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까지 헤비메탈에서 키보드라는 악기의 비중은 그다지 큰 편이 아니었다.
70년대 록의 전설 딥 퍼플(Deep Purple)에서 리치 블랙모어(Ritchie Blackmore)와 함께 록 키보드의 교과서를 구축해 놓은 존 로드(Jon Lord)를 필두로 프로그레시브적인 구성으로 한시대를 풍미했던 유라이어 힙(Uriah Heep)의 켄 헨슬리(Ken Hensley) 등이 불모지를 개척한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물론 예스(Yes)나 킹 크림슨(King Criomson), UK, EL&P 등의 그룹에서 활동하던 릭 웨이크맨(Rick Wakeman), 제프 다운스(Jeoff Downes), 이언 맥도널드(Ian Macdonald), 에디 좁슨(Eddie Jobson), 키스 에머슨(Keith Emerson) 등의 키보디스트들은 아트록의 음악적 특성상 이들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했다. 그러나 헤비메탈에서는 모든 사운드의 근원이 기타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키보드가 차지하는 역할을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면 70년대 이후 록 키보디스트의 명맥은 끊어지고 만 것일까? 물론 그렇지는 않다. 콜로세움 II(Colosseum II), 레인보우(Rainbow), 오지 오스본(Ozzy Osbourne), 코지 파웰(Cozy Powell)의 솔로 앨범을 거쳐 자신의 솔로 앨범 「K2 Tales Of Triumph And Tragedy」까지 80년대 헤비메탈 키보디스트로서 명맥을 이어온 돈 에이리(Don Airey)를 제외한다면 이렇다할 실력자가 등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80년대 중반부터 바로크 메탈이 생겨나고 90년대 초 프로그레시브 메탈이 번창하게 되면서 수많은 키보디스트들이 쏟아져 나온다.
바로크 메탈을 대중적으로 부각시킨 잉베이 맘스틴(Yngwie Malmsteen)과 라이징 포스(Rising Force)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솔로 대결을 펼쳤던 옌스 요한슨(Jens Johansson)부터 기타와 키보드 모든면에 능했던 흑인 실력자 토니 매칼파인(Tony Macalpine), 프로그레시브 메탈의 새 장을 연 드림 씨어터(Dream Theater)의 케빈 무어(Kevin Moore), 역시 3세대 프로그레시브 메탈 그룹 아텐션(Artension)을 이끌고 있는 비탈리 쿠프리(Vitalij Kuplij), 바로크 멜로딕 그룹 로열 헌트(Royal Hunt)의 리더 앙드레 앤더슨(Andre Anderson), 바로크 스피드 메탈 그룹 마제스틱(Majestic)을 이끄는 리처드 앤더슨(Ricahrd Andersson), 멜로딕 스피드 메탈과 바로크 메탈을 혼합한 이탈리아의 기대주 스카이라크(Skylark)의 에디 안토니니(Eddie Antonini), 근래에 등장한 멜로딕 스피드 메탈 그룹 가운데서 가장 음악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던 랩소디(Rhapsody)의 알렉스 스타로폴리(Alex Staropoli), 릭키드 텐션 익스페리먼트 출신으로 드림 씨어터에 가입한 기교파 키보디스트 조단 루디스(Jordan Rudess)에 이르기까지 90년대 이후 멜로딕 스피드 메탈과 프로그레시브 메탈이 발달하면서 수많은 키보디스트들이 록의 경연장으로 모습을 나타냈다.
거의 모든 뮤지션이 클래식의 탄탄한 음악적 뿌리를 기반으로 각축전을 벌이고 있을 무렵 보기 드물게 익스트림 뮤직 씬에서 우리 눈에 띄는 새로운 키보디스트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멜로딕 데스에 바로크를 혼합한 핀란드 그룹 칠드런 오브 보돔(Children Of Bodom)의 얀네 워맨(Janne Warman)이다.
타이트한 멜로딕 데스 사운드에 바로크 어프로치를 가미해 독보적인 장르를 만들어낸 칠드런 오브 보돔은 특히 일본에서 인기가 높아 일본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헤비메탈 전문지 번(Burrn)에서 실시하는 설문 중 키보디스트 부문에 높은 순위를 고수하고 있다. 익스트림 쪽에서는 보기 드물게 그의 키보드 연주는 사운드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그룹에서 들을 수 없는 독특한 개성으로 자리 매김을 하게 되었다.
칠드런 오브 보돔의 키보디스트 얀네 워맨의 프로젝트 그룹 워멘(Warmen)은 뛰어난 실력을 지닌 신세대 동료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우선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그룹 시너지(Sinergy)의 여성 보컬리스트인 킴벌리 고스(Kimberly Goss)를 비롯하여 드러머 미르카 랜타넨(Mirka Rantanen)과 베이시스트 라우리 포라(Lauri Porra)는 핀란드의 프로그레시브 메탈 그룹 터넬비전(Tunnelvision)의 멤버이고 베이시스트 야리 카인누라이넨(Jari Kainulainen)은 국내에서 특히 인기가 높은 핀란드 최고의 멜로딕 스피드 메탈 그룹 스트라토바리우스(Stratovarius)의 멤버이다.
또 기타리스트 사미 비르타넨(Sami Virtanen)은 조 독스(Joe Doakes)의 멤버이고 다른 한명의 기타리스트 루페 라트발라는 월터리(Waltari)와 시너지 출신이다. 이토록 높은 실력을 지닌 다양한 동료들이 함께한 본작 「Unknown Soldier」는 한마디로 바로크 인스트루멘탈 사운드를 지향한다고 말할 수 있다.
기타와 키보드의 적절한 조화를 바탕으로 메인 테마와 솔로를 번갈아 연주하는 형식이 대분을 이루고 있다. 칠드런 오브 보돔에서 간헐적으로 들려주었던 바로크 연주가 아예 본격적인 테마를 이루면서 피치를 이용한 헤비한 톤으로 기타에 버금가는 솔로를 펼치고 있다. 그러면 킴벌리 고스가 참가한 두곡을 제외하고는 모두 연주곡으로 이루어진 본작의 수록곡을 하나하나 살펴보자.
짧은 인트로격 연주곡 [Introduction]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이어지는 하이 스피드 바로크 인스트루멘탈 [The Evil That Warmen Do]에서는 반복되는 기타와 키보드의 솔로 배틀이 펼쳐진다. 시너지의 여성 보컬리스트 킴벌리 고스가 참여한 [Devil's Mistress]는 칼칼한 그녀의 목소리가 일품이면서도 적절한 섹션으로 음악적 완성도를 꾀하고 있다. 절제된 연주와 테마를 무기로 하는 [Hopeless Optimism]은 반복되는 템포 체인지와 드라마틱한 구성이 압권이다. 도입부 테마가 칠드런 오브 보돔 사운드를 연상시키는 [Unknown Soldier]는 앨범에서 가장 주목받는 트랙 가운데 하나로 4연음 위주로 펼쳐지는 기타와 키보드의 연주 경합이 불꽃을 튀긴다. 역시 킴벌리 고스가 참가한 미디움 템포 트랙 [Fire Within]은 단순한 리프와 멜로디로 이루어져 있고 중반부 기타와 키보드의 유니즌 플레이가 환상적이다.
스트라토바리우스 사운드를 연상시키는 [Warcry Of Salieri]는 템포 체인지와 더불어 등장하는 서정적인 기타 연주가 스피드 위주로 치닫는 드럼과 키보드 연주에 좋은 활력소가 된다. 바로크 연주곡의 진수를 마음껏 펼치는 곡으로 보컬이 없으면서도 귀에 쏙 들어오는 강한 테마가 기억에 남는다.
빠르고 화려한 더블 베이스 드러밍에 4연음 테마가 난무하는 [Into The Oblivion] 역시 칠드런 오브 보돔에서 못다한 그만의 테크니컬한 솔로 연주를 펼친다. 어쿠스틱 피아노가 서정적으로 울려퍼지는 [Piano Intro To]에서는 클래시컬한 연주를 펼치더니 피치를 이용한 리드 톤으로 세련된 연주를 들려주는 [Treasure Within]으로 이어진다. 발라드에 가까운 코드 진행과 기승전결이 뚜렸한 구성의 이곡에서는 오케스트라 히트를 사용해 액센트를 주었고 서정성과 테크닉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헤비한 기타 리프로 만들어진 엔딩 트랙 [Soldier Of Fortune]은 연주곡임에도 불구하고 처절하고 중후한 매력을 담고 있다.
얀네 워맨이 처음으로 시도한 솔로 프로젝트 앨범 「Unknown Soldier」는 음악적인 완성도를 따지기 이전에 먼저 그룹에 속해있으면서 자신이 하고픈 음악을 위해 정열을 아끼지 않는 진정한 뮤지션의 자세가 엿보인다. 대중성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만의 음악를 펼치는 뮤지션이 늘어날 때 그 장르의 앞날은 진정 밝을 것이다. 익스트림 뮤직 씬에서 독특하게 활동하는 그의 연주가 앞으로 장르 전체의 발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지 기대해보자.
1. Introduction
2. The Evil That Warmen Do
3. Devil's Mistress
4. Hopeless Optimism
5. Unknown Soldier
6. Fire Within
7. Warcry Of Salieri
8. Into The Oblivion
9. Piano Intro To
10. Treasure Within
11. Soldiers Of Fortu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