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서트 VCD를 드립니다.
보기 드문 실력파 뮤지션 [레이 정]
작금의 우리 음악계를 살펴보면 음악이 아닌 상품이 기승을 부리면서 공허한 울림이 범람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전반적인 음악의 구조마저 기형적인 모습을 갖추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음악의 질적 발전을 후퇴시키는 직접적인 요인인 동시에 진지하게 독창적인 음악을 만들어보려는 음악인들을 좌절하게 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이러한 때 고독하리만치 아니 무모하리만치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는 본연의 정서와 정체성에 자신감을 심어주는 아티스트가 있다. 그는 일부러 강조하거나 강요하지 않고 그저 우리의 정서와 문화가 지닌 우수성을 자연스럽게 확인시켜주는 작업을 한다. 그런 그의 스타일은 복합적이면서도 독특하며, 스케일은 크고 다이나믹하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동아시아적 색채를 띠면서도 서양 음악의 그것까지 아우른 풍부한 음악성을 지녔다.
그의 음악은 여러 가지 스타일의 음악이 세련되게 조합되어 있고, 걸러져 있기도 하지만 때론 강하고 고풍스럽다. 때문에 친숙하고 편안하게 느껴진다. 그의 이름은? 레이 정. 바로 그이다.
레이 정의 음악여정
프랑스에 유학한 레이 정은 4년간 세계 4대 음악학교의 하나인 프랑스 파리 국립 음악원에서 전액 장학생으로 공부하면서 음악을 논리적으로 진행시키는 방법과 음악을 진정 사랑하는 법을 터득하였다. 그는 1년에 100여 곡을 작곡할 정도로 왕성한 창작력도 보여주었는데, 그가 만드는 작품들에는 하나같이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형식은 서양적이었으되 그 내용과 내재되어 있는 사상은 동양적인 것이었던 것. 처음엔 자신도 모르게 표출되어지는 자신의 작풍에 당혹함을 느꼈을 게다.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자아 정체성에 빠졌다고나 할까? 그는 스스로에 반문하며 자기 음악의 방향, 자기만의 아이덴티티에 대해 고민하였다. 그러나 자아 정체성에 대한 물음에 해답을 찾기까지 그다지 많은 시간을 허비하지는 않았다. 그는 슬기롭게도 이내 자신만의 캐릭터를 발견한 것이다. 귀국 후 그는 방송과 광고의 음악을 작곡하는 일을 했다. 그러면서도 본격적으로 자신의 독집 음반 준비에 몰두했다. 그리고 2002년 대망의 첫 음반이 나왔다. [Memory Of The Day]라 명명되었던 그의 첫 음반은 한국적인 정서와 서구적인 세련됨이 조화를 이룬 걸작이라는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어쨋든 한국적 정서에 대한 정체성을 나타낸 그의 음악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런데,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1집이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2집의 구상에 들어갔던 것이다. 그만큼 그의 가슴속에는 주체하기 힘든 음악에의 뜨거운 열정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는 2집 음반을 위해 특별히 중국과 일본 등지를 여행하면서 자료를 수집하고 영감을 얻었다. 또한, 진지하게 심사숙고하면서 한 곡 한 곡을 작업해나갔다. 전작에 비해 더 많은 정성과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 이번 음반에서 그의 음악적 칼라는 보다 분명해지고, 그의 음악적 영역은 보다 확대되었으며, 그의 표현은 한결 다채로워졌다.
그의 음악은 내적으로는 동아시아의 도교적 사상과 정서를 담으며 깊이를 더했으며, 외적으로는 동서양의 음악 양식과 기법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동서양의 양식을 조합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그만의 독특한 오리지널리티를 창출한 것은 그를 왜 한국적인 뉴에이지 음악의 개척자로 불러야 하는 지를 수긍하게 한다.
동아시아 대륙의 혼과 정서가 녹아있는 레이 정의 2집 『Spirit Land』
음반의 오프닝을 장식하는 곡은 시간이 없는 시간 즉 영원을 뜻하는 'Timeless Time'. 다분히 폭풍 전야와 같은 분위기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면서 시작하는 이 곡은 사실 시간에 쫓겨 바쁘게 살지만 결국 시간에 매여 살다 시간을 잃어버리고 마는 현대인의 모습을 묘사한 작품. 혼돈 속에서 정체되어버린 현대인의 암울한 초상이 여기 있는데, 게스트 싱어로 참여한 김지현의 보컬이 가슴속에 여운을 남긴다. 'In Dreams'는 로맨틱했던 순간에 대한 스케치. 사랑하는 극적인 순간을 담은 꿈속에 아름다운 그 사람의 모습을 그리는 처연한 순수한 심정을 그린 곡. 그래서일까? 현악의 울림은 가슴을 내리치는 듯하고, 곡이 끝나고 나면 가슴속에 멍 하나가 든 기분이 든다. 한편, 2003년 '굿바이'라는 노래로 데뷔한 기대주 카밀라(Camilla 본명 카밀라 게디니)가 참여하여 뛰어난 가창력을 발휘해준 'Everytime Everywhere'는 정신적인 사랑, 숭고한 사랑에 대한 찬가. '당신이 어디에 있든 지 당신 곁에 있을 것입니다. 나를 보면 나의 마음속 안에 당신이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곡은 호주 여행도중 불현듯 악상이 떠올라 만든 곡으로 전작에 수록되어 있는 'Waiting Forever'와 맥락을 같이 하고 상당히 프로그레시브하면서도 이지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하는 곡이다.
'Arirang On Freen Wind'는 아리랑의 슬프고 구성진 가락을 목가적으로 재해석한 것. 아리랑에 대한 편견을 걷어내고 우리의 아리랑도 부드럽고 낭만적일 수 있음을 나타낸 작품이다. 우리 민족의 기상을 나타내는 노래로 아리랑을 재해석한 21세기 아리랑의 뉴 버전. 베토벤의 교향곡 6번[전원]의 1악장의 테마의 변형이 절묘하게 사용되어 신선함을 더해준다. 작곡가의 禪적인 주제의식이 있는 'Mountain High River Flow' 는 중국의 시성 두보의 시중에서 國破山河在 城春草木深 感時花床淚 恨別鳥驚心 烽火連三月 家書抵萬金 白頭搔更短 渾欲不勝簪 (나라는 망하여도 산하는 남아 있어 성안에 봄이 오니 초목만 무성하구나...) 라는 구절이 주는 자연의 영원한 경의로움과 그 속에 살아가는 인간의 유한한 인생의 모습에 감명을 받아 작곡한 곡. 깊은 의미를 곱씹게 하는 이 곡에는 그야말로 동아시아 보편적 정서 그러니까 우수, 비애, 애상 따위의 정서가 잘 나타나있다. 이 곡에서는 특별히 대금 무형문화재 이수자인 이성준이 단소를 연주하여 주고 있다. 'Tale Of Forest'는 1집의 'Promenade in Bamboo Forest(대나무 숲 아래 산책)'처럼 자연의 풍광을 그린 작품. 그의 음악적 영감의 원천인 자연 속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숲 속의 포근하고 동화적인 분위기를 피아노 솔로로 표현했다.
'Road To Sunset'. 네온이 춤추는 도시의 거리. 그 도시의 화려함 속 이면들. 고독, 소외, 쓸쓸함, 허전함 등을 퓨전 재즈 스타일로 묘사한 곡. 'Le Souvenir'. 1993년 파리를 떠나온 레이 정이 21세기 다시 찾은 파리의 세느강. 그 곳에서 추억에 젖어 추억의 얼굴들을 떠올리며 만든 곡. 애틋한 그리움의 정서가 묻어 나오고, 섬세한 시정이 느껴지는 곡. 'Flying High'. 올 해 초 2집 음반을 준비하면서 중국의 북경을 찾았던 레이 정이 번화해진 거리, 완전히 도시화된 거리를 걸으면서 문득 동아시아가 함께 더불어 사는 미래 세상을 상상했고, 그런 기분 좋은 상상을 악보로 옮긴 곡. 낙천적인 세계관을 드러낸 작품으로 시종 행복한 표정을 짓는 곡이다. KBS 민속 악단원인 해금 주자 김선구가 협연했다. 'Song Of The Breeze'. 곡 중 가장 간결하고 밝은 분위기의 소품이며 아이들이 뛰는 듯한 그런 소박하고 순수한 분위기를 나타낸 곡.
'Spirit Land'. 중국의 넓은 대지를 바라보다 영감을 받아 작곡한 곡으로 대륙에 흐르는 웅혼한 기상과 야성적인 정서를 표현한 곡. 장구 등 타악기를 많이 사용하여 힘 있고 호방한 스타일로 완성했다.
레이 정 스타일. 그것은 그만의 독특한 오리지널리티가 발현된 고품격 뉴에이지 음악이다. 그의 음악은 분명 이 땅의 음악이 다양화되고 전문화되어 가는 데 기여할 것이고, 한국적인 것 나아가 동아시아적인 가치가 우리 시대의 살아있는 가치로 인정받게 하는 데에도 기여할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이런 아티스트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어야 한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갈수록 오래두고 들을 음악, 오래도록 간직하고픈 음반이 없어진다고. 그런 이들에게 나는 주저 없이 레이 정의 음악을 추천하고 싶다. 그리고, 말하고 싶다. 음악은 아직 죽지 않았다고. 레이 정의 음악에서 꿈틀거리는 생명을 보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