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와 숫자들]
9와 숫자들, 완성의 시작
이 음반은 좋았던 날들이 순식간에 지나간 후 찌질하고 비루했던 시간까지 기록함으로써 청춘의 시간을 통째 담은 세계를 완성한다. 한 편의 드라마처럼 시작과 끝, 그리고 또 다른 시작까지 기록하는 음반이다.
변화라 해도 좋고 삶이라고 해도 좋을 음반은 보편적인 청춘을 기록하며 듣는 이들의 기억을 복기하게 한다. 좋았으나 결국 아프고 부끄러웠던 시간을 통과하며 손톱만큼이라도 깨닫게 된 이는 예전과 똑같을 수 없다.
좌절하고 비틀대면서 겨우 어쩔 수 없음을 인정할 때 우리는 조금 더 자신을 이해하게 되고, 상대 역시 미워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야 또 다른 만남이 시작되고 삶이 이어진다.
이 음반은 단편소설이나 영화만큼 아릿하고 아찔한 청춘의 드라마이다. 한국 대중음악은 늘 청춘을 노래해왔는데 이 음반은 그 중 맨 앞줄에 놓아둘 음반이다.
9와 숫자들은 변화무쌍한 청춘의 세계를 기타 팝, 모던 록, 신스 팝, 포크 록 등으로 구현한다. 장르와 무관하게 수록곡들의 멜로디는 모두 쉽고 예쁘고 반짝인다.
모든 노랫말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멜로디를 붙이는 9의 송라이팅은 탁월하다. 그런데 이 음반의 세계를 지배하는 질감은 수록곡 전반에 깃든 아련하고 복고적인 사운드이다.
여러 장르를 활용하는 곡들에 배인 옛 장르의 질감은 노래에 배인 노스탤지어를 부각시키면서 지나간 청춘, 지나간 사랑을 한없이 애틋하게 만들어버린다.
2009년에 발표한 노래임에도 20년쯤의 시간은 거뜬히 거슬러 오르게 하는 사운드는 이 음반을 당시의 청춘만이 아니라 언젠가 청춘이었던 이들의 노래로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사랑을 통해 자신을 바닥까지 들여다본 정직한 이는 이제 다른 이들로 시선을 옮기고 성장을 시작한다.
9와 숫자들이 후속 음반 [보물섬]과 [수렴과 발산]으로 깊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음반에서 자신의 열망과 좌절을 응시하고 기록했기 때문이다. 어떤 뮤지션은 천천히 완성되고, 계속 완성된다. 이 음반은 9와 숫자들의 완성, 그 시작이다.
서정민갑(대중음악의견가)
2012년 [유예]
정체불명의 이 감정을 소중하게 / [유예]
[유예] 앨범은 ‘소리’와 ‘노랫말’에서 중요하다. 퍼즈 톤의 기타 사운드와 공간계 이펙트, 그리고 소리를 안으로 삼키듯 조심스러우면서도 아련한 보컬의 음색은 고풍스러우면서도 우아한 잔상을 남긴다.
노스탤지어와 아이러니가 섞인 ‘노랫말’도 여기에 큰 역할을 하는데, 전작에 비해 좀 더 세련되고 느긋하게 반영된 가사의 어투와 단어가 고유하고 독특한 분위기를 만든다.
덕분에 이 앨범은 일종의 독백이자 편지, 그러니까 SNS나 이메일이 아닌, 종이에 펜으로 꾹꾹 눌러 쓴 일기나 편지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내게 [유예] 앨범은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사운드 아래 조심스러운 어투와 사려 깊게 골라 쓴 단어로 조합된 음반이고, 특유의 우울과 향수가 지배하는 음악이다.
도대체 무엇이 그리운 것인지 모름에도, 그리운 마음을 어찌하지 못하는 마음. 이 어쩌지 못하는 감정을 음악으로 소중하게 감싸는 9와숫자들은
20세기의 정서, 지금 이 음악을 향유하고 기꺼이 9와숫자들의 팬으로 헌신하고 있는 세대가 태어나기도 전의 마음을 끌어안고 반영한다.
특히 모국어로부터 발현되는 정서를 소중히 여기고자 한다는 점에서 [유예]는 2010년 이후의 한국 로컬 음악의 역사에서 독특하면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가진다.
차우진 (대중음악평론가)
2014년 [보물섬]
대의도 명분도, 허울좋은 사명도 모조리 사라진 허무의 시대, 종종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감각은 무엇일까 생각한다. 누군가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
[보물섬]은 일견 쉬워 보이지만 좀처럼 찾기 힘든 이 감각이 살아 있는 드문 앨범이다. 2009년 데뷔작 [9와 숫자들]을 발표한 이후 가요, 기타팝, 신스록 등 다양한 장르의 정수만을 뽑아 다정하게 재구성한 이들의 음악은
대중과 평단은 모두를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사랑을 받은 건 포근한 음악 위에 정성스레 얹힌 곱고 유려한 노랫말이었다.
9와 숫자들의 가사는 한적한 바닷가에서 하나하나 주워 모은 예쁜 조약돌처럼 한결같이 수수하게 자신만의 빛깔을 뽐내는 데에는 정말이지 남다른 재주가 있었다.
[보물섬]은 이들이 그 감정의 산과 바다를 넘고 또 넘어 마침내 도착한 귀한 종착지였다. 무언가 굳게 마음이라도 먹은 것처럼 의지 넘치는 목소리는 얼어붙은 우리의 심장을 쉴 새 없이 뜨겁게 두드린다.
이상한 짓이나 바보 같은 소리를 해보라고 내가 지켜주겠다고(‘실버 라인’), 낮은 몸에 갇혀 있대도 높은 마음으로 살아보자고(‘높은 마음’).
우리가 흔히 모던록이라 부르는 장르의 카테고리 안에서 보여줄 수 있는 거의 최대치의 품을 보여주는 음악은 앨범 속 담긴 깊은 언어들에 울렁이는 우리의 마음을 다잡아주는 든든한 조력자다.
소담스레 담긴 멜로디를, 노랫말을 하나하나 어루만지며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을 힘껏 되짚어 새겨본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외롭지 않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
2016년 [수렴과 발산]
수렴과 발산 ? 어떤 희망과 연대의 기록
아이는 과거에 머물지 못했다. 성장해야 했고, 음악도 커져야 했다. 9와 숫자들이 써내려 간 어른들을 위한 동화는 [수렴과 발산]에 이르러 전환점을 맞이한다.
유년을 향한 배회와 동경은 서서히 외부를 향한 시선이 되었다.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다. 사회를 살피게 되었다. 물론 전부 변한 건 아니다. 양보하지 않은 지점도 있다.
오직 ‘나’만을 위한 공간이 남았기 때문이다. 여전히 그 내밀함은 9와 숫자들 음악의 키워드다. 그래서 이 음반은 하나의 점으로 ‘수렴’하면서 동시에 타자를 향해 ‘발산’한다. 앨범의 제목이자 핵심을 관통하는 성찰이 되었다.
[수렴과 발산]이 들려주고자 하는 것은 일종의 이야기다. 이야기란 ‘말하는 이’와 ‘들어주는 이’가 존재할 때 성립된다. 경험이라는 특수한 재료가 보편이라는 형식에 공명했을 때 이야기엔 설득력이 생긴다.
이야기가 설득력을 가졌을 때 우리는 공감하고, 감동하고, 연대할 수 있다. 그가 나의 말을 잘 들어주는 만큼, 나도 그의 말을 잘 들어주어야 한다. 혼자 실컷 떠든다고 해서 이야기가 성립되지는 않는다.
이야기란 상호 교환이므로. 세심한 배려이므로. 그것은 놓치고 지나갔을지도 모를 순간을 복기하며, 미처 알아채지 못했을 사각지대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관심의 행위다.
조심스레 다가섰다가 조심스레 물러설 줄 아는 이야기꾼. 9와 숫자들은 작은 목소리로 전한다.
[수렴과 발산]은 단절을 고집했던 자아가 장막을 걷어내고 세상과 마주하게 되는 여정이다. 성장기다. 치열한 쟁투와 비틀거림의 기록이다.
더불어 9와 숫자들의 디스코그래피에서 가사가 제일 중요하게 사용된 작품이다. ‘개인’의 존엄함과 ‘연대’의 소중함을 두 팔에 부여안은 작품이다.
[9와 숫자들]의 섬세한 감성을 좋아한다. [유예]의 아련함을 사랑한다. 싱글 창고와도 같은 [보물섬]을 자주 찾는다. 하지만 가장 오래 들여다보고 생각했던 작품은 [수렴과 발산]이었다.
기존 9와 숫자들의 매력이 그대로 담겨 있어서 더 기억에 오래 남았던 앨범이다. 덤으로 나아갈 방향성까지 제시한 것 같은 앨범이다. 9와 숫자들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경준(대중음악평론가)
1. 보물섬
2. 석별의 춤
3. 그대만 보였네
4. 평정심
5. 빙글
6. 눈물바람
7. 높은 마음 (Single Ver.)
8. 말해주세요
9. 숨바꼭질
10. 유예
11. 드라이 플라워
12. 그리움의 숲
13. 엘리스의 섬(Song for Tuvalu)
14. 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