럼페터 송형진, 키보디스트 이환과 양문희, 드러머 신석철로 구성된 전인권밴드의 이름으로 신보를 발표한 것이다. 음악친구인 피아니스트 정원영이 힘을 보탰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내놓는 10년만의 새 앨범이다. 앨범 타이틀「2막 1장」은 어쩐지 의미심장하다. 1막은 끝났고 2막은 이제 막 시작되려 한다. 그것은 전인권이 30년 음악인생에서 지금 생각하는 자신의 좌표일 것이다.
전인권이 직접 기획과 제작을 맡은 앨범은 파트별로 연주하고 더빙하는 방식이 아니라 함께 모여 합주하는 방식으로 녹음되었다. 멤버들의 전체적인 협업과 호흡을 중시했다는 얘기다. 그 과정에서 나온 어느 시점의 자연스런 결과물을 취하다 보니 심지어 가이드 보컬을 그대로 최종적으로 사용한 곡들도 많다. 드러머 신석철이 자신의 주 포지션인 드럼 외에 전곡의 기타 연주까지 도맡았다는 점 또한 이색적이다. 전체적으로 곡 길이도 만만치 않은데, 5분이 넘는 곡이 태반이고 6분이 넘는 곡도 별도의 축약 없이 2곡이나 수록한 것은 대중성을 위해 연주와 음악을 희생시키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다시 가을이다. 이 가을에 전인권밴드의 새 앨범 「2막 1장」이 우리 곁에 툭 던져졌다. 싫든 좋든 들국화와의 비교는 불가피할 것이고 음악적인 평가는 아마도 엇갈릴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앨범을 관통하는 담담한듯 한, 관조적 시선 속에 묻어나는, 깊은 슬픔에 공감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것이 음악의 힘이다. 나는 올가을 전인권밴드의 「2막 1장」을 곁에 두려 한다.
정일서 (KBS라디오)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