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이번 신보는 정치계의 진짜 보스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뿌리치고 팬들 곁으로 돌아온 작품이라는 점에서 우선 기분이 좋다. 그러나 단지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1995년 착 가라앉은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와 내면적인 가사가 담긴 포크 성향의 앨범 [Ghost Of Tom Joad] 이후 7년 만에 처음으로 공개되는 작품이라는 점과 1984년 기념비적인 명반 [Born In the U.S.A.]를 마지막으로 각자의 길을 걸었던 스프링스틴의 백 밴드 이 스트리트 밴드(The E-Street Band)와 다시 뭉쳐 만든 음반이라는 점도 기분이 좋아지게 하는 아드레날린의 요소를 충분히 갖추고 있다.
데뷔 때부터 보스의 음악을 받쳐주는 든든한 중심축 역할을 했던 이 스트리트 밴드-색소폰 주자 클라렌스 클레몬스(Clarence Clemons), 보컬리스트 패티 시알파(Patti Scialfa), 키보디스트 로이 비탠(Roy Bittan)과 대니 페더리시(Danny Federici), 드러머 맥스 웨인버그(Max Weinberg), 기타리스트 스티븐 밴 잰트(Steven Van Zandt)와 닐스 로프그렌(Nils Lofgren), 베이시스트 개리 탤런트(Garry Tallent)-가 1984년 결별한 이후에도 스프링스틴과 간헐적으로 함께 작업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완벽한 라인업을 갖추고 스프링스틴의 뒤에 서게 된 것은 거의 20년만이다.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이 스트리트 밴드의 극적인 재회는 신보가 [Born In the U.S.A.]의 꼭지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스프링스틴도 ‘이번 작품은 내가 이 스트리트 밴드와 다시 뭉치면서 포획하기를 원했던 파워풀한 사운드를 담고 있다. 멤버들은 15년 전보다 훨씬 더 뛰어난 플레이를 선보였다’며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여기에 펄 잼(Pearl Jam), 사운드가든(Soundgarden), 콘(Korn) 등의 음악을 진두지휘했던 브랜던 오브라이언(Brendan O'Brien)이 가세했다는 사실도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어떤 사운드를 희망사항으로 내걸었는지 알 수 있게 한다.
전체적으로 전작 [Ghost Of Tom Joad]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힘차고 역동적이다. 오프닝 트랙 ‘Lonesome Day’는 악 사운드가 잔잔히 깔리면서 스프링스틴 특유의 아메리칸 록이 펼쳐지는 ‘보스 시그널’이라 할 만 하다. ‘World's Apart’는 파키스탄 보컬리스트 아시프 알리 칸(Asif Ali Khan)이 참여하여 이국적인 코러스와 록 사운드의 독특한 진행을 꾀하고 있고, 리듬 앤 블루스의 영향이 가미된 ‘Mary's Place’는 이 스트리트 밴드의 연주력이 최고조에 달한 넘버이다.
스프링스틴은 또한 이번 새 앨범의 모든 수록곡들에 지난 9.11 테러에 대한 느낌을 담았다고 한다. 그는 감정이 유도하는 대로 사운드, 보컬, 가사 등에 자유로이 당시의 심경을 이입시켰다. 애절한 보컬과 멜랑콜리 연주가 일품인 ‘My City Of Ruins’가 대표적이다. 이 곡은 지난 해 9.11 테러 직후 미 테러 희생자들을 위한 기금마련 텔레톤(Telethon: 기금 모금을 위한 광고 없는 연속 방송)에서 처음 불려진 노래이다. 이 외에도 슬로 템포의 ‘Nothing Man’, 후렴구가 귀에 착착 달라붙는 ‘Empty Sky’, 스케일이 큰 합창곡 분위기의 ‘Let's Be Friends’도 놓치지 말아야 할 곡들이다.
History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미국 록음악의 ‘보스(Boss)’이다. 1973년 데뷔작 [Greetings From Asbury Park, N.J.]과 함께 닻을 올린 그의 음악 항로는 언제나 한길만을 향해 달려가는 일직선 좌표에 맞춰져 있었다. 그것은 꾸밈이나 가식이 없이 있는 그대로의 ‘생(生)’ 사운드를 들려주는 아메리칸 로큰롤이었고, 양지보다는 음지에 대해 노래하는 메시지였다. 그는 이 두 가지 선물 꾸러미를 들고 미 전역을 돌며 대중들과 실시간으로 호흡했으며, 서로를 위로하고 껴안았다.
1975년 작품 [Born To Run](미국 차트 3위)에서 필 스텍터(Phil Spector)의 ‘사운드의 벽(Wall Of Sound)’을 재현해 낸 풍성한 로큰롤 사운드, 1984년의 [Born in the U.S.A.](1위)에서의 파워풀한 록과 비판적인 가사 그리고 1995년의 [The Ghost Of Tom Joad](11위)에서의 밥 딜런식 포크 등 팬들은 열 한 장의 굵직한 정규 디스코그라피에서 20년 넘게 울려 퍼지고 있는 보스의 노래에 울고 웃었고, 환호하고 열광했다. ‘Born To Run’, ‘Badlands’, ‘Dancing In The Dark’, ‘Hungry Heart’, ‘Born In The U.S.A.’, ‘My Hometown’, ‘Streets Of Philadelphia’ 등의 수많은 히트곡들이 이를 잘 반증하고 있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음악팬들이 브루스 스프링스틴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음악 자체만이 아니다. 그 음악 속에 담겨 있는 노랫말이 주는 감동 때문에 더욱 좋아한다. 스프링스틴은 주류 사회에서 소외되고 도태된 사람들의 이야기, 공사판 노동자들의 실상, 베트남 전쟁의 참상 등 미국 사회의 아픈 부분을 꼬집고 진단한다. 그걸 들으며 소시민들은 대리만족을 느끼고, 희망을 찾는다. 그래서 스프링스틴은 ‘현장(現場) 사운드’를 중요시한다. 로큰롤이 관객들과 함께 하는 쌍방향 음악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공연 무대에 충실하려고 노력한다. 방송 매체보다는 콘서트에, 비주얼 측면보다는 음악에 온 신경을 집중한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음악을 아끼고 사랑해주는 팬들을 위한 보스의 가장 큰 배려이다.
이 같은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애티튜드는 곧바로 장외 행동으로 연계된다. 스프링스틴은 반핵 운동은 물론이고, 빈민자들, 파업 노동자들, 무 주택자들을 위한 자선공연을 꾸준히 벌이고 있는 ‘운동권 아티스트’로 유명하다. 지난 2000년에는 뉴욕 브롱스에서 마약 사범 혐의로 검문을 받다 총을 꺼내는 것으로 오인돼 피살된 흑인 아마도우 디알로에 대한 내용을 담은 노래 ‘American Skin’을 발표해 뉴욕 경찰과 갈등을 빚기도 했고, 9.11 테러 이후에는 희생자들을 위한 각종 기금모음 행사에 출연하는 등 지금까지도 두 팔을 걷어 부치고 사회 운동에 적극적이다.
결국 이러한 보스의 깨끗하고 진실한 이미지는 지난 5월 상원의원 후보 해프닝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뉴저지주의 정치단체인 ‘뉴저지 독립’이 브루스 스프링스틴을 상원의원으로 만들기 위해 서명 운동에 돌입하겠다고 발표한 것. 이에 대해 스프링스틴이 자신의 웹사이트(www.shorefiremedia.com)에서 ‘지명되어도 출마하지 않고, 당선돼도 취임하지 않겠다’며 직접 거부 의사를 밝힘으로써 가십거리로 일단락 되었지만, 이 일련의 상황은 미국 내에서 보스가 차지하는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는 잘 보여줬다. 30년 가까이 오로지 노동자와 민중의 편에 서서 그들의 삶의 대변자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스프링스틴의 음악관과 태도가 지금까지도 미국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자료제공: 소니뮤직]
1. Lonesome Day
2. Into The Fire
3. Waiting On A Sunny Day
4. Nothing Man
5. Counting On A Miracle
6. Empty Sky
7. Worlds Apart
8. Let's Be Friends (Skin to Skin)
9. Further On (Up The Road)
10. The Fuse
11. Mary's Place
12. You're Missing
13. The Rising
14. Paradise
15. My City Of Ruins