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하고 여유로운 지중해의 어느 순간을 담아낸 아련한 보사노바 연주 모음집, 레알 카리오카(Real Carioca)의 [Anos Dourados]
Instrumental Bossa-Nova
브라질하면 떠오르는 것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축구를 생각할 수도 있겠고, 격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브라질 유술이나 카포에라를 떠올릴 것이며, 카톨릭 신자일 경우 코르코바도 언덕 위에 있는 거대한 예수 동상에 대해 말할 것이며, 미식가들은 브라질산 커피에 주목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음악을 좋아한다면 무엇을 떠올리겠는가? 십중팔구 MPB나 트로피칼리아 메니페스토, 그리고 보사노바일 것이다.
한국과 일본에서 유행하고 있는 보사노바 스타일은 사실 대부분이 아스트럿 질베르토(Astrud Gilberto)나 엘레스 레지나(Elis Regina), 그리고 갈 코스타(Gal Costa) 같은 여성 보컬 리스트가 부른 산뜻하고 풍부한 종류의 곡들이었지만 여러 걸작 보사노바 연주 모음집으로 입증되듯, 인스트루멘탈 보사노바 곡들은 무척 중요한 위치에 놓여져 있다. 보사노바 기타리스트인 바덴 파웰(Baden Powell)의 앨범들이라던가 안토니오 까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의 [Composer Plays], [Wave], [Tide]를 비롯한 여러 중요한 작품들은 오로지 연주로만 이루어져 있는데, 대부분은 아직도 팔리고 있는 스테디 셀러이며 저들 중에서는 지금도 라디오 방송프로그램의 시그널로 사용되는 경음악도 존재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연주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레코딩들이 더욱 듣는 사람의 감성을 보듬어 주는 듯 하다고 생각하는데, 보컬이 없는 여백은 당신의 허밍이라던가 휘파람, 아니면 새로운 상상으로 그것을 채워넣게 되며, 이런 식의 참여 방식은 음악 그 자체에 대해 더욱 빠져들게 만들며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연주로만 이루어진 보사노바 곡들이 보컬이 있는 곡들보다 주목을 적게 받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것들은 각각 나름대로의 장점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구미에 맞는 선택을 하는 것이 괜찮을 것 같다. 그 동안 인스트루멘탈 보사노바를 제대로 접해보지 못한 리스너라면 지금 당신이 들고있는 본 작은 약간 색다른 느낌을 줄 수도 있겠다.
Real Carioca
Carioca (카리오카 : 삼바와 비슷한 춤의 일종, 혹은 그 춤곡 / 리오 데 자네이로의 주민)
앞에서 언급했듯이 카리오카는 브라질의 삼바가 유럽으로 건너간 형태의 사교 댄스로서 룸 안에서 추도록 발전된 것을 칭해 부른다고 한다. 이미 앨범 커버 아트웍에서 이것을 감지했을 수도 있겠는데, 본 작은 삼바처럼 화려한 움직임을 요구하는 곡들 보다는 고급스러운 무드로 중무장한 트랙들로 가득하다. 레알 카리오카는 스페인에서 현존하는 최고의 보사노바 프로듀서이자 기타리스트인 라몬 레알(Ramón Leal)의 프로젝트이다. 그는 리타 칼립소(Rita Calypso)를 비롯하여 여러 여성 보컬들과의 작업을 성공적으로 이끈 것으로 유명한데, 그런 작업들 와중에 라몬 레알은 좀더 브라질의 느낌에 근접한 앨범을 제작하려 한다. 그리하여 본 작에서는 유럽스타일의 여성 보컬을 제외했고, 마치 63년 3월에 [Getz/Gilberto]를 녹음한 이후 같은 해 5월에 연주만으로 이루어진 [Composer Plays]를 녹음했던 조빔처럼, 라몬 레알 역시 99년 5월에 [Bossanova 1999]의 녹음을 마친 후 10월에 본작을 완성했다. 라몬 레알은 부드러운 듯 하면서도 어려운 테크닉을 구사하는 몇 안되는 기타리스트 중 하나이며 이미 그가 프로듀싱했던 여러가지 컴필레이션과 또 다른 시에스타 레코딩들은 자국 뿐만 아니라 일본과 한국 등지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오래된 브라질의 유산을 현대적으로 포장하는 방법을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는 뮤지션이라 하겠다.
Anos Dourados
조빔과 시코 바르께(Chico Buarque)의 곡인 [Anos Dourados (Look Like December)]를 앨범제목으로 사용하고 있는 본 작은 한 곡을 제외하고는 모두 보컬이 없는 연주로 이루어져 있다. 기타 위주의 차분한 사운드에 휀더로즈와 하몬드 올겐, 플룻과 바이올린, 그리고 피아노와 콩가 등을 버무렸는데, 제대로 숙성된 연주들은 마치 오래된 와인을 잘 섞어서 만든 한잔의 칵테일 같은 느낌을 준다. 앨범에서 녹음한 레파토리들은 주로 거장들의 곡들로 이루어져 있다.
앨범 제목이자 첫 곡인 [Anos Dourados]은 마리아 베싸니아(Maria Bethânia)의 버전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그것과의 상관관계는 모르겠다만 보컬이 있는 버전에는 가사에 ‘I Love You Maria’라는 부분을 담고 있기도 하다. [É LUXO Só]는 스탠 겟츠(Stan Getz)와 찰리 버드(Charlie Byrd)의 걸작인 [Jazz Samba]에 녹음됐던 곡으로 한국에는 리사 오노(Lisa Ono)의 노래로 알려져 있는 트랙이며 역시 리사 오노와 갈코스타도 불렀던 아름다운 노래인 [Até Quem Sabe]또한 본 작에 수록되어 있다. 앨범 자켓을 처음 봤을 때 정장을 입은 남자의 이미지가 크리스 몬테즈(Chris Montez)의 분위기와 너무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크리스 몬테즈가 [Keep Talkin’]이라는 영어 제목으로 번안해서 불렀던 [Amazonas]를 수록하고 있었다. 크리스 몬테즈 이외에도 비브라폰 연주자인 칼 제이더(Cal Tjader)와 올겐 주자인 월터 원더리(Walter Wanderley)의 연주로도 잘 알려져 있는 곡이기도 하다. 앞에서 언급했던 고독한 기타리스트인 바덴 파웰의 단아한 연주로 잘 알려진 [Viagem]와 레알 카리오카와 비슷한 어감을 지닌 60년대 보사노바 밴드인 오스 카리오카스(Os Cariocas)의 버전으로 유명한 [Telefone], 그리고 조빔과 까에따노 벨로주(Caetano Veloso)가 노래했던 [Eu Sei Que Vou Te Amar]등의 주옥 같은 보사노바 클래식들을 한가득 수록하고 있다. 앨범에서 유일하게 가사가 있는 노래인 [Gente]에서는 라몬 레알의 담백한 음성을 직접 들을수 있는데, 마르코스 발(Marcos Valle)이 작곡했던 곡으로 마리아 베싸니아와 까에따노 벨로주가 부르기도 했었다. 그리고 라몬 레알의 자작곡인 [Noticia Increíble] 역시 새로운 보사노바의 흐름을 짚어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곡이라 할 수 있겠다.
마치 60년대에 버브(Verve) 레이블에서 발매됐던 따뜻한 음반들의 감성을 담고있는 [Anos Dourados]는 라몬 레알의 주의깊고 잘빠진 보사노바 연주곡들의 엑기스만을 모아놓았다 설명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약 당신이 무언가 위로하는 듯한 사운드스케잎으로 이루어진 곡들을 찾는다거나 밝고 쉬운 브라질의 전통 음악들을 찾는다면 이 앨범이 당신의 감성을 짚어줄 것이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브라질은 5월에서 8월 사이에 겨울이 찾아온다. 그러므로 앨범의 제목인 ‘12월의 풍경’은 우리가 생각하는 12월과는 다를 수도 있을 것 같다. 12월이면 브라질은 한여름이기 때문이다. 물론 조빔은 여러 가지 녹음을 뉴욕에서 주로 했었고, 그렇기 때문에 조빔이 말하는 12월의 풍경이 한겨울인지, 한여름인지는 알기 어렵겠다만 그런 계절의 종류를 막론하고 절기(節氣)의 중심에서 무언가를 응시하는 심정을 담아내려는 듯한 의도로 생각해도 무방할 것 같다. 지금 이야기한 이러한 연유로 라몬 레알의 [Anos Dourados]는 당신이 크리스마스 시즌에 길거리를 걷고 있을 때나 한 여름에 해수욕장에 누워서 냉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도 훌륭한 BGM이 되어줄 것 같다. 사실 좋은 음악에 계절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1. Anos dourados
2. Cansei de ilusoes
3. El uxo so
4. Amazonas
5. Viagem
6. Ah se eu pudesse
7. Telefone
8. Gente
9. Eu sei que vou te amar
10. Noticia increible
11. A tarde
12. Ate quem sa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